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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식장.
남학생들은 보통 태어나서 처음 양복을 입는다. 여학생들은 정장으로 한껏 옷맵시를 자랑하는 때다. 모교를 떠날 때의 아련한 심정은 교지를 받아간다고 생각하면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 오히려 애틋하기까지 하다.

입학식을 치르고 나면 매주마다 나오는 학보와는 달리 신록의 5월, 도토리들이 다 떨어질 무렵 11월에는 두툼한 책들이 교내 여기저기 싸여 있다. 책 옆에 쌓여져 있는 자보에 "교지가 나왔습니다"라는 문구를 보니 대학의 교지는 이런 식으로 나오나보다라고 짐작만 한다.

호기심에 내쳐 책을 펼쳐보면 온갖 잡다한 글들이 다 들어가 있다. 학보에 비하면 속보성은 떨어지지만 각 글들이 주는 고민의 무게와 비판의 시각은 오히려 학보에 비하면 갑절 이상이다.

각 대학에 있는 신문과 교지와 방송국과 영자신문이 뭉뚱그려 '대학언론'이라는 범주에 들어간다. 대중으로서의 대학생과 소통하는 것을 스스로의 의무로 자임하는 이들이다. 그들이 하는 고민에는 대학이라는 물적인 토대가 1차적으로 자리한다.

따라서 그들이 펼치는 세계관의 스펙트럼엔 대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만발한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기성언론들도 특정한 계층을 대상으로 소통행위를 펼치는 마당에 이들 대학언론들이 특정한 계층을 대상으로 소통행위를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하다.

대학언론들이 대상으로 하는 특정한 계층?
청년학생들과 이땅의 눈뜬 노동자 민중이 바로 그들이다.

당연히 비판의 시각이 같지 않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 학교운영을 독점하고 있는 사학의 권력집단이 그렇고 관료적인 교육정책으로 이 나라의 교육의 가치를 호도하고 있는 정부가 그렇다.

터미널에서 논두렁 사이를 가로질러 마을회관인지 면사무소 건물인지 구분도 잘 안되는 건물의 문 앞에 "안동대학교"라고 적혀 있었다. 안동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에 따르면 작년에 당선된 비권 총학과 학교 측에 계속적인 압력과 협박을 받고 있단다.

학내에는 현재 총학이 지역의 학생 깡패들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편집장은 날마다 밤에 집에 갈 때 테러의 위협을 느껴 주위의 보디가딩을 받아서 집에 간단다. 비판의 시각은 당연히 자유의 제한을 불러오는 것일까.

총학생회는 교지편집실을 폐쇄하려고 하고 있었다. 짐을 빼라는 협박은 이제 만성이기때문에 협박도 아닌 것 같다. 총학생회는 교지편집위원회에서 추천하는 편집장이 아니라 자기들이 추천하는 사람을 편집장으로 하라고 한다.

어떤 실무작업과 언론에 대해서도 모르는 사람을 총학은 왜 편집장으로 추천하려 할까. 총학생회의 묵묵무답에 교지편집위원회는 속앓이를 계속했다. 여기에다 학교본부와 총학생회의 커넥션에 대한 학내 수군거림은 끊이질 않았다.

이른바 '운동권' 성향이 있는 모든 학내자치단체들을 총학과 학교 본부가 합심해서 죽이겠다는 심산이라고 학생들은 말했다.

마산대는 재단비리로 지역 시민들과 시민단체들, 지역언론에 의해서 끊임없이 가십거리가 되었다. 거기에다 얼마전에는 학보와 교지를 통합시켰다. 총학생회는 학교의 사주를 받았을 것이라고 학생들은 말한다.

아니 학생들이 이런 말만 한다고? 그렇다. 학생들은 수군거릴 수밖에 없다. 그 흔한 자보 한 장도 학생과의 도장을 맡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자보를 한 장 붙이면 거기서부터 진풍경이 나온다. 떼는 학교직원들과 자보를 떼면 즉시 붙이는 학생들의 쫓고 쫓기는 싸움.

사태의 본질은 학내자치단체들의 활동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열악한 학원의 비민주성에 있다. 이런 비민주성을 자행하는 행위의 주체들이 비원동권 총학생회와 학교 본부라는 양 축을 중심으로 자행되고 있다.

총학생회는 학생사회 내에서 공론의 분위기를 마련해야 하는 곳이다. 그리고 과연 무엇이 학생자치권과 학생자치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인지를 물어봐야 한다.

한편 학교 측의 의도를 짚어보는 것조차 이제는 고루한 것이 되었다. 학교가 대학언론을 학교 홍보의 수단으로 기능적으로 생각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안동대의 대학언론탄압 상황은 이 모든 것들이 중첩되어있는 탄압의 극점이다. 이밖에도 진주전문대와 관동대가 비슷한 상황에 있다는 소식이다.

전국대학교지편집인연합(임시의장, 이연재 호서대 편집장)은 이런 상황을 더 집중적으로 알려내고 해결하기 위하여 서울 집중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교육부 항의 방문과 다양한 투쟁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98년엔 전국의 대학신문사 기자들이 명동성당에서 단식을 했다. 올해는 전국 대학의 교지편집위원들의 농성이 서울에서 이뤄질 전망이다. 학생들에게는 글을 쓸 자유와 말할 자유가 없다는 사실이 어떤 글과 어떤 말인가에 대해서 토론하고 논쟁할 최소한의 근거마저도 박탈하는 것이다.

이제 그들에게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할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행동할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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