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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은 총선시민연대가 박 총무의 공천을 반대한 이유다. 각각의 공천반대 이유에 대해 반론을 한다면?

- 야당 원내총무 시절 자신이 대표발의한 바 있는 특별검사제를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번복하여 말을 바꾼 점에 대해.


"야당 때 5공비리를 검찰이 수사했다. 결과를 보니 형편없었다. 당시 5.18, 12.12 사태에 대한 수사를 요구중이었다. 수사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당시 노대통령 시절인데 대통령이 개입되어 있는 사건이니 수사가 부진하다 싶었다.

그래서 당에서 회의를 열어 미국식 특검제 도입하자고 결정했다. 그 때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현직대통령이 장본인 중의 한 사람인데 검찰이 제대로 하겠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권을 잡고 법무부 장관 취임후 특검제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했다. 특히 미국에 가서 여야 의원들을 만났는데 전부 만류했었다. 장점은 거의 없고 폐단이 너무 많다고. 때문에 나도 마음을 바꿨고 여러 언론에 특검제는 실패한 제도라는 설명을 해왔다."

- 야당 때 특검제를 주장한 것은 특검제가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서였을 터인데, 지금 말한 것을 보면, 그 야당 때 그렇다면 미국사례 연구 등 특검제에 대한 검토에서 심사숙고하지 못했던 것인가?

"그렇다. 그때는 사실 약간 졸속한 입법이었다. 그때 미 대사관에 가서 자료를 요구했다. 그러나 심층 검토를 안했다. 결론으로 뛰어갔다.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미국 가서 조사해보니 특검제가 공정한 수사를 위해서인데 특별검사가 명예욕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기소하려 한다는 거였다"

- 결국 파업유도, 옷로비 사건 등에서 특검을 했는데, 이것의 결론을 어떻게 보는가?

"해보니까 내 말이 옳다는 것이 드러나지 않았나. 파업유도는 없다고 결론이 나고, 옷로비 사건은 옷가게 주인에게 영장청구를 세 번 했다가 기각됐다. 결국 기소를 못하고 넘겼다."

- 디제이와 함께 미국에 갔을 때 특검제를 재검토했다고 했는데 그게 언제쯤인가?

"98년 6월."

- 그때 김 대통령이 먼저 유보를 이야기했나? 유보에 대한 아이디어는 누구에게서 나왔나?

"유보에 대한 아이디어는 나에게서 나왔다고 봐야 한다."

- 혹시 김대통령을 좀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특검제에 대한 애초의 입장을 바꾼 것은 아닌가?

"김대통령이 보호받아야 할 범죄행위를 했나? 그리고 나는 그렇게 맹목적인 추종은 하지 않는다. 국익에 해롭다고 해서 그런 것이다. 말을 번복했다고 하는데 열 번을 말했더라도 국익에 해롭다는 것을 안다면 체면이 상해도 말을 바꿔서 나라를 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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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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