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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자상한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화려한 집, 즐거운 여행,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채널 돌리기 바쁘다. 부모 없는 손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
ⓒ 충남시사 이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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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너무 슬펐어요. 우리 아이들은 병든 할머니 밑에서 하루하루 잠잘 곳, 먹을 것을 걱정하면서 살아가는데 상대적 빈곤감이 너무 크게 느껴져 마음이 아팠습니다."김정순(72·가명, 아래 손자모두 가명) 할머니의 말이다. 김 할머니는 일호(15), 이호(10), 삼호(10) 세 명의 손자와 아산시 신창면의 한 임대주택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 세 손자들은 김 할머니 큰 아들의 자식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슈퍼맨이 돌아왔다'라는 TV에서 아이들이 자상한 부모와 함께 화려한 집에서 살고 즐거운 여행을 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채널 돌리기 바쁘다. 부모가 없는 손자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작은 주방과 방 한 칸이 할머니와 손자 3명의 생활터전이다. 성장기의 사내아이 3명을 품어주기에 작은 방은 곧 미어터질 것만 같다. 할머니는 TV 속 화려하고,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당장 치킨 한 마리 사주는 것조차 어려운 본인의 처지를 한탄하고 있다.
두 번의 결혼 실패, "평생 매 맞은 기억밖에"김 할머니의 인생은 태어나기 전부터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1945년 광복되던 해 김 할머니의 부모님은 일본에서 김 할머니를 임신한 채 한국으로 돌아와 대전에서 낳았다.
김 할머니는 23살 되던 해 이웃마을의 두 살 많은 청년을 만났다. 그의 청혼을 받아들여 3남매를 낳았다. 직업이 경찰인 김 할머니의 남편은 처자식들이 굶어도 집에 돈 한 푼 가져다주지 않았다. 대신 김 할머니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때리며 학대했다.
김 할머니는 친정에서 어렵게 손을 벌려 끼니를 해결했다. 그러나 남편의 계속된 학대를 견디다 못해 이혼을 선택했다. 그 후 남편은 4명의 여인과 관계를 이어가며 외도를 했다.
이혼 후 서울로 떠난 김 할머니는 두 번째 남자를 만났다. 두 번째 남자는 더 없이 선하고 착해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술만 마시면 김 할머니를 죽일 듯이 때렸다. 모진 매질을 견디다 못한 김 할머니는 도피생활을 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친정집을 찾아가 친정식구들을 괴롭혔다.
결국 할머니는 두 번째 남자에게 돌아가 혹독한 매질을 견디며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그렇게 포악했던 두 번째 남자는 병을 얻어 사망했다.
미국에서 첫째 아들을 만나다두 번째 남자와 사별한 김 할머니는 홀로서기에 도전했다. 간병인을 비롯한 온갖 궂은일을 마다않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몸이 병들어 있음을 알게 됐다. 폐암이 상당부분 진행된 것이다. 2003년 할머니는 폐암수술과 함께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큰 아들로부터 소식이 왔다.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를 모시겠다는 것이다. 대신 맞벌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돌봐달라는 것이었다. 김 할머니 폐암수술 이후 다시 얻은 삶이라 생각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미국은 김 할머니가 생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아들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했고, 그동안 김 할머니가 어렵게 모은 돈까지 빼앗아 모두 도박으로 날렸다. 그러고 나서 병든 노모와 7살, 첫돌 지난 쌍둥이 자식을 모두 내팽개치고 잠적해 버렸다.
빈손으로 돌아온 한국, 손자들 키우기 막막할머니 수중에는 돈 한 푼 남지 않았다. 아들과 며느리는 할머니에게 자식들만 남긴 채 행방불명이다. 할머니는 3명의 손자를 떠안고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왔지만 할머니는 당장 거처할 곳이 없었다. 그렇게 떠돌다 찾아간 곳이 아산시 신창면의 어느 빈 농가였다.
그 곳은 여름에는 빗물이 새고, 곰팡이와 해충이 들끓었다. 겨울에는 난방을 못해 온 몸이 얼었다. 할머니는 수확 끝난 밭에서 감자, 고구마, 배추, 무 등 이삭을 주워다 손자들을 먹였다. 농사일을 거들며 끼니를 해결하려 했지만 체력이 바닥나 하루 일하면 1주일을 앓았다. 폐암 수술과 스트레스로 고갈된 체력에, 당뇨와 성인병 등 각종 합병증도 심각한 상태다.
김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신창면사무소와 몇몇 재단에서 도움을 주고 있으나 턱 없이 부족하다.
큰 손자 일호는 한국어를 전혀 못했으나 점차 적응하며, 학교성적을 올리고 있다. 쌍둥이 형제인 이호와 삼호도 제법 학교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호는 오른쪽 귀가 선천적 기형인 소이증을 앓고 있다. 3차 수술을 해야 하는데 현재 1차 수술까지 마친 상황이다.
김 할머니는 "기구한 팔자가 서러워 죽으려고 안 해 본 짓이 없지만 번번이 살아났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저 어린 것들을 키우라고 날 살려준 것 같아요"라며 "우리 가족이 언젠가는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라며 눈물지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시사신문>과 <교차로>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