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0월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34년 된 날이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평가가 극단으로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전국에서 박 전 대통령 추모행사가 열렸다.

박 전 대통령은 보릿고개를 없앤 대통령이란 긍정적 평가를 받는 반면, '독재자'란 냉혹한 평가도 받는다. 독재자란 평가는 1972년 유신체제 출범과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유신체제 출범은 우리나라 언론 환경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박정희 정권은 '1도 1사' 원칙을 내세워 지방지 강제통폐합을 단행했다.

언론 통제를 위해서였다. 이는 기형적 언론 구조를 낳았고, 그 후과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인천 언론계와 시민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인일보의 '대중일보 지령 승계 선언'을 둘러싼 논쟁도 사실상 그 연장선상에 있다.

유신정권의 언론 강제통폐합이 낳은 기형적 언론구조

유신정권은 '1도 1사' 원칙에 따라 지역별로 언론 강제통폐합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1973년 '경기매일신문'과 '경기일보', '연합신문'이 '경기신문'으로 통폐합된다. 각 언론사 사장, 발행인, 편집인 등은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한 뒤 끝내 통합에 도장을 찍는다. 인천에 본사를 두고 있던 '경기매일신문'과 '경기일보'는 경기도청 소재지인 수원으로 이전한 '연합신문'에 사실상 흡수된다.

'경기매일신문'은 1945년 10월 7일 창간된 '대중일보'의 뒤를 이은 신문이다. 경기매일신문은 고속 윤전기를 비롯해 최신 시설을 갖추고 시간당 7만부를 인쇄할 수 있는 경인지역 최대 언론사였다. '연합신문'보다 역사도 더 오래돼 지령 9000호를 발간했다. 경기도 조사에서도 시설기준, 발행부수, 발행연도 등에서 경기매일신문이 단연 으뜸이었다. 창간 당시 경기신문(1982년 경인일보로 제호 변경)은 윤전기 조립도 끝나지 않았다.

유신 독재정권에 의한 지방지 강제통폐합으로 인해 인천은 졸지에 언론사를 잃게 된다. 언론사 없는 15년의 세월을 보내야했다. 이 15년의 후과는 인천의 고질적 병폐인 '주인 없는 인천, 문화 불모지 인천'이라는 굴레를 낳았다. 언론자유화(1988년) 후에야 인천에도 '기호일보'와 '인천일보' 등이 창간됐다.

'대중일보 창간 68주년 대토론회'에서 조우성 인천일보 주필이 <경기매일신문> 지령 9000호를 들어보이고 있다.
 '대중일보 창간 68주년 대토론회'에서 조우성 인천일보 주필이 <경기매일신문> 지령 9000호를 들어보이고 있다.
ⓒ 한만송

관련사진보기


경인일보의 뿌리 찾기로 촉발된 '대중일보 승계' 문제

'1도 1사'로 경인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성장해온 경인일보가 지난 8월부터 '경인일보 뿌리 찾기'에 나섰다. 경인일보는 9월 1일 창간기념일을 기해 "자사의 창간연도와 지령을 변경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인일보는 1945년 10월 7일 창간한 '대중일보'가 <경인일보>의 뿌리라고 선언했다. 유신정권 때 지방지 강제통폐합으로 출범한 언론사가 지금껏 지령을 승계하지 않고 있다가, 40년이 지난 시점에 '대중일보'의 지령을 승계하겠다고 나서 논란을 야기한 것이다.

'대중일보'는 해방 이후 전국 최초로 인천에서 종합일간지로 발간된 진보적 신문이었다. 창간사에서 "사회정의의 옹호와 시민문화의 건설을 도모해 결연히 인천을 기반으로 한 일간신문이 될 것"을 표방했다.

경인일보는 지난 9월 2일부터 지령 기산점을 1960년 8월 15일자 '인천신문' 창간호에서 1945년 10월 7일자 '대중일보' 창간호로 바꾼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경인일보> 지령은 '1만 2000여 호'였다가 갑자가 '2만여 호(대중일보 9018호 지령 통합)'로 늘리는 조치를 단행한다.

경인일보의 '대중일보' 승계에 대해 인천지역 언론과 시민사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유신정권이 언론 탄압 일환으로 자행한 지방지 강제통폐합의 실제적 사건을 간과했고, '대중일보' 역사는 인천이 공유해야할 공공유산임에도 경인일보가 독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인천지역 시민사회는 지난 9월 "유신정권의 지방지 통폐합 과정은 온전히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며 "본사를 수원에 두고 있는 경인일보가 인천지역 언론의 역사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대중일보'의 지령을 승계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아울러 경인일보에 공개 토론회 개최를 제안했다.

"인천지역 언론단체 필요성 등 향후 과제도 나와
   
인천지역 시민단체 200여개가 공동 주최하고 <기호일보>, <시사인천>, <경인방송>, <인천in>, <인천일보>가 공동 후원해 '대중일보 창간 68주년 대토론회'가 10월 23일 열렸다. 사실상 인천지역 시민사회가 <경인일보>에 제안한 공개 토론회였다.

토론회는 '대중일보 창간과 인천 언론의 발전사(김현석 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위원)' '1973년 지방지 강제통폐합과 인천지역사회의 변화(이희환 황해문화 편집위원)' '1988년 언론자유화 이후 인천지역 언론(민진영 경기민언련 사무처장)'이란 주제발표가 먼저 이뤄졌다.

이희환 편집위원은 "언론 강제통폐합으로 일자리를 잃은 기자, 언론사를 빼앗긴 언론사주가 있다.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며 "부산일보와 부일장학회를 박정희 정권이 빼앗아간 과정과는 규모를 비교할 수 없지만, 언론 통폐합에 대한 전면적 조사 후 국가적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대중일보는 인천의 역사적 자산이며, 인천 언론이 공유해야할 유산이다. 연합신문을 계승하고 현재 본사를 수원에 둔 경인일보가 대중일보에서 뿌리를 찾는 것은 어폐(=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해 일어나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훈기 OBS경인TV 보도국 부장, 조우성 인천일보 주필, 김향수 인천 향토사학자 등의 지정토론이 이어졌다.

유신정권의 언론 강제통폐합으로 인해 아픔의 가족사를 가지고 있는 이훈기 부장은 이날 뼈 있는 말을 했다.

기자의 입장이 아닌 유족의 입장에서 (토론회에) 나왔다고 운을 뗀 이 부장은 "3대가 언론을 가업으로 잇고 있다. 조부는 일본에서 인쇄기술을 배워 대중일보 창간에 참여했고, 인천신보 부사장 겸 편집부국장 등을 역임했다. 선친도 경기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며 "유족으로 경인일보가 주장하는 창간연도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 73년은 '자유언론'과 '유신언론'이 충돌한 해이다. 그것이 경인일보의 역사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창간연도를 1973년이라고 했다가 1960년으로 했다가 다시 1945년이라고 주장하는데, 강제 해직을 당한 유족으로 받아드릴 수 없다"며 "만약 경인일보가 그런 생각이었으면, 1973년 통폐합 당시 경기매일의 지령을 이어받아야했다. 경인일보의 대중일보 승계는 73년 언론 통폐합과 맞먹는 것으로, 유족으로서 명예훼손 소송이라도 하고 싶다"고 비난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중일보를 승계하려면 권력과 자본에 굴하지 않았던 대중일보의 정신을 배우라"고 덧붙였다.

조우성 주필은 <경기매일신문> 지령 9000호를 토론회장에 가지고 나왔다. 조 주필의 선친 역시 73년 언론 통폐합 당시 보안부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조 주필은 "신문은 기자만으로 안 된다. 건전한 자본과 양자 합의에 의한 시대적 예술품이 신문"이라며 "통합 당시 인천 언론사 상당수 기자가 수원으로 가지 않고 울분을 달랬다. 독재정권의 회유와 협박으로 이뤄진 통합은 원천무효이고, 누구도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인천지역 언론단체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또한 인천 언론의 효시인 대중일보 터에 기념비를 건립하고 10월 7일을 인천 언론의 날로 삼자는 제안도 나왔다.

한편, <경인일보> 쪽은 이날 토론회에 대해 "특정 언론의 주장을 편드는 토론회"라고 평가절하 했다. <경인일보>는 "토론회에서 경인일보를 가해자로 둔갑시키고, 피해자 인식이 강한 유족들의 주장이 일방통행식으로 제기됐다"며 "3사 통합 당시 인천 언론이 곧 경기도 언론이었다. 인천 언론 암흑기에도 <경인일보>는 유일하게 인천, 경기지역을 지키며 기록했다"고 다음날 반박 기사를 실었다. 아울러 "대중일보에 뿌리를 둔 언론 3사가 통합된 곳이 경인일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천대학교 이수범 교수는 "대중일보는 인천의 공동의 자산으로 특정 언론사가 독점하는 것은 위험하다. 1973년 9·1통폐합 조치를 겪었던 지역 언론인들조차 수긍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언론학계의 엄밀한 검증과 연구를 거쳐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신정권 때 통폐합으로 출범한 언론사가 수 십 년 동안 '대중일보'를 외면하다가 갑자기 지령을 승계하겠다고 나선 것은 인천시민 누구나 납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러한 논쟁에 대해 인천지역 현직 언론인은 "경인일보가 도대체 대중일보의 무엇을 계승하겠다는 건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68년이 지난 지금 지역신문이 계승해야할 대중일보의 정신이 도대체 뭔지, 그걸 왜 계승하는지에 대한 성찰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또 다른 기자는 "일반 시민들의 눈에는 대중일보를 둘러싼 패권 싸움으로 비쳐 걱정"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경인일보, #대중일보, #언론통폐합, #유신정권, #경기매일신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