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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협박과 비열한 광기에 의해 위축되어 있는 인간은 감옥이 혹독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70명의 내 동지들을 살육한 야비한 독재자의 광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감옥 역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유죄판결을 내리십시오. 역사가 나를 무죄라 할 것입니다." 

 

피델 카스트로가 1953년 쿠바인민당 당원으로 7월 26일 160여 명의 젊은 동지들과 바티스타 정권에 대항하기 위하여 몬카다 병영 점령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법정에서 한 최후 진술 마지막 부분이다. 특히 "나에게 유죄판결을 내리십시오. 역사가 나를 무죄라 할 것입니다"는 말은 카스트로를 지지하든지 아니하든지 사람답게 살려고 하는 인민들에게는 아직도 울림이 있다.  

 

독재자 무바라크 "나는 무죄다"

 

그때로부터 48년이 지난 2월 이집트를 31년 동안 철권 통치하다 민주주의를 바라는 이집트 인민들의 혁명으로 물러난 호스니 무바라크(Mubarak, Hosni) 전 이집트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각) 열린 첫 재판에서 "나는 무죄다"라고 반박했다. 무바라크는 시위대 학살과 부정축재, 권력남용 등 4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역시 독재자는 단 한번도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음을 무바라크가 증명했다.

 

지난 2월 11이 무바라크가 물러나자 이집트 인민들은 "우리가 승리했다. 이집트가 승리했다"고 외쳤다. 하지만 이집트를 통치하고 있는 군부는 무바라크에 대한 단죄를 미루다가 여섯 달만에 그를 법정에 세웠다. 무바라크는 군인 출신으로 이집트 군부는 무바라크 핵심지지세력이었다. 그러므로를 그를 단죄하지 않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무바라크는 700억 달러라는 어머어마한 돈을 축재했다. 이집트 민중은 고통당하고 있는데 그와 가족은 뱃속에 더러운 돈을 채워넣었다. 결국 이집트 인민은 일어났고, 18일 만에 무바라크는 31년 철권통치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민심을 배반하고, 민심을 잃은 정권은 결코 존재할 수 없음을 무바라크는 보여주었다.

 

이집트 시민혁명에 의해 무바라크 퇴진했을때 <다음> 누리꾼 '마루나무'는 이런 댓글을 남겼다.

 

무라바크는 퇴진만 했을 뿐 이집트의 민주주의는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무라바크의 권력 야욕만 저지했지. 이게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아무리 무수하게 나쁜 짓을 했어도 뒷돈만 잘 챙겨서 다른 나라로 떠난 뒤 떵떵거리며 살텐데 이게 무슨 민주주의의 승리인가요. 이집트 국민들이 진정으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할거면 무바라크를 외국으로 내쫓고 퇴진시키고 할 게 아니라 그를 처벌하거나 아니면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거지로 만들어서 외국으로 쫓아낸 뒤 국민을 무시한 죄값을 당당하게 치르게 해야 합니다. 절대 뒷돈 챙겨서 외국으로 가게 하면 안 됩니다. 

 

마루나무의 우려대로 무바라크가 외국으로 도망가지는 않았지만 홍해의 휴양지인 샤름엘셰이크에 살았고, 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서면서도 흰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검사가 자기 죄목을 낭독하자 "나는 무죄"라고 했다. 아직 이집트 민주혁명이 완성되지 않았고, 이집트 인민이 민주주의를 누리기 위해서 갈 길이 멀고도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140여명 살육 

 

무바라크가 "나는 무죄다"라고 되뇌일때 중동의 또 다른 독재자가 인민을 학살하고 있다. 다름 아닌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다. 알아사드는 정의와 평화, 그리고 인간 존중을 반추하는 이슬람 성월인 '라마단' 기간 동안에 탱크를 동원해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리아 인민 특히, 반정부 시위 중심도시인 하마를 포격하면서 지난 나흘 동안 140여 명을 학살했다.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하마는 아사드 대통령 아버지인 하페즈 아사드 전 대통령이 1982년 반정부 봉기에 나선 수니파 무슬림 2만여 명을 학살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가 저지른 피의 살육을 사죄하기는 커녕 닮아가고 있다. 하지만 시리아 인민들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 독재가 자기 나라 인민을 학살하고 안녕을 유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독재자 종말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이승만은 '국부'로 추앙받았고, 조봉암 선생처럼 자기 정적을 무참히 사법살인으로 제거하면 자기 권력이 영원할 줄 알았지만 민주시민들은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끝냈다.

 

 

우리는 독재자를 끌어내린 거룩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승만 독재가 끝난 1년 후 또 다시 군인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유린한 쿠데타를 자행한다. 이후 17년 동안 대한민국을 철권통치했다. 유신헌법을 통해 종신대통령이 되고자했다. 유신헌법 반대를 외치는 수많은 이들을 잡아갔고, 빨갱이로 뒤집어 씌워 죽였다. '긴급조치'라는 초헌법적 악법을 만들어 '막걸리보안법'을 동원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자들을 탄압했다.

 

하지만 그는 심복 김재규 중앙정부부장에게 피살되었다. 김재규를 주군을 죽인 파렴치한 범죄자로 비난하는 자들이 많지만 독재자 심장을 향해 뿜은 불꽃은 길이 기억되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독재자에게 무죄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재규는 왜 박정희를 사살했는지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이라"고 했다. 박정희를 사살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부마항쟁을 그는 1980년 1월 28일 항소이유보충서를 통해 이렇게 정리했다. 

 

"부마사태는 그 진상이 일반 국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부산에는 본인이 직접 내려가서 상세하게 조사하여본 바 있습니다만 민란의 형태였습니다. 본인이 확인한 바로는 불순세력이나 정치세력의 배후 조종이나 사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순수한 일반 시민에 의한 봉기로서, (중략) 체제에 대한 반항, 정책에 대한 불신, 물가고 및 조세저항이 복합된 문자 그대로 민란이었습니다."(<한겨레21> "김재규가 쏘지 않았다면"- 2009.10.23 제782호)

 

독재자에게 '무죄'는 성립되지 않아

 

일반 시민이 '봉기'와 '민란'을 일으켰다는 말은 박정희 정권이 독재정권임을 증명하고 있다. 박정희를 거부하는 것이 불순세력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런 분석을 '박정희교' 신자들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재규가 주군에게 총구를 통해 불을 뿜은 이유는 어떤 독재자도 민주주의를 외치는 민주시민 앞에는 결국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렇게 독재자는 갔다. '학살자' 전두환도 막후정치를 하고 싶었지만 6월항쟁에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무바라크가 아무리 "나는 무죄다"라고 발부등치고, 알아사드가 탱크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리아 인민을 지금을 살육으로 무마할지라도 반드시 인민과 민주주의는 승리하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단죄받아야 한다. 독재자에게 '무죄'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만세!

 

갑자기 든 생각, '무바라크'(MuBarak)와 '명박'(MyungBak)은 'MB'로 표기된다.

덧붙이는 글 | 다음뷰에 실립니다


태그:#무바라크, #알아사드, #독재자, #시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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