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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에서 재판부가 1심 판결을 깨면서 훨씬 중한 형으로 처벌하는 법조항을 직권으로 적용하면서, 피고인에게 충분한 방어권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검찰은 Y(21)씨가 지난해 5월30일 서울 중구의 한 사회복지법인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여아(7세)를 실내로 유인한 뒤 손가락을 피해자의 음부에 2회 집어넣는 등 위력으로써 성추행했다며 기소했다.

그런데 당시 검찰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법) 중 위계ㆍ위력으로 13세 미만 여자를 간음하거나 13세 미만 사람을 성추행하면 처벌하는 성폭법 제7조 제5항ㆍ제3항을 적용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26형사부(재판장 배광국 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 검찰의 기소의견을 토대로 Y씨에게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또 Y씨의 개인신상정보를 5년간 공개할 것과 출소 후 6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했다.

그러자 검찰은 "1심 형량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그런데 검찰은 단지 양형에 대해서만 항소할 뿐 Y씨에 대한 형량을 높일 수 있는 성폭법 적용조항에 대한 부분은 언급하지 않으며 다투지 않았다.

이에 서울고법 제7형사부(재판장 김인욱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1심 판결을 깨고, Y씨에게 징역 3년6월을 선고하면서 신상정보공개 기간도 10년으로 늘렸다.

재판부는 "항소이유 판단에 앞서 직권으로 살피건대, 원심법원이 인정한 범죄사실의 주요내용은 '피고인의 손가락을 피해자의 음부에 2회 집어넣는 등 위력으로써 피해자를 강제추행하였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이 사건 범죄사실은 성폭법 제7조 제2항 제2호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의 일부나 도구를 넣는 행위'로 법정형은 7년 이상의 유기징역형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럼에도 원심이 이 사건 범죄사실의 법정형의 하한을 징역 5년으로 정한 성폭법 제7조 제3항의 강제추행에 해당함을 전제로 법정형을 작량감경한 범위에서 피고인에게 징역 2년6월의 형을 선고한 것은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끼친 잘못이 있다"며 직권 판결을 내렸다.

문제는 이 사건은 공소사실의 범죄행위 유형이 성폭법 제7조 제2항 제2호와 제3항에 모두 해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검사는 성폭법 제7조 제5항으로만 공소제기한 채, 제7조 제2항 제2호 또는 제3항 중 어느 조항의 예에 따라 처벌할 것인지 여부에 관한 적용법조를 특정하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성폭법 제7조 제5항ㆍ제3항을 적용해 Y씨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했고, 이후 검사는 1심의 적용법조에 관해서는 항소이유를 다투지 않은 채, 단지 형량이 가볍다는 이유만을 항소이유로 주장해 항소했다.

항소심 역시 공판기일에 검사에게 적용법조에 관해 질문을 하거나, 그 주장을 보충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채 항소이유에 관한 심리만을 진행한 다음 그대로 변론을 종결한 사건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기에 Y씨에게 적절한 방어권 행사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Y씨는 "항소심 재판부가 피고인에게 방어권을 제공하지 않은 채 직권으로 1심과 적용법조를 달리해 형량을 훨씬 높여 선고한 것을 잘못"이라며 상고했고, 22일 대법원 제1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Y씨의 상고를 받아들였고, 결국 사건은 서울고법이 다시 심리ㆍ판단하라며 돌려보내졌다.

재판부는 먼저 "원심이 적용법조의 변경에 따른 방어권 행사의 기회를 피고인에게 제공하지도 않은 채 직권으로 공소사실에 대해 성폭법 제7조 제5항ㆍ제2항 제2호를 적용한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있어서 실질적인 불이익을 초래할 염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경우 원심으로서는 제1심과 달리 피고인에게 불리한 적용법조를 직권으로 적용하기 위해 검사에게 그 부분 석명을 구함과 아울러 위와 같은 취지를 밝히는 방법 등을 통해 피고인에게 적절한 방어권 행사의 기회를 제공한 다음 비로소 직권판단으로 나아갔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이런 조치 없이 1심판결을 직권으로 파기한 후, 성폭법 제7조 제5항ㆍ제3항에 비해 훨씬 중한 형이 규정된 제7조 제5항ㆍ제2항 제2호를 적용하고 말았으니, 이런 원심판결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와 관련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필요한 심리 등을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직권, #성폭법, #방어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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