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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변명 좀 들어 주시겠습니까?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아빠입니다. 그리고 평소 주말에 늦잠을 가장 좋아하는 매우 평범한 샐러리맨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말 새벽시간에 잠을 못 이루고 이렇게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저와 똑같은 처지의 아빠들을 구원하자' 였습니다. 또 제 딸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빠는 절대로 이상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내 딸을 가장 사랑한다."

대학교에서 열린 어떤 '콩쿠르'

모 대학교에서 열린 한 콩쿠르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파렴치한 아빠가 됐습니다.

저는 제 딸을 위해서도, 그리고 저와 같은 똑같은 처지의 아빠와 엄마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날 일의 잘잘못을 따지고 싶습니다.

2010년 11월 27일. 우리 지역 한 대학교에서 oo 연주평가회가 열렸습니다. 

피아노를 배운지 얼마 안 되는 제 딸이 피아노학원의 '강추(?)'로 이 대회에 나간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그러냐?'하고 시큰둥하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대회 기간이 가까워오자 제 아내는 '당신은 왜 딸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냐?'며 채근을 해댔습니다.

저라고 왜 제 딸아이의 일에 관심이 없겠습니까. 속으로는 '내 딸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나?'라며 감탄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직업상 주말이 가장 바쁜데도 불구하고 큰 맘 먹고 월차까지 냈습니다. 그리고 콩쿠르에 참석했습니다.

몇십초만에 '땡' 하고 끝나는 피아노연주

나중에 저보다 먼저 아이들을 키운 친구에게 들어 보니 '원래 다 그런 거야. 나도 내 아들놈 덕분에 그런 대회에서 열심히 들러리 섰지'라고 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이날 수 백명의 어린이들이 대회에 참가했더군요. 그 중에 한 명이 제 딸 이었고요.

저는 100여 명의 아이들이 연주하는 것을 지루하지 않은 척 뭔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까지 끄덕여가며 들어야 했습니다. 제 둘째 아들이 옆에서 저를 지켜보고 있었으니까요.

이 대회에 참가한 아이들은 불과 10~20초 만에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연주를 멈췄습니다. 무대 앞에 앉은 2명의 심사위원이 열심히 '땡' 하는 종소리를 울려대고 있더군요. 마치 '앞 소절 한 마디만 들으면 너의 실력을 다 알고 있다'라고 하는 것처럼.

물론 그 심사위원들의 종소리를 인정합니다. 1시간 여 어린이들의 피아노 연주를 듣다보니 저 같은 문외한도 잘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실력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이날 행사는 마치 어린이들의 피아노 연주를 시장에서 상품 고르듯 '다음 물건, 다음 물건' 하듯 던져 버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나쁜아빠 되다..."그렇게 질서를 안 지키면 어떻게 합니까"

이 행사에 참가한 200여 명 어린이의 연주를 듣고 나서야 제 딸의 차례가 왔습니다.

행여 늦을까 아침도 거르고 응원왔는데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제 딸의 연주가 시작됐습니다. 제 딸보다 응원 온 가족들이 오히려 더 긴장을 한 것 같습니다. 이건 또 무슨 심사인지 제 딸 뒤에도 200명 이상 더 있다는 말에 조금은 위안이 되더군요.

제 딸아이가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저는 무대 아래에서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눌러 댔습니다. 그리고 10여 초가 지나면서 '땡' 소리와 함께 제 딸아이가 연주를 마쳤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제 딸아이가 연주를 마치자마자 저를 향한 사회자의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이것보세요. 그렇게 질서를 안 지키면 어떻게 합니까."

그 순간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충격적이고 치욕적인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인 질타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죠. 저는 단 한 마디의 변명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사회자는 연단에서 마이크를 들고 저를 공격하고 있었고, 저는 객석에서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자의 저를 향한 비난은 계속됐습니다. 사회자는 '당신의 딸이 연주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야(제 딸의 연주가 끝나고) 말하는 건데 당신처럼 질서를 안 지키면 이 대회를 할 수 없다. 앞으로 똑바로 해라'라는 말이 요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멍' 하고 굳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지만 할 수도 없었고 '정말 부끄럽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제 딸을 '어떻게 보나?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하고 걱정했습니다.

제가 평소에 제 딸에게 가장 강조한 말이 '기초질서를 잘 지켜라'였거든요.

"나는 나쁜 아빠가 아닙니다"

"나는 내 딸의 연주를 망치려는 나쁜 아빠가 아닙니다. 그저 내 딸아이의 소중한 추억을 남기고 싶은 평범한 아빠입니다. 공연하는 딸의 모습을 숨죽여 촬영하는 아빠를 그렇게 몰상식한 사람으로 매도하고 싶었나요? 내가 도대체 무슨 질서를 어겼고, 심사를 방해하고, 연주를 망쳤다는 말인가요?"

이제 저는 그 자리에서 저를 공격했던 사회자에게 꼭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을 하고 싶습니다. 당시 사회자는 마이크를 쥔 전지전능한 절대자(?) 였고, 저는 그저 객석에 앉은 몰상식한 아빠에 불과했거든요.

저는 그 순간 '욱'하고 끓어오르던 제 안의 '열폭(?)'을 꾹 삼켜야 했습니다. 그래봐야 더 이상한 난동꾼 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제 딸아이 뒤에 이어질 제 딸의 친구일 수도 있는 어린이들의 연주를 망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죠.

사진 남기고 싶으면 돈 내놔라?

당시 사회자가 제 딸의 연주장면을 촬영하는 저를 공격한 이유는 한 마디로 '당신 딸의 사진을 촬영하고 싶으면 돈 내놔라'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저처럼 무대아래서 사진을 찍을 지도 모르는 다른 아빠들에게 던지는 경고 메시지였겠지요.

이 대회가 열린 대학교 강당 입구에서는 '연주장면 사진촬영' 대가로 수 만원을 요구하며 신청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진촬영을 신청한 어린이들에게는 카메라 기사가 번호표를 확인한 후 무대까지 올라가 촬영해주며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돈벌이용 사진 촬영은 오히려 진행요원의 특혜와 비호까지 받으며 이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카메라를 들고 무대 아래에서 숨죽여가며 딸의 연주장면을 촬영하는 제가 눈에 가시였을지도 모르지요.

저뿐만 아니라 이날 근거리 촬영만 가능한 핸드폰에 장착된 카메라나 소형카메라를 들고 온 가족들도 제재를 받아 자녀에 대한 사진촬영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어린이들의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무대 한편에서는 끊임없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장면도 목격됐습니다.

이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따지고 싶었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제 딸의 뒤에서 연주를 기다리는 어린이와 그 부모님들에게 누가되기 싫어서 참은 것입니다. 이날 대회의 참가비는 5만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초 연주 위해 1시간 이상 추위에 떨어

제가 아빠 입장에서 가장 화가 난 것은 10초 연주를 위해 어린이들이 1시간 이상 대기실에서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날 도착해서 기다린 시간까지 더하면 3시간이 넘습니다.

행사장에 오기 전에 이미 많은 여자 어린이들이 10초의 연주를 위해 꽃단장을 한 것 같습니다. 제 딸아이도 여린 피부에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아 올리고, 드레스를 맞춰 입느라 야단이었습니다.

이날 모두 경험하셨겠지만 매서운 바람과 함께 영하 4도까지 떨어진 올해 들어 가장 추웠던 날입니다. 행사가 진행된 이 대학교 강당은 난방시설이 있어서 비교적 따뜻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대기한 대기실은 부모의 출입을 차단해 상황을 뒤늦게 알았지만 밖의 찬바람까지 솔솔 들어와 엄청나게 추웠다고 합니다.

대기실은 이날 참가한 어린이들을 100명씩 대기시키며 드레스로 갈아입혔던 곳입니다. 내복까지 입었어도 추운 날씨에 어깨와 등이 훤히 드러나는 공연드레스를 입은 어린이들이 얼마나 추웠겠습니까.

게다가 진행요원들이 '빨리 입어라, 빨리 벗어라'하며 아이들을 거칠게 다그치며 몰아부쳤다고 하니 기막힌 일입니다. 제 딸도 1시간 넘게 대기실에 있는 동안 "춥고, 불편하고, 무서웠다"고 말합니다.

제가 너무 까칠한 건가요?

이런 행사가 계속 진행돼야 하는 건지 이제 교육당국에 묻고 싶습니다.

 "대회 진행상 불가피... 모든 부모 만족시킬 수 없어"
콩쿠르대회 주최 측 입장
이날 행사를 진행한 주최 측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개인이나 피아노학원의 작품발표회가 아닌, 350여 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참여하여 경쟁을 벌이는 이번 대회의 성격상 무대 위나 무대 근접 촬영은 허용할 수가 없었다"며 "다만, 객석에서의 촬영은 모두 허용되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촬영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부모들의 무질서한 촬영을 막기 위해 '주의'를 줄 수밖에 없었다"며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서운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키면서 대회를 진행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그는 또 "10-20초밖에 듣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사실과 다르다,  보통 1분가량을 연주하도록 했고, 상대적으로 짧게 연주한 아이들은 오히려 실력이 뛰어나 본선에 올라가는 아이들이었다"면서 "이 대회는 그 동안 20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온 권위 있는 대회"라고 강조했다.


태그:#콩쿠르, #피아노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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