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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고향 땅은 추억거리들로 가득차 있다. 고향 땅, 산과 들과 바다, 푸세식 화장실과 흙 담벼락, 찬바람 솔솔 불어오는 대청마루, 빨래도 하고 돼지도 잡던 마을 공동 우물터, 수영하여 우렁이도 잡아서 삶아 먹곤 했던 동네 앞 저수지.

 

어린 시절엔 다들 그랬다. 동네 앞 산소는 사시사철 꽤 큼지막한 야구장이었다. 가을철 벼를 잘라낸 저수지 아래의 논바닥은 언제나처럼 축구장으로 쓰였다. 보리수확을 끝낸 밭두렁위에서는 턴블링 연습으로 한 때를 보냈다. 여름철 동네 앞바다에 떠 있는 배들은 우리들의 좋은 낚시터였다.

 

사라져 가는 것들은 그처럼 언제나 정겹고 그립다. 여느 시골 동네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솟을대문이 있고, 마을 어귀에 장승이 서 있고, 집마다 푸세식 화장실이 있고, 감나무와 대나무가 있던 시골집들 말이다. 그 모습들이 지금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말이다.

 

이병학의 <대한민국 마을여행>은 사라져 가는 고향 마을의 옛 추억들을 다시금 불러일으켜 준다. 경운기로 달리던 시절보다야 더 한층 느리고 불편하긴 하지만 소달구지로 달리던 그 시절을 일깨워 준다. 시골 마을의 향수와 전통을 보듬어 안고 끝까지 지켜보려는 마을 어르신들의 힘찬 삶도 곁들여 있다.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집념어린 기록 담아

 

청주 우암산 기슭 우암골은 50-70년대에 살던 산동네 골목풍경이 그대로 있다고 한다. 그 근처 다른 곳들은 다들 아파트와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 서 있다는데 유독 그곳만 옛 자취를 붙잡고 있는 까닭이 뭘까?

 

무엇보다도 재개발 사업자들의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 이유때문이었단다. 그 덕에 아홉 칸짜리 공중화장실도 그래도 사용되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의 온정도 이어지고 있단다.

 

2008년에 '카인과 아벨'이란 드마라 방영 이후 사람들 발길이 줄기차게 이어진다고 한다. 사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마을 전봇대랑 화분이랑 담벼락이랑 곳곳이 멋진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모든 예술작품이 다 모여 있는 곳 같다. 청주 예술인들이 꾸며준 손길 덕이라 한다.

 

제천시 수산면 청풍호숫가 하천리 마을은 약초체험장으로 전국에 알려져 있다고 한다. 본래 그 마을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이 되어 물길 위쪽에 터를 잡은 마을이란다. 처음 수몰될 때만 해도 돈 있는 사람들은 도시로 나갔고 가난한 사람만 그곳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악착같이 살길을 찾아나섰는데 바로 '약초'가 있었단다. 그래서 약초마을이 탄생한다.

 

주 소득원도 황기와 당기 등 약초를 비롯해 콩과 고추 재배, 그리고 송이와 산나물 채취에 있다고 한다. 약초체험 행사와 함께 천연염색체험행사도 열고 있다는데, 다행히 농촌진흥청에서도 지원을 해 주고 있고, 자매결연을 맺은 기업들이 조금씩 도와준 덕에 방문객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전남 신안군 증도는 2007년부터 담양창평과 완도 청산도, 그리고 장흥 장평과 함께 슬로시티로 인증받았다고 한다. 그곳이 유명한 것은 소금박물관도 있고, 드넓은 염전채취현장도 구경할 수 있는 까닭이다. 최근에는 증도대교가 연륙이 되어 더 많은 방문객들이 찾아들고 있고, 우전리 해수욕장은 옛 펄 밭의 추억을 되새기는데 최적이라 한다.

 

"파랗게 깔렸다고 다 채취하는 것이 아니락게. 우게 보드런 부분, 끝에 치만 살짝 채취허는 것이요. 밑엣것은 뻐셔서(억세서) 못 쓰지라."(184쪽)

 

이는 천사의 섬 중 하나로 알려진 신안군 안좌면 소곡리 두리마을에서 감태채취를 하고 있는 김성갑 씨의 말이다. 그곳 바다는 한겨울에도 초록빛 물결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맛깔스런 감태 때문이라 한다. 겨울 별미인 감태는 매생이에 비해 올이 굵고, 향은 한결 짙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좋아해 예전엔 일본으로 전량 수출했다지만 지금은 밑반찬으로 인기가 있어서 국내 소비도 꾸준히 늘고 있단다.

 

아무쪼록 사라져가는 우리 것에 대한 집념어린 기록물인 이 책을 통해 옛자취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도록 하자.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종교든 그 무엇이든 옛사람들과 옛것에는 뭔가 더 깊은 울림이 남아 있지 않던가. 이 책 속에 깃든 마을과 그 속에서 정겹게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모습도 꼭 그런 정서와 울림을 전해준다.


대한민국 마을여행 - 소통하고 나누는 착한 여행을 떠나자

이병학 지음, 컬처그라퍼(2010)


태그:#이병학, #대한민국 마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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