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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날씨가 소나기속을 오락가락 하느라 분주하던 6월 초순, 허리가 반쯤 굽은 할머니가 삐걱거리는 유모차를 밀고 와서 새로 짓는 집의 쓰고 남은 나무 조각들을 주워가도 되느냐고 묻는다.

필요한 자재들은 이미 다 실어 내가고 집 주위에 있는 것들은 쓰레기로 버리거나 태워야할 것들이라서 가져가시라고 했더니 고물이 다된 유모차에 나무 조각들을 서너 개씩 올려서 몇 번을 옮겨 놓느라 꼬부라진 허리가 더 굽어 보였다.

무거운 것은 들어서 유모차에 올려 드리고 이것저것 물어 보시면 대꾸를 해드렸더니 내 옆에 앉아서 말동무를 해주신다. 아들은 법 공부해서 미국에 가서 살고 있는데 가끔씩 나온다고, 그리고 아들이 입버릇처럼 함께 살자고 그러는데 당신은 여기가 좋아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내가 뭐라고 대꾸를 하면 귀가 어두워 잘 듣지도 못하면서 아들자랑에 농사걱정을 늘어놓았고 나는 일하는 짬짬이 말동무하랴 일하랴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지나서 들른 할머니는 집에서 수정과 담가 놓은 것을 거지고 왔더니 자리에 없더라며 서운한 마음을 비추고는 이내 사라지셔서 그런가 보다하고 일을 시작 하려는데 "이거 산에 나무가서 넘어진 사람이 내가 만들어준 이 수정과 마시고 거뜬해 진거야, 내가 몸에 좋은 것만 넣고 만들었으니까 마셔봐"하면서 작은 페트병에 담긴 수정과를 건넨다.

순간 수정과 병을 받아든 내 손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어차피 쓰레기로 버려야 할 것들을 드린것 뿐 인데 그나마 말동무 해드리면서 자식 같은 정을 느끼셔서 일까 수정과를 단아 오신 할머니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찡하게 저려 왔다.

자식 같은 사람이 할머니의 말을 들어 들인것이 고마우셨던가 보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오래 전에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 왔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던 내게 할머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초등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했을 나를 아껴 두었던 콩이랑 팥이랑 곡식을 팔아 육성회비를 내고 입학금을 마련해 6년 동안 나물캐서 팔고 남의 집 삯바느질에 품팔이를 해가며 어렵게 나를 키우셨는데 팔순이 넘어 서면서 치매가 오기 시작해 결국엔 나도 못 알아보시고 운명하시는 순간조차 지켜 드리지 못했다.

살아 계실 때 맛있는 거 한 번 못 사드리고 좋은 옷 한 벌 입혀 드리지 못하고 나 살기 바빠서 내 생각만 하고 살았는데 수정과를 내 주신 할머니를 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 우리 할머니 생각에 수정과는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냉장고 속에 보관하고 있다.

어쩌면 저 수정과는 아까워서 못 마실 것 같고 다 마시고 빈 병이 되면 내가 할머니를 버린 것처럼 수정과 병도 버리고 할머니에 대한 기억도 영원히 지워 버릴 것 같아 그냥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꼬부랑 할머니의 이젠 백골이 되었을 우리 할머니의 손주 사랑을 기억하려고 한다.

수정과 한 병에 잠시나마 친구가 되어 준 젊은이에게 마음을 담아 주신 그 할머니의 아름다운 미소가 우리 할머니의 한결같은 마음 같아서 더위에 지쳐가는 한 여름 날씨에도 가슴 깊은 곳을 울리는 종소리가 되어 평창강 여울 가득 울려 퍼졌다.


태그:#할머니, #어머니, #수정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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