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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교육비 무서워서 애 못낳겠다'는 소리가 엄살이 아님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강남의 한 영어유치원에 1년 보내는 돈이 국립대 등록금의 4배 수준이라지요? 정부에서는 사교육을 잡는다고 '학파라치'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효성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교육비는 점점 부모의 재력에 비례해 극과 극을 향해 치닫고 있는 듯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총 5회에 걸쳐 '사교육? 死교육!' 기획기사를 내보냅니다. 사교육의 메카라 불리는 대치동 학원가 풍경, 사교육비 극과 극 현장, 부모들이 체감하는 사교육비에 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편집자말]
"아빠, 학원비 안 빠져 나갔다고 연락 왔는데 통장에 잔고 없으세요?"
"아니 있을 텐데…."
"근데 두 달이나 밀렸다고 학원 언니가 말하더라니까. 뭐야 쪽팔리게."

쩝, 할 말 없음이다. 내가 일부러 그랬겠나.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계집애가 하여간 성깔하고는. 야, 아빠 학교 다닐 때는 공납금 내고 다니는 것만 해도 그저 '감사합니다'였어. 그에 비하면 넌 영광인줄 알어 이것아.

"학원비 안 빠져나갔다고 연락 왔는데"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학원가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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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순, 업무차 미얀마에 가게 되었다. 몇 차례 그곳을 출입하면서도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참으로 많다.

무한한 자원과 산유국이면서도 잦은 정전과 열악한 도로사정 그리고 높은 실업률까지. 뭐하나 사업을 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나라다. 물론 내 어릴 적 60~70년대를 생각하면 일면 추억이 떠오르는 나라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그지 없다.

그런데 시내 어느 곳에 이르자 갑자기 차량이 꼼짝을 못한다. 옆을 쳐다보니 학생들을 태우러 나온 버스들과 부모들이 뒤엉켜 난리도 아니었다. 아니 미얀마에 웬 이런 난리. 알고 보니 소위 말하는 꽤 괜찮은 초등학교 앞이었던 것. 맹모·맹부삼천지교는 잘 살든 못 살든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역시 '못 먹고 못 사는 이유는 내가 못 배웠기 때문이었다'는 부모들의 한이 사교육 시장을 거대 공룡으로 키우는 데 일조했다는 걸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군사정권에도 잡지 못했다는 사교육 문제가 이제는 단순히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만은 아닌 총체적 국가 문제로 대두되었건만 왜 아직도 우리는 공교육이 나락에 빠지고 사교육이 성행하고 있는가.

애들 사교육비 대느라, 오는 청첩장 나는 모르네

작년 한 해 사교육비를 포함해 교육비에 투자된 돈이 무려 40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40조 원이라는 숫자가 얼마인지 사실 나는 감이 없다. 그러나 매달 돌아오는 둘째아이 영어학원비 30만 원과 수학 과외비 40만 원의 무게만큼은 안다.

"아빠, 나는 울 친구들 비하면 '쨉'도 안 돼요. 고3이 이 정도도 안 하면 말이 안 되죠. 누구는 일주일에 두 번씩 강남으로 과외도 다니는데 아빠는 알지도 못하면서 학교 공부만 충실히 하면 된다고 자꾸 잔소리를 하세요. 나처럼 착한 자식이 어디 있는지 모르면 말을 마세요."

헉! 저런 못된, 그래 내가 못난 애비다. 과외는커녕 단과학원 조차도 못 다녀 본 내가 어이 '너그들'의 복잡한 교육환경을 알겠니. 그저 부모로서 군말 없이 학원비나 꼬박꼬박 밀리지 않게 준비나 하면 될 것을, "과외를 꼭 해야겠니" "학원 가면 경쟁도 되고 그게 더 안 좋겠니?" 내심 10만 원 아끼려 슬쩍 떠보았다가 딸애의 가차없는 질책(?)에 나는 그만 돌부리에 넘어져 깨진 무릎팍에 왕소금만 문지른 기분이다.

실질소득이 늘지 않은 상황에서 사교육비를 비롯한 교육비가 늘어나면서 우리 주변에도 많은 부작용과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자식들의 교육문제라면 "나는 굶어도 자식 교육만은 시키겠다"는 의지의 한국인이 바로 우리들 아닌가. 외식? 그냥 집에서 식은 밥 물말아 먹지 외식은 무신 얼어죽을 외식. 놀이동산? 이 사람이 지금 정신이 있나, 그냥 집 방바닥에 시체놀이나 하면서 놀아. 오는 청첩장 나는 모르네, 보내야 할 부고장만 챙겨보세.

입시 사교육비 끝나면 취업 사교육비 들고

[그림 5] 2008년 가구의 월평균 소득수준별 어학연수비(단위 : 만원)(* 출처 : 통계청, 2008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
 [그림 5] 2008년 가구의 월평균 소득수준별 어학연수비(단위 : 만원)(* 출처 : 통계청, 2008년 사교육비 조사 결과)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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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문가들은 '교육비(사교육 포함) 지출 증가→실질가계소득 하락→저축률 하락→교육비 부담 은행차입 증가→가계건전성 악화'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또 사교육비는 해외 어학연수비용 등을 포함하기 때문에 국제수지 악화로 연결될 수도 있다.

교육비 지출 증가가 이처럼 어려운 연결고리로 이어져 조만간에 나 자신도 '하락' '악화' 등의 구덩이에 빠져 영락없는 거지 꼴이 되는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난다. 사실 이놈의 교육비, 특히 사교육비는 소득이 줄어들거나 경기가 나빠져도 줄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실질소득이 줄면서 가계사정이 어려워지면 다른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더 줄일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되는가. 아, 영어학원도 보내지 말고 과외도 끊으면 되지 않느냐고? 그 이야기가 아니잖우. 그래 일단 보험 깨버리자. 노후연금은 무슨 노후연금이야. 지금 쌀독에 쌀이 없는데. 집도 팔아야겠네. 집팔아 봐야 대출금 갚고나면 전세방이라도 제대로 얻을려나. 에휴, 나야 이제 애 낳을 일도 없지만 젊은 사람들 애 안 낳으려는 심정도 이해가 가네. 애를 안 낳으면 우리 노후는 누가 책임지지, 아무리 힘들어도 연금보험은 깨지 말까?.

사교육비 부담이 어느새 나의 존재 가치까지 건드린다. 고3인 우리 딸 어찌됐든 올해 대학교엔 들어가겠지. 뭐 경제학과를 가서 졸업 후에는 증권사 애널리스트 되는게 꿈이란다. 그러기 위해서 2학년때는 죽었다 깨어나도 교환학생으로 외국엔 가야겠으니, 지금부터 돈 준비해 달라는 주문이다. 준비성 하나는 좋다. 그러나 외국은 그냥 가는가.

이거 대학까지 가서도 '과외'를 하겠다는 말씀이다. 형편이 어려워 임시방편으로 1학년 마치고 눈물로 군에 보낸 아들놈이 올 겨울 벌써 제대다. "니 동생 때문에 그러니 한 1년만 알바하면 안 되겠니~" 이리 말하면 이놈이 어떻게 나올지 상상불허다.

백년지대계가 어찌 이리도 갈팡질팡인가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원하는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임순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사교육 문제 및 조기 교육 과열 문제 등을 그리고 있다.
▲ 인권영화 <날아라 펭귄>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원하는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임순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사교육 문제 및 조기 교육 과열 문제 등을 그리고 있다.
ⓒ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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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두 명에 이리 엄살인데 서넛만 되었어도 자식이 원수라는 소리 나오겠다. 대학교 마칠때까지 드는 돈이 공교육의 네 배가 넘는다는 사교육비, 왜 못 잡을까. 백년지대계가 어찌 이리도 갈팡질팡인가.

밤 10시까지만 허용한 학원수업, 그러나 10시 이후의 수업들이 이제 주말로 시간을 옮겨 학생들과 부모들이 겪는 고통은 매한가지다. 이 정도의 예상도 못한 게 우리 교육의 현실인지 더위에 늘어진 복날 개도 혀를 찰 일이다.

아, 불현듯 사교육비를 공교육비 보다 떨어뜨릴 수 있는 절묘한 방법이 하나 생각났다. 사교육비가 100만 원이라면 공교육비는 한 1000만 원으로 올려 버리면 된다. 그러면 사교육비가 더 저렴한 게 될 것이 아닌가. 어떠세유, 기막히지 않은가유. 에라이 말 같은 소리를 해라. 퍽~!! 퍼어퍽!! 퍼벅~!!! 맞아도 싸다.


태그:#그냥얼떨결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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