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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여수시 대경도, 할머니당 당산나무인 소나무의 지난 해 봄의 자태.
ⓒ 임현철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곳에는 여기저기 전설과 민담, 설화가 스며 있다. 삶에 그만큼 애환이 많다는 것을 반증한다. 대개, 섬의 전설은 주민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거나,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 혹은 남편을 기다리다 바위로 변한 전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전남 여수시 대경도의 전설은 색다르다.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긴 하지만 여기에 당산나무 전설이 녹아있다는 점이다. 하나 더 특이한 것은 보통 당산나무가 팽나무인데 반해 이곳은 소나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곳은 소나무에 얽힌 전설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10일, 대경도로 향했다. 외동에서 내동으로 가는 길 양쪽으로 제각과 당산나무인 소나무가 눈에 띈다. 가다가 도로 왼쪽으로 보이는 곳이 할머니당, 오른쪽 언덕에 자리한 것이 할아버지당이다. 풍경이 마치 그립엽서에 나와도 될 만치 아름답다. 그 전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지난해의 소나무.
ⓒ 임현철
500여년 전, 노부부가 키운 소나무 전설

"500여년 전 자손이 없던 노부부가 대경도에 거주하면서 소나무 두 그루를 심어 자식같이 키웠다. 자식이 없던 노부부는 소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마을을 지키는 이정표가 되길 바랐다.

소나무를 자식같이 돌보던 노부부가 죽은 후, 마을 사람들은 이를 당산나무로 지정하고 위쪽 노송은 할아버지 나무, 아래쪽은 할머니 나무라 불렀다. 주민들은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 당산제와 풍어제를 지냈다.

풍어제는 덕망 있는 고령자 가운데 제관을 뽑아 지낸다. 제관은 육식을 하지 않고, 부부관계를 1개월간 끊고 제사를 모신다. 제관이 부정한 짓을 하면 그 해에는 풍어와 풍년을 맞을 수 없고, 질병으로 주민들이 손해를 본다고 전해지고 있다."


▲ 지난해 만난 할머니당과 당산나무.
ⓒ 임현철
대경도 당산나무, 도로공사 때 뿌리 자른 뒤 고사

이 전설에는 생명의 기본욕구인 종족보존의 욕구를 소나무에 의지한 노부부의 애틋한 마음이 숨어있다. 이런 종족보존의 욕구와 맞물린 소나무 전설은 간절히 풍요를 갈망하는 조상들의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이런 전설로 인해, 대경도의 제당은 특이한 구조를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보통 섬들의 제당은 상당ㆍ중당ㆍ하당의 3단계로 구성된 데 비해 대경도는 할아버지당, 할머니당 2단계의 특이한 구조를 띠고 있다.

대경도의 제당을 둘러보기도 전에 할머니당의 소나무가 죽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멀리에서 봐도 솔잎 색깔이 숨이 다한 모습이다. 소나무가 원망하는 아우성을 들을까 봐 가까이 다가설 엄두가 나질 않는다. 지난해만 해도 무성한 솔잎을 거느리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었는데…. 이유가 뭘까? 여기저기 수소문한다.

당산나무 고사 원인에 대해 주민 심천수씨는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면서 "몇 년 전, 여수시의 농어촌도로 확포장공사 때 당산나무 뿌리를 자른 후, 작년부터 시들시들하더니 죽어가고 있다. 당산나무를 살리려는 별다른 조치가 없어 안타깝다"고 말한다.

▲ 지난해 마주한 소나무는 잎이 제법 푸르렀는데...
ⓒ 임현철
▲ 지난 10일 찾은 할머니 당집의 소나무 잎은 말라 있었다.
ⓒ 임현철
여수시 "당산나무 살릴 대책 없다"

여수시 관계자는 "보호수로 지정된 당산나무가 죽어간다는 제보에 따라 서울에서 온 전문가 등과 서너 차례 현장을 방문해 소나무를 살폈으나 (살릴) 가망이 없다는 판단이었다"면서 "영양주사를 주기는 했지만 근본대책이 없다"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소나무 뿌리를 자른 것은 몰랐다"면서 "70~80년대에 보호수 주변에 친 콘크리트 포장으로 나무뿌리가 숨을 못 쉬어 현재 여수 애양원 등 곳곳에서 고사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하면서 "콘크리트 걷어내기, 영양주사, 외과 수술 등의 처방에도 뾰쪽한 방법이 없다"는 애로사항을 전한다.

아무리 공사 중이었다 해도, 마을의 전설과 그에 따른 사정을 알았다면 멋대로 당산나무 뿌리를 잘라내진 못했을 것이다. 결국 공사 중 뿌리를 잘라낸 것은 무지의 소산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무지로만 치부하기엔 억지스러움이 있을 성싶다.

▲ 멀리서 봐도 말라있는 소나무를 확인할 수 있다.
ⓒ 임현철
나무 고사시키는 일, 다시는 없어야

믿기 힘든 일이지만, 수년 전 여수에서 토목공사 중 고인돌 유적을 그저 바위로 알고 포크레인으로 내리찍어 깨트린 적이 있었다. 당사자는 그날 밤 갑작스레 운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지역 향토사학자들은 "유물을 함부로 다뤄 화를 당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유야 어찌됐건, 보호수를 죽게 만들었다면 법적 제재가 가능하다. 산림생태계와 보호수의 지정, 보호, 관리 등을 규정하고 있는 산림법, 제116조 1항은 "산물을 절취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법이 아니더라도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다.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사연, 예기치 않은 일들과 대할 수밖에 없다. 다니는 걸 그만둬야 할지, 계속 다니면서 문화재와 자연 훼손을 막아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진다. 그래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하겠지….

죽어가는 당산나무, 살릴 비책 어디 없을까? '허준'과 '화타'가 아니더라도 나무 살릴 비책 한 수 가르쳐 주시길….

▲ 할머니 당집과 소나무. 아직 아름다운 자태가 남아있다. 소나무 살릴 방법 찾습니다.
ⓒ 임현철
▲ 할아버지 당집과 어우러진 소나무.
ⓒ 임현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와 미디어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당산나무, #대경도, #제당, #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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