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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김세옥 기자]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민사회란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됐다. 짧게는 십여 년에서 길게는 100년까지 이민의 역사를 쌓아온 나라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름의 이민자 통합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나라들 중에서도 대만은 벌써 20년 전 현재의 한국과 비슷한 상황을 맞았다는 점에서 정책 수립과 관련해 적잖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배우자를 찾지 못한 한국 농촌 남성들이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의 여성을 배우자로 맞고 있는 것처럼, 대만 역시 1980년대 후반부터 도시의 하층 노동자와 농촌 남성들이 인접 국가의 여성들을 배우자로 맞는 국제결혼에 나섰다. 대만 정부는 결혼이민을 통해 자국에 둥지를 튼 외국인 여성들의 인권과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걷어내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기도 주최로 5월 8일부터 이틀간 경희대에서 열린 '결혼이민자 가정 지원을 위한 심포지엄' 참석차 방한한 대만 내정부 이민서 이민사무조의 지이엔 후이 쥐엔(簡慧娟) 조장(사진)으로부터 한국 정부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의견을 들어봤다.

"혈통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에요. '코시안(Kosian)'이란 단어가 사라질 수 있도록 한국인 모두가 의식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결혼이민자 가정의 자녀들을 한국인(Korean)과 아시안(Asian)의 합성어인 '코시안'이란 명칭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 지이엔 조장은 우려를 표시했다. 그의 이 같은 지적은 코시안이라는 말이 한국사회에서 순수 혈통에 대한 일종의 대립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음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지이엔 조장은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구분'하는 단어가 계속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된다면, 다민족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서 "차라리 (외국인 배우자와) 더 많이 결혼시키는 게 해결 방법이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지이엔 조장은 또 결혼 중개업자들에게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외국인 배우자를 맞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 경우, 돈을 주고 사왔다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외국인 배우자들에 대한 비인격적 대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현행 등록제인 결혼중개업을 국제결혼중개업에 한해 허가제로 변환하기 위한 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지이엔 조장은 "대만에도 결혼중개업이 등록제로 존재하고 있지만, 결혼중개업을 허가제로 하건 등록제로 하건 혼인을 영업 상품으로 다루는 일 자체가 인간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인 만큼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대만은 결혼중개업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을까. 지이엔 조장은 "5개월 전 행정원 원장(국무총리) 주재로 민관의 전문가들과 학자들이 모여 회의를 열고, 결혼중개업소들이 여행업 등 다른 업종으로 변경토록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만에서도 국제결혼에 대한 수요는 여전한 게 현실. 지이엔 조장은 "혼인을 영업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비영리단체에 중개 역할을 맡겼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혼 상품을 취급하지 못하게 된 업자들이 비자 대행 발급 등을 이용, 비리를 저지를 것에 대비해 이들 업무에 샘플링 가격 제도 등을 도입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지이엔 조장은 또 "중앙정부가 '다양성'에 입각해 수립한 정책들이 지방정부로 내려가면서 성과주의에 매몰, '동화' 정책으로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면서 "중앙과 지방정부가 자주 정례모임을 갖고 정책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혼이민자 지원’국제심포지엄
‘동화’정책보다 ‘다문화 이해’에 중심을

경기도 주최로 열린 '결혼이민자 지원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한 대만, 일본, 뉴질랜드의 결혼이민자 가정 관련 정책 담당자들은 '동화'가 아닌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중심에 둔 지원 노력을 강조했다.

일본 가나가와현―지역민들을 다문화 전문가로

일본에서 외국 국적자가 네 번째로 많은 가나가와현의 현민청 국제과 과장 오가와 교코씨는 "결혼이민자 가정의 배우자들이 언어를 학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이 통한다고 해서 그들이 직면한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가나가와현의 신규 시책인 '다문화 소셜 워커(social worker)' 양성 제도를 소개했다.

결혼이민자 가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폭력 문제가 결국 서로의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하는 만큼, 해당 지역에 오랫동안 거주한 지역민들을 다문화 전문가로 교육시켜 일상생활 속에서 일본인 남성(여성)들에겐 외국인 배우자 나라의 문화를, 그리고 외국인 배우자들에겐 일본의 고유한 문화와 습관 등을 이해하고 익숙해지도록 돕게 하는 것이다.

가나가와현은 또 정례적으로 '외국 국적자 현민 회의'를 개최함으로써 외국인 배우자들을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문제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대만―선배 결혼이민자 여성이 후배 교육

대만에서는 기존의 외국인 배우자들이 '성인 기본교육 교사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 새로운 외국인 배우자들에 대한 교육을 담당토록 하고 있다.

또 대만인들의 인식 개선을 위해 지난 10년 동안 32억원(대만 화폐 기준)을 들여 타문화 존중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결혼이민자 가정 자녀의 양육 협조 차원에서 국공립 유치원, 탁아소 등에 외국인 배우자의 자녀가 우선적으로 입학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박화서 명지대 교수는 "각국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외국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된 사회통합 모델일지라도 우리나라에는 부적절한 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라고 지적하면서도 "여러 모델을 참고하면서 동시에 민관이 협력해 우리 현실에 맞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기선 경기도가족여성개발원 정책개발실장은 "국적 취득 여부를 떠나 지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가나가와현의 사례나 외국 국적자에 대한 자국민의 인식 전환을 위한 대만의 광범위한 교육 노력은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태그:#여성, #우먼, #혈통, #코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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