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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저지를 위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진행하고 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저지를 위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진행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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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24일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마친 네 번째 주자 박원석 정의당 의원에게 "오늘 박근혜 대통령이 화를 많이 냈다더라"라고 말을 건네자 "이것(무제한 토론) 때문에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박 의원은 바로 전 주자였던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무제한 토론을 시작한 24일 오전 2시 30분부터 자신이 무제한 토론을 마친 24일 오후 10시 18분까지 꼬박 본회의장에 머물렀던 탓에, 박 대통령의 청와대 회의 발언을 알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관련기사 : 박 대통령, 주먹으로 책상치며 "필리버스터? 기가 막힌 현상").

기자가 다시 "책상을 여러 차례 내리쳤다더라"라고 전하자 박 의원은 "대통령이 분노하면 우리가 쫄아서 뭐라도 해야 하나"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무제한 토론을 진행하던 도중 조원진 새누리당 수석부대표의 방해를 두고도 "새누리당 입장에선, 그냥 와서 한 번씩 건드려보는 거다, 그거야 언제나 있었던 일이니"라고 지적했다(관련기사 : 여당 삿대질 항의에 이석현 "경청하라").

"가장 힘든 점? 은수미"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가 24일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정의당 박원석 의원의 무제한 토론이 이어지는 동안 토론 내용이 주제와 맞지 않는다며 이석현 부의장에게 제지시킬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의장석 앞까지 나와 조원진 의원을 퇴장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새누리당 조원진 원내수석부대표가 24일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정의당 박원석 의원의 무제한 토론이 이어지는 동안 토론 내용이 주제와 맞지 않는다며 이석현 부의장에게 제지시킬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의장석 앞까지 나와 조원진 의원을 퇴장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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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9시간 29분 동안 무제한 토론을 진행한 박 의원은 부쩍 수염이 많이 자라있는 등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묻는 질문에 "은수미 의원"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제일 힘든 게 대기하는 것이었다"라고 설명한 그는 "내 앞 주자가 무제한 토론을 시작하면 미리 본회의장에 와 대기하라고 하더라, 내 앞이 은 의원 아니었나"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박 의원이 토론을 끝낸 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박원석 의원이) 더 할 수 있었지만 은수미 의원님의 기록으로 남겨놓겠다며 마무리하신 거라네요, 이후 (토론) 주자들도 괜히 이상해질까봐 그렇다고요"라는 글을 올렸다. 10시간 18분 최장시간 필리버스터의 기록을 은 의원의 몫으로 남겨두기 위해 박 의원이 토론을 9시간 29분으로 마무리했다는 것이다.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양복을 입은 채 운동화를 신고 있는 박 의원의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첫 주자였던) 김광진 더민주 의원의 첫 소감이 '무엇보다 발이 아팠다'는 것이었다"라며 "그래서 운동화를 신었는데 좀 더 좋은 운동화를 신었어야 했다, 발이 너무 아프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소변도 안 마려웠고, 배도 안 고팠고, 목도 안 말랐는데, 앞에선 안 보였겠지만 밑에선 신발을 벗었다가, 구겨 신기도 했다가를 반복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마침 인터뷰를 진행하던 본회의장 앞을 무제한 토론 다다음 주자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나가자 박 의원은 "그 신발 안 돼, 더 좋은 거 신어야 해"라면서 농담 섞인 조언을 던지기도 했다. 아래는 박 의원과 나눈 대화를 요약한 것이다.

- 수고 많으셨다.
"어이구, 퇴근들 하세요." 

- 9시간 29분 동안 무제한 토론을 진행했다. 소감 한 말씀 해달라.
"얼마나 했는지 재지도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좀 더 있었는데 다 못했다. 저도 많이 지치기도 했고, 뒤에서 기다리는 의원들도 있어서…. 오늘 저까지 네 명이 무제한 토론을 진행했는데, 어차피 테러방지법 쟁점은 정해져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더 할 수 있으니 체력도 안 되는데 욕심내지 말자는 생각으로 단상을 내려왔다.

"직권상정? 국회, 대통령·국정원에 굴복"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저지를 위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진행하고 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2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 저지를 위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진행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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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제한 토론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테러방지법 문제 이전에 국정원에 주목했다. 질의 순서도 이에 맞춰 국정원 내용을 앞에 배치했다. 국정원 과거사 진실위원회 보고서와 이명박 정부 시절 있었던 국정원의 문제점 등 자료는 많은데 자칫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나중에 힘이 빠질까봐 압축했다.

그래도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다 했다. (무제한 토론 도중) 결론 부분에도 말했지만 테러방지법은 필요하면 만들면 된다. 다만 어쨌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2001년 처음 법안이 제출됐고 그 동안 여러 안이 나왔는데, 한결같은 문제는 국정원에 권한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가뜩이나 국정원의 일탈이 많았는데, 최소한의 견제도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특히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이란 방식은 국가비상사태에 거론할 만한, 일종의 준전시상태일 때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 그런 상황인가. 전방 부대도 준전시 상황이 아닌데, 국회만 준전시 상황인 것처럼….

결국 국회가 정부와 국정원의 의지에 굴복한 거다. 민의의 전당이자, 삼권분립의 한 주체이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대통령과 정보기관의 완력이 밀려 오점을 남긴 거다. 부끄러운 일이다. 정 의장이 여러모로 중립을 잘 지키면서 의장으로서 역할을 많이 해왔지만 이번 사태는 굉장히 유감이다."

- 정의당 의원 중 처음 무제한 토론에 나섰다.
"이번 무제한 토론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신청했기 때문에, 당초 우리 당이 참여할 생각은 못했다. '기회가 오면 통상적인 토론 정도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제한 토론이 신청되면 모든 토론이 무제한 토론으로 진행된다고 해 우리 당에선 제가 먼저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이왕 전선이 만들어졌는데 물러서면 안 되지 않겠나. 김제남, 서기호 의원도 모두 신청해놓은 상태다.

테러방지법 그리고 직권상정 때문에 무제한 토론을 진행하게 된 것은 유감이지만, 의회정치 내지는 토론을 통한 정치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이 제도는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여당은 우리가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무제한 토론을 두고 다수당이 소수당보고 악용하고 있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발 너무 아파, 신발 벗었다가 구겨 신었다가..."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24일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무제한 토론을 끝내고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 24일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의 본회의 의결을 막기 위한 무제한 토론을 끝내고 본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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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를 맹비난했다고 하는데.
"이것 때문에?"

- 그렇다. 책상을 내려쳤다고.
"자기가 분노하면 우리가 쫄아서 뭐라도 해야 하나.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 무제한 토론 당시 새누리당의 항의가 있었는데.
"조원진 새누리당 수석부대표 입장에선, 그냥 와서 한 번씩 건드려보는 거다. 그거야 언제나 있었던 일이니…."

- 이석현 국회부의장과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새누리당을 저지하기도 했는데.
"이 부의장은 단호하게 (조 수석부대표의 항의를) 잘랐다. 심 대표 입장에선 자당 의원이 질의하는데 큰 당의 수석부대표가 항의하니 이를 막기 위해 나온 것 아니겠나."

- 무제한 토론 도중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첫 주자였던) 김광진 더민주 의원의 첫 소감이 '무엇보다 발이 아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운동화를 신었는데 좀 더 좋은 운동화를 신었어야 했다. 소변도 안 마려웠고, 배도 안 고팠고, 목도 안 말랐다. 그런데 발이 너무 아프더라. 앞에선 안 보였겠지만 밑에선 벗었다가, 구겨 신기도 했다가…."

▲ 9시간30분간 발언 박원석 "박대통령이 분노했다고 우리가 쫄아야 하나?" 국회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맞선 무제한 토론 '필리버스터' 정의당 첫 주자로 나선 ?박원석? 의원이 9시간 30분간의 발언을 마치고 본회의장을 나왔다.
ⓒ 강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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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대기시간, 다리 풀리면 어쩌나 걱정"

(유승희 의원 다음으로 무제한 토론에 나설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본회의장을 향해 걸어간다.)

박원석 : "그 신발 안 돼. 더 좋은 거 신어야 해."
최민희 : "이거 엄청 좋은 거야."
박원석 : "(서 있으면) 체중이 실려서 발이 엄청 아프더라고."
최민희 : "김광진도 그랬어. 발바닥이 그렇게 아프대. 큰 일 났네. 수고하셨습니다."

- 무제한 토론 마치고 거울 좀 봤는지. 
"초췌한가?"

- 수염도 좀 많이 자랐다.
"하하."

- 제일 힘든 게 뭐였나.
"제일 힘든 게 대기하는 거다. 내 앞 주자가 무제한 토론을 시작하면 미리 본회의장에 와 대기하라고 하더라. 내 앞이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아니었나. 오전 2시 30분부터 낮 12시 48분까지 한 숨도 못자고 스탠바이했다. 잠도 못자고 씻지도 못했다. 그리고 나서 단상에 올라가려고 하니 '다리 풀려서 쓰러지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막상 하니 큰 문제는 없었다."

- 이후 일정은 어떻게 되나.
"일단 집에 가서 자야겠다."

- 식사는 어떻게 했나.
"나와서 바로 먹었다. 유대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챙겨줘서 북엇국 한 그릇 먹었다."


태그:#테러방지법, #직권상정, #필리버스터, #박원석,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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