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기침을 많이 하고 목이 아프다고 해서 소아과에 들렀습니다. 처방전을 받아서, 나란히 붙어있는 약국에서 약을 사면서 아이가 비타민음료도 사자고 해서 한 상자를 함께 계산하도록 했습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에 탁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고개를 들어 소리의 출처를 찾으려 했지만, 약사는 이미 미동도 없이 제 손에 들린 지폐만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값을 치르고 계산대를 자세히 보니 여덟 모서리가 모두 뭉툭해진 음료 상자가 정히 놓여 있었습니다. '톡톡톡톡'하고 났던 소리는 모서리를 계산대 탁자에 내리찧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비닐봉지에 담긴 물건을 들고 나오며 생각해보니 예전에 같은 종류의 상자 모서리에 팔뚝을 긁혔던 기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양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차에 올라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형민아, 좀 전에 약사 할아버지가 비타민 음료 주실 때 '톡톡톡톡 톡톡톡톡'하고 책상에 두드리고 주셨지? 뭘 하신 것 같애?""글쎄, 상했는지 살펴보는 것 아니었을까?""박스를 살펴봐 봐. 모양이 변했을걸.""모서리가 둥글어졌어.""그렇지? 그럼, 약사 할아버지는 왜 그렇게 하셨을까?""비닐봉지에 담을 때 봉지가 찢어지지 말라고?""오~ 그렇구나. 아빠는 그것까지는 생각을 못했네. 그리고 또?""모서리에 다칠까봐?""그래, 맞아. 이런 걸 '배려'라고 하는 건데, 그 할아버지가 우리를 배려해 주신거야.""응, 맞아."이 아이는 이제 '배려'라는 낱말을 접할 때마다 이 뭉툭해진 모서리와 약사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사가 베푼 작은 배려 하나가 자신을 얼마나 마음 따뜻하게 해주었는지를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