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마트가 지난 10일부터 모든 점포에서 매일유업·빙그레가 생산하는 이마트 자체 브랜드(PL·Private Label) 우유 판매를 중단하자, 곧바로 다른 PL 제품의 품질 논란으로 확산됐다.
 이마트가 지난 10일부터 모든 점포에서 매일유업·빙그레가 생산하는 이마트 자체 브랜드(PL·Private Label) 우유 판매를 중단하자, 곧바로 다른 PL 제품의 품질 논란으로 확산됐다.
ⓒ 이나영

관련사진보기


지난 14일 오후 신세계 이마트 서울 가양점, 주말을 맞은 매장은 고객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붐볐다. 1층 식품매장 음료코너 한쪽으로 다양한 우유 제품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다. 고객들의 손이 많이 가는 것은 아무래도 '이마트 자체상표(PL, Private Label)' 우유 제품이다. 제조업체의 브랜드 제품(NB, National Brand)에 비해 500원(1000ml 용량 기준) 정도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불황 효과' PL제품 선호도 높아졌지만...

불황이 깊어질수록 대형마트 PL제품의 매출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몇 달 전만 해도 PL제품과 NB제품 앞에서 머뭇거렸던 주부 이아무개(31)씨도 요즘엔 다른 제품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PL제품만 골라서 산다고 한다. 이날도 이씨는 '이마트 우유'부터 찾았다. 그런데 이씨가 주로 구입하는 1000ml 우유가 보이지 않았다.

점원을 불러 문의하자, "생산시설 점검 때문에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실제 진열대 하단에는 '[쇼핑안내] 매일유업에서 생산되는 이마트 1000ml 우유가 생산시설 점검으로 인해 잠시 공급이 지연되고 있습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이 꽂혀 있었다.

'생산시설 점검'이라는 말에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은 그는 집으로 돌아와 뉴스를 검색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트가 매일유업·빙그레가 제조한 '이마트 PL우유' 제품에 대해 "품질 논란이 있다"며 지난 10일부터 판매를 중단한 것이다. 관련 기사를 한참 읽던 그는 다시 의문이 생겼다.

매장에서는 1000ml 제품만 제외한 채 '이마트 우유' 200ml와 500ml, '이마트 저지방 우유' 등은 여전히 판매되고 있었다. 매일유업에서 제조한 '이마트 PL우유' 품질에 문제가 있다면 모든 용량의 제품을 판매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이씨는 "가격은 내렸지만 품질을 양보하지는 않았다"며 자신들의 PL 상품을 대대적으로 선전한 이마트 측에 화가 났다. 그제서야 안내문에 '품질' 얘기는 쏙 빠진 채 '생산시설 점검'이라고만 쓰여 있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장바구니 안에 가득 담긴 이마트 PL제품들을 꺼내 한 쪽으로 밀쳐놓으면서 그 동안 품질은 따져보지 않고 가격 저렴한 것만 생각했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매일유업에서 생산되는 이마트 1000ml 우유를 매장에서 팔지 못하게 됐다는 안내문.
 매일유업에서 생산되는 이마트 1000ml 우유를 매장에서 팔지 못하게 됐다는 안내문.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관련사진보기


'이마트 PL우유' 품질 논란의 진실은?

이마트의 우유 PL제품 판매 중단 조치는 매우 이례적이다. 매일유업은 지난 1997년부터 이마트 우유를 납품했지만 품질 논란으로 판매가 중단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빙그레는 지난해 9월부터 '이마트 바나나맛·딸기맛 우유'를 납품해왔다.

이마트 관계자는 "PL상품을 개발할 때 제조업체 상품과 동급 아니면 그 이상의 품질을 유지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며 "매일유업과 빙그레가 자사 브랜드 우유와 이마트 PL우유의 품질이 다르다고 주장함에 따라 PL제품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판매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매일유업의 자체 브랜드 '매일우유 ESL'은 공장 내 ESL 라인에서 생산하는 '1A등급(mL당 세균 수 3만마리 미만)'이지만 매일유업에서 제조한 '이마트 우유'는 일반 라인에서 만드는 '1등급(10만마리 미만)' 우유라는 것이다. 빙그레의 경우는 '이마트 바나나맛·딸기맛 우유'의 원유 함유량이 빙그레 자체 브랜드 '바나나맛 우유'보다 6% 가량 낮다. PL제품 자체 품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NB제품과 품질 차이가 있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앞서 이마트는 지난 10, 11일 이틀에 걸쳐 이미 납품 받은 이마트 우유 4만개와 이마트 바나나맛 우유 1000개를 폐기 처분했다. 하루 3만개의 이마트 PL우유를 납품했던 매일유업은 이마트의 주문이 끊기면서 매일 4000여만 원씩 매출 손실을 보고 있다.

매일유업이나 빙그레측은 이마트의 조치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매일유업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엄밀히 말하면 품질 차이는 있지만, (판매 중단을 할 만큼) 그렇게 큰 차이가 아니다"며 "생산 라인도 PL과 NB제품이 동일 라인을 쓰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PL제품과 NB제품이 동일한 ESL 라인을 사용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난 12년간 다른 생산라인을 쓰다가 지난해 12월에서야 같은 라인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

빙그레 측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빙그레의 한 관계자는 "품질의 차이가 아니고 성분의 차이"라며 "우리는 이마트에 납품하는 PL제품을 별도의 제품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NB제품과) 성분도 다르고 용기 모양도 다르게 만들었다. 소비자가 혼동할 여지가 적고, 그동안 이마트 쪽과 갈등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기현 빙그레 홍보실장은 "유통회사가 시장점유율 1위 회사에 PL 제품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건 '제 살 깎아 먹으며 죽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며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보다 '맛이 없는' 이마트 바나나맛 우유를 소비자들이 완전히 별개의 제품으로 인식하도록 용기와 용량을 다르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고 <동아일보>가 지난 9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또 "빙그레는 자체 브랜드 '바나나맛 우유'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마트에 납품하는 '이마트 바나나맛 우유'의 품질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이 보도는 이마트가 빙그레 등의 PL제품에 대해 판매 중단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하지만 빙그레측은 이마트의 판매 중단 조치 이후 180도 입장을 바꿨다. 빙그레 관계자는 "(김기현 실장은) 일반적인 얘기를 한 것일 뿐, 빙그레가 그랬다는 것도 아니고, 이마트를 대상으로 한 얘기도 아니다"며 "성분 차이라고만 했는데, 우리가 하지도 않은 말이 기사로 보도됐다"고 해명했다.

이마트측의 입장은 확고하다. 이마트 관계자는 "(빙그레 측과) 맛과 품질의 차이는 있을 수 없다는 내용으로 계약했다"며 "성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성분의 차이가 낮은 품질의 차이를 가져온다면 당연히 판매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마트의 이번 조치가 PL 제조업체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마트의 우유 PL제품 판매 중단은 곧바로 다른 PL제품에 대한 품질 논란으로 확산됐다. 이마트가 이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이마트가 우유 PL제품에 대해 판매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빙그레 등 우유제조 업체에 압박을 가해 다른 PL제조업체의 '본보기'로 삼겠다는 노림수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마트 측은 "요즘 세상에 어떻게 보복을 하겠느냐"며 "만약 '괘씸하다, 보복하겠다'고 했다면 (매장에서) 해당 제조사의 자체 상품을 전부 빼 버리지, 왜 우리 PL제품을 뺐겠느냐"고 부인했다. 결국 '갑·을 관계'인 유통업체와 제조업체간 힘겨루기 싸움에 한 푼이라도 아껴보겠다며 PL제품을 애용했던 소비자들의 혼란만 가중된 셈이다.

이마트를 비롯해 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할인 마트는 최대 40%까지 저렴한 자체 브랜드 상품을 확대하고 있지만, 품질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마트를 비롯해 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할인 마트는 최대 40%까지 저렴한 자체 브랜드 상품을 확대하고 있지만, 품질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 이중현

관련사진보기


PL제품 가격 저렴한 이유 있었네

대형마트 PL제품에 대한 품질 의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NB제품에 비해 최대 40% 이상 저렴하다면 품질에 어떤 식으로든 하자가 있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물론 대형마트 측은 유통 물류비용과 마케팅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낮은 가격을 맞출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오히려 물가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강한 판매 채널을 앞세운 대형마트의 무리한 납품원가 인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제조사로서는 원가절감을 위해 함량미달의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는 우려가 늘 제기돼 왔다.

실제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8월 조사한 대형마트 납품 중소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PL제품 납품 중소기업의 78.8%가 '납품가격이 적정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PL제품 확대의 단점으로는 '저가납품으로 원가부담 가중(38.6%)', '자사 브랜드 포기로 자생력 약화(24.2%)' 등을 꼽았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중소업체들은 실제 대형마트로부터 불공정 거래 등 피해를 입고 있지만, 안정적인 판로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표면적으로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심지어 중소업체 간담회 자리에 자신들의 명패조차 놓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일부 PL제품은 NB제품에 비해 가격은 저렴하지만, 주요 성분이 적게 함유된 것으로 밝혀져 구입 시 소비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해 8월 이마트·홈플러스 등 7개 주요 대형할인점에서 판매하는 식품·생활용품 등 37개 품목의 PL(PB)제품과 NB제품에 대한 가격·표시 실태조사 및 소비자 설문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 조사에서 PL제품과 규격·용량이 같거나 유사한 NB제품들과의 평균 단위가격을 비교한 결과, NB제품 대비 PL제품의 가격이 평균 24%로 저렴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나 가격을 제외하고 품질·안전성 등에 대한 전반적인 소비자 만족도는 PL제품이 NB 제품보다 낮았고, 특히 햄·소시지·커피믹스 등 일부 품목의 PL제품은 가격이 싼 대신 주요 성분의 함량이 NB상품에 비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가득 불고기햄'과 '하나가득 비엔나소시지'는 PL제품이 NB제품에 비해 각각 11.1%, 29.9% 저렴한 반면, 주요 성분인 돼지고기가 30% 이상 적게 함유돼 있고 대신 닭고기가 일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이마트 스타믹스 모카골드', '홈플러스 좋은상품 모카골드 커피믹스', '와이즐렉 모카골드'(롯데마트)는 NB제품보다 단위 가격이 6.3~30% 저렴하지만 커피 함량이 각각 12%, 12.5%, 11.7%로 NB제품에 비해 '인스턴트 커피' 함량이 0.7~1.6% 차이 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소비자원은 "대형마트는 PL제품을 단순한 저가 상품이 아니라 '품질은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가격까지 저렴하다'고 안내하고 있다"며 "주요 성분이 NB제품에 비해 차이가 나는 PL제품에 대해서는 매장 내 게시물 등을 통해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으며, 소비자들도 표시 사항을 꼼꼼히 확인한 뒤 구입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태그:#대형마트 PL제품, #NB제품, #이마트 PL 우유, #매일유업, #빙그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