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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김, 들리나요? 

 

당신이 있는 곳까지 이 편지가 가 닿는다면, 부디 한 번만 읽어주세요. 이 편지가 당신에게 무사히 배달된다면, 당신이 소리 내어 한 번만 이 편지를 읽어준다면, 나는 진심으로 기쁠 거예요. 처음 보는 이름이 발신인으로 적혀 있어서 당신이 이 편지를 못 본 척 할까봐 나는 겁이 나요. 딱 한 번이면 충분해요. 더는 바라지도 않을게요.

 

당신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우선 내가 누군지 먼저 말해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최소한의 예의니까요. 그래야 당신이 조금이라도 덜 당황할 테니까요.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나 자신도 말하기가 무척 어려워요. 어차피 사람이란 자신도 자신을 잘 모르는 존재들이니까요.

 

그래서 고민을 좀 했어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러다가 기억의 갈피에 끼어 있는 그 날이 떠올랐어요. 그날의 풍경이 그 대답이 될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의 외로움은 문신처럼 내 영혼의 표피에 새겨져 흉터로 남았으니까요. 오랫동안 나를 지배하는 상처가 되었으니까요.

 

*

 

초등학교 1학년 여름이었어요. 나는 교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죠. 화선지에 떨어진 먹물처럼 먹장구름이 하늘에 번져가고 있었어요. 한 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어와 내 목덜미에 닿았어요. 비를 몰고 오는 바람이었죠. 창 밖 풍경이 잿빛 하늘에 잠겨 일렁였고, 곧이어 호도독호도독거리며 빗방울이 플라타너스의 커다란 잎으로 내리기 시작했어요.

 

학교건물 앞에는 엄마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어요. 엄마는 아이들을, 아이들은 엄마를 찾느라 금세 시끌벅적해졌죠. 이내 아이들은 모두 자신들만의 엄마를 찾았어요. 형형색색의 우산들 아래로 사이좋게 포개져 있는 네 개의 다리들이 나만 홀로 남겨두고 멀어져갔어요. 그들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나는 오도카니 서서 그들의 다정한 다리를 바라보았어요. 소란스러움이 감쪽같이 사라진 자리에는 빗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려왔죠.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졌어요. 비바람이 플라타너스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었고, 잿빛 하늘은 점점 더 아래로 주저앉았어요. 번개가 내리꽂히고 천둥이 지축을 뒤흔들며 들려왔어요. 무채색으로 뿌옇게 젖어가는 운동장을 바라보았어요. 아무도 보이지 않았죠.

 

나는 현관문 옆에 팔다리를 오그려 몸을 옴츠리고 앉았어요. 반드시 와줄 거라는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어요. 번개가 눈앞에서 연신 번쩍거렸어요. 나는 양손으로 귀를 막았어요. 천둥이 무서웠어요. 혀를 놀려 “엄마―.” 라고 말해보았어요.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엄마가 있는데, 내 엄마는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폭우가 쏟아지는 학교건물의 현관문 옆에서 공벌레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아버지를 기다렸어요.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버지는 오지 않았죠.

 

나는 외로움에 지쳐 잠이 들었어요. 비를 맞아 감기에 걸린다고 하더라도 빗속을 뚫고 내달릴 용기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내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아버지는 조심조심 나를 등에 업었어요. 아버지의 손길이 내게 닿는 순간, 나는 왈칵 눈물이 났어요. 아버지의 품에서 풍기는 스킨 냄새가 향긋하게 느껴졌죠. 하지만 나는 계속 자는 척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버지의 눈동자가 비에 젖은 유리창처럼 흐릿해져 있는 걸 보았으니까요.

 

아버지의 등은 넓고 따뜻했어요. 아버지는 한 손으로는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나를 들쳐 업었어요. 아버지의 등에 나는 새끼 코알라처럼 찰싹 달라붙었어요.

 

빗속을 뚫고 아버지는 곧장 옷가게와 신발가게로 갔어요. 그러고는 내게 노란 비옷과 장화를 사주셨죠. 노란 비옷과 장화를 뽐내며 비 오는 골목을 걸을 때면 친구들은 하나같이 부러운 시선으로 나를 힐끔거렸어요. 나는 보란 듯이 부러 물이 고여 있는 길가의 웅덩이로 걸었어요.

 

첨벙첨벙―.

 

노란 장화가 씩씩하게 웅덩이의 흙탕물을 갈랐어요. 그 덕분에 샘 많은 친구들은 나를 따돌렸죠. 하지만 나는 괜찮았어요. 비록 엄마라고 불리는 여자는 없지만, 노란 비옷과 장화가 있었으니까요. 쨍쨍 햇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노란 비옷을 입고 마당을 맴돌았어요.

 

"아이 씨, 왜 이렇게 비가 안 오는 거야."

나는 원망에 찬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투덜거렸어요.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던, 그날의 외로움이 나를 방문했어요. 그 외로움은 방울뱀처럼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아 딸랑딸랑 소리를 냈죠. 그 방울소리만은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단편소설 연재를 시작하며

4년 만에 다시 오마이뉴스의 문을 두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태우의 뷰파인더>에 글을 올린 게 2004년의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난 4년 동안, 제 인생은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오랫동안 만났던 연인과 결혼을 했고, 아기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꿈'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10여 편의 단편소설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제일 먼저 독자 여러분들과 이 글을 나누려고 합니다.

 

<미안해요, 미스터 김>에 제가 쓴 문장처럼, '여러분이 제 글을 소리내어 한 번만 읽어준다면 저는 진심으로 기쁠 겁니다.'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태우의 글상자>라는 보금자리도 꾸몄습니다. 월, 수, 금에 소설을 기사로 올리고, 기사로 올리기 하루 전에 1회분을 미리 게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좋은 인연이 되길 빌겠습니다.  


태그:#단편소설, #태우의 글상자, #미안해요 미스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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