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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당신에게 말하려다가 이야기가 좀 길어졌네요. 한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그 사람의 아픔을 알면 된다고 나는 믿어요. 진실과 제일 닿아 있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아픔이에요.

 

  미스터 김, 이제 당신에게 내가 누구인지 말해드릴게요. 스무 살이 넘은 후에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에요. 한동안 진심 같은 것은 감추고 살아왔거든요. 내 인생의 모든 아픔은 바로 그 방울 소리에 숨어 있어요.

 

  아무도 오지 않던 외로움, 번개와 천둥 치는 세상, 가여운 아버지, 그리고 엄마라고 불리는 여자의 부재 (不在)....... 그런 것들이 뒤섞여서 나를 만들었어요. 나를 규정하는 것들은 어떤 단절이에요. 그리고 이제 내게는 그 어디에도 노란 비옷과 장화가 없네요.

 

  세월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번개와 천둥치는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내 마음 은밀한 곳에는 항상 시커먼 외로움이 웅크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내게도 영혼의 안식처가 생기게 되었죠.

 

*

 

  나는 아직도 동물원에 처음 갔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해요. 인생을 살다보면 섬광처럼 번뜩이며 다가와, 판화처럼 뇌의 주름에 선명하게 각인되는 날이 있어요. 그날이 나에겐 그랬어요.

 

  고등학교에 올라가 처음으로 치른 중간고사가 끝난 날이었어요. 그날 나는 종점여행을 했어요. 아무 버스에나 무작정 올라타 종점까지 갔다 오는 게, 당시에는 유행이었죠. 중간고사를 망치기라도 했던 걸까요? 별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버스를 탄 것인지도 몰라요. 그날의 기억은 또렷한데, 이상하게도 왜 종점여행을 하게 됐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시외버스 11번을 타고 서울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나는 짜릿한 흥분을 느꼈어요. 아주 먼 곳으로 떠나는 기분이 들었죠.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나는 차창을 열어두었어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었죠.

 

  시외버스 11번의 종점은 서울대공원이었어요. 대공원의 봄은 아름다웠어요. 울긋불긋한 봄꽃들 위로 해사한 봄볕이 촘촘히 내려앉고 있었죠. 곧장 다시 서울로 돌아갈 작정이었어요. 그런데 버스가 좀처럼 오지 않았어요. 지루해진 나는 잠깐 동안 엉뚱한 생각을 했어요.

 

  대공원은 과천에 있는데, 왜 '서울'대공원이지?

 

  순간, 나는 들었어요.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덧붙이는 글 | 소설 연재본은 오마이뉴스 블로그 <태우의 글상자>에도 올려놓겠습니다. 좋은 소통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태그:#태우의 글상사, #미안해요 미스터 김, #김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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