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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영남권 4개 시·도당(대구, 경북, 울산, 경남)은 지난 18일 전당대회 보이콧 방침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하루 전에 이들은 당 지도부가 영남권 지역위원장을 잘 인준해 주지 않고 영남권에 대의원을 너무 적게 배정했다고 주장하면서 7·6 전당대회 일정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한 바 있다.

 

당 지도부가 뒤늦게 영남권 지역위원장을 추가 선정하면서 어느 정도 불만이 해소되어 전당대회 보이콧 소동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전당대회에 참가하는 대의원 수의 배분 방법은 바꿀 수 없다는 것이 당 지도부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당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선출, 정강 정책 채택 등 가장 중요한 결정권을 행사하게 될 민주당의 대의원 선정 방법은 명백히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전체 대의원의 60%는 각 지역에 고르게 배분하고 나머지 40%는 지난 4·9국회의원 총선거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지역에 차등 배분하기로 했다. 이런 배분 방법의 취지는 각 지역의 정치적 업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어서 당 조직을 활성화하자는 뜻으로 짐작된다. 성과에 따른 차등 배분으로 경쟁을 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를 민주당과 같이 지역 사이의 지지도 차이가 엄청나게 큰 상황에 적용하면 명백히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지난 4·9총선에서 민주당은 전반적으로 부진했지만 특히 영남 지역에서 얻은 지지도는 참담할 정도였다. 지지도의 불균형이라는 점에서 보면 민주당은 '결손(缺損) 정당'이다. 영남지역의 대의체계는 완전히 붕괴한 상태다. 이와 같이 지지도의 지역별 불균형이 심각한 상태를 근거로 대의원을 차등 배분하면 민주당은 '결손(缺損) 정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본다.

 

민주당이 이번에 적용하고 있는 대의원 배분의 차등은 대단히 크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있는 영남지역 민주당 활동가들의 실망과 좌절감은 특별히 큰 것 같다. 영남지역에서 민주당 활동은 '독립운동'이라고 할 정도로 힘든 일인데 그러한 어려움을 알아주고 격려해 주기는커녕 지지도가 형편없으니 그만큼만 대접해 주겠다고 하면 영남지역에서 민주당의 깃발을 들고 일하겠다는 사람은 점점 더 찾기 어렵게 될 것이 분명하다.

 

민주당의 깃발을 들겠다는 사람이 줄어들면 지지도가 줄어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영남지역에 대한 당의 자원 배분은 따라서 축소될 것이고 그것은 또 지지도의 하락으로 악순환될 것이다.

 

민주당 영남 지지도 부진은 중앙 지도부 탓

 

이러한 민주당 지도부의 결정을 지켜보면서 제3세계 저발전의 악순환을 설명하는 '희생자 비난론(victims-blaming-theory)'을 떠올린다. 제3세계의 저발전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과 억압의 결과임에도 제국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제3세계 저발전은 제3세계 자신의 내부 요인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식의 틀을 '희생자 비난론'이라고 한다.

 

불행하게도 제국주의자들의 '희생자 비난론'처럼 민주당 지도부는 영남 지역에서 활동하는 자신들의 동지들에게 "영남지역의 부진은 영남지역 자신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너희들이 못난 만큼 그에 상응하는 권한만 배분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영남 지역의 낮은 지지율을 영남지역 내부의 탓으로 돌리는 제국주의 식의 '희생자 비난론'에 빠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지도부의 '희생자 비난론'은 천부당만부당하다. 영남지역에서 민주당의 지지도가 지지부진한 것은 영남지역 내부 탓이 아니라 중앙 지도부의 탓이다.

 

첫째, 동진정책의 실패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기사(2008.3.11) "김대중-노무현 '동진정책' 이래서 실패했다- 영남에 '돈'과 '자리' 쏟아 부었으나 '싸울 전사'는 전무"가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국민의 정부는 엄청난 '돈'을 쏟아 넣고, 참여정부는 온갖 '자리'를 쏟아 넣고도 지난 4·9총선에서 출마자조차도 채우지 못한 영남지역의 가슴 아픈 현실은 이른 바 '동진정책'의 총체적 부실 때문이었지 영남지역 내부의 탓이 아니다.

 

'동진정책'이 개혁역량을 조직적으로 배양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지 않고 지역 기득권 세력, 지역 명망가들과 제휴하였기 때문에 지역의 지지기반이 축적되지 않았던 것이다.

 

둘째, 통합과정에서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과 구 민주당이 해체, 재구성되어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이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개혁정체성이 부각되지 못하고 지역적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강화되어 버렸다. 영남지역에서 민주당의 지지율이 다른 어떤 지역에서보다도 지지부진했던 것은 통합민주당의 정체성 전략이 부실한 탓이다. 민주당이 영남지역에서 지지율을 올리려면 개혁 정체성이 전면으로 부각되어야 하는데 그러게 하지 못했다.

 

셋째, 민주당 지도부가 지난 총선에서 영남지역의 정치적 역량을 제고한다고 하면서 추진했던 비례대표 전략의 실효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의체계의 결손을 메우고 영남지역의 지지기반을 제고하고 조직을 활성화하도록 영남지역에 비례대표 국회의원 추천을 특별히 배려하겠다고 손학규 대표가 수차례 호언한 바 있고 또 실제 배려를 했다는데 어찌된 까닭인지 총선에서 영남지역 지지도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멀게는 동진정책의 실패, 가깝게는 통합과정의 부실, 그리고 비례대표 전략의 실효성 부재 등이 오늘날 영남지역 지지기반의 부진을 설명하는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도부는 영남지역 내부의 탓으로 그 책임을 돌리고 대의원 배정에서 불이익을 주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맨 땅에 머리를 박는' 식으로 어렵게 일하고 있는 영남지역 조직에 대해 '특별한 배려'는 하지 않고 '특별한  배제'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김태일 기자는 대구경북에서 민주당을 응원하고 있는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입니다.


태그:#민주당 전당대회, #민주당 영남지역, #민주당 지도부, #희생자비난론, #결손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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