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물과 기름의 관계인 고교학점제와 수능 위주의 대학 입시가 공존하게 될 모양이다. 절대평가 방식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고교학점제와 상대평가 방식의 수능 체제가 하나의 교육과정 속에서 어떻게 혼용될지 생각만으로도 난감하다. 2024년 정부가 새 대입 개편안을 발표한다지만, 묘수는 없을 듯하다.
지난 10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마저 공정성 강화를 이유로 대입의 '정시 40% 룰'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아예 100% 수능으로 하자는 일부 후보에 견줄 바는 아니지만, 지금보다 수능의 위세가 높아지는 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수시의 취지와 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언급하길 꺼리는 분위기다.
수시 비중이 60%로 여전히 더 높긴 하지만, 지난 수년간 학종과 수능 논쟁에서 최종 승자가 수능이라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수능 위주의 정시는 공정하고, 학종으로 대표되는 수시는 불공정하다는 프레임이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정시는 자신의 노력이, 수시는 '부모 찬스'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파다하게 퍼진 것이다.
정시로 입학한 아이가 수시를 통해 합격한 아이를 '수시충'이라 놀려대도 딱히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러잖아도 고3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지질하게 수시에 연연하지 말고, 당당하게 정시로 가자"는 말이 유행어다. 그들 책상 위에는 '수능 대박'이라는 네 글자가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적혀 있다.
수시를 '지질한' 전형이라며 폄훼하고 조롱하는 건 이것저것 세심하게 챙겨야 할 게 많아서다. 내신성적 관리는 기본이고, 교내 동아리 활동에다 봉사활동, 진로 탐색 활동 등 비교과 활동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생활기록부에 기재할 다양한 거리를 만들기 위해 수업은 물론, 일상적인 학교생활에 숨 쉴 틈조차 없다.
아이들이 입학할 때부터 수시에 불만을 표출하는 건 아니다. 다만, 워낙 신경 써야 할 게 많은 데다 내신성적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보니, 교내 시험에서 한두 번 삐끗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수시를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욱이 서울 지역 상위권 대학에 진학을 꿈꾸는 경우가 아니라면, 더는 수시 준비에 애면글면하려 들지 않는다.
사실 해묵은 학종과 수능 논쟁도 서울 지역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상위권 아이들에 한정된 문제일 뿐이다. 수시 중 학생부 교과 전형이 태반인 지방의 국립대나 정원조차 채우지 못해 미달이 속출하는 지방의 사립대의 경우엔 다른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는 대입 제도의 개혁이 오로지 상위권의 이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뜻이다.
공정한 입시, 단순한 입시
학종이 부유층에 유리한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수능도 그 점에선 차이가 없다. 오로지 의치대 진학을 꿈꾸며 4수, 5수도 불사하겠다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그들은 예외 없이 넉넉한 집의 아이들이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지만, 국민의 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사법고시에 무려 9수 끝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도 무엇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이다.
각자 출발선이 천양지차인 현실에서 학종이든 수능이든 공정하지 않긴 마찬가지다. 부모의 경제력이 성적과 정확히 비례하는 마당에, 둘 중 어느 것이 더 공정한지 다투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애초 기회가 평등하지 않은데, 어찌 과정이 공정할 수 있으며, 결과가 정의로울 수 있겠는가. 단언컨대, 우리 사회에서 '공정한 대학 입시'란 '동그란 네모'와 같은 형용모순이다.
솔직히 말해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수시보다 정시를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건 공정해서가 아니다. 그럴듯하게 공정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이든 저든 공정과 별 상관이 없다는 건 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진정 바라는 건, '공정한 입시'가 아니라 '단순한 입시'다. 그저 전형이 복잡하다 보니 불공정한 요소가 개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여기는 거다.
하긴 진학 지도를 오랫동안 전담해온 베테랑 교사조차 복잡한 대입 전형에 혀를 내두른다. 대학 교육 협의회와 일부 사교육 업체에서 제작한 전국 대학별 전형 비교 자료의 도움 없이는 진학 상담을 할 수 없을 정도다. 고3 교실마다 비치된 인기 있는 자료의 경우, 두께가 자그마치 2천 쪽에 육박해 한 손으론 들 수조차 없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진학 상담조차 값비싼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도 복잡한 대입 전형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사교육에 철저히 길들어진 아이들에게 챙겨야 할 게 많은 수시 전형은 그만큼 다양한 사교육의 손길이 요구되는 셈이다. 정작 가장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마땅할 자기소개서가 폐지된 것도 그래서다.
수능 100%로 당락이 결정되는 대입만큼 단순한 전형은 있을 수 없다. 사교육이 필요하다면 기출문제의 유형을 분석해주는 '족집게' 학원 한 곳으로 족하다. 동점자를 최대한 줄이고 일렬로 줄 세우려면 변별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므로, 수능의 난이도는 필연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불수능'이 기본값이 되는 셈이다.
그러자면 수능이라는 이름을 버려야 할 것이다. 1994년 처음 도입될 당시, 수능은 말 그대로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판별하겠다는 취지의 시험이었다. 곧, 학업 역량의 유무는 수능으로 갈음하고, 계량화된 점수로 파악할 수 없는 남다른 재능과 잠재력에 주목하려는 이른바 '정성 평가'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도입된 제도가 바로 신뢰를 잃고 만신창이가 된 지금의 학종이다. 그게 무엇이었든 수치화할 수 없는 역량은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광범위하다. OMR을 거치는 선다형 시험은 신뢰해도, 교사가 직접 채점하는 서술형 시험은 못 믿겠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생활기록부를 '소설책'이라며 비아냥거리는 것도 그래서다.
수능의 한계로 학종이 도입됐고, 학종이 신뢰를 잃으면서 다시 수능을 소환하는 모양새가 됐다. 수능의 화려한 귀환으로 학종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지만, 수능도 그 이름을 잃게 될 것이다. 장담하건대, 수능이라고 쓰고 학력고사라고 읽을 때가 머지않았다. 변별 기능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지게 될 테니 말이다.
이른바 '킬러 문항' 왜 생겼는지 모르는가
"현재 수능은 시행한 지 30년이 됐다. 현실에 맞는 수능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다."
이재명 후보가 교육 공약을 발표하면서 화두처럼 꺼낸 이야기다. 순간 수능의 본래 취지로 돌아가겠다는 주장으로 오해할 뻔했다. 수능의 취지를 살리고 학종의 신뢰를 회복할 나름의 대안이 제시될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태산명동서일필'이었다. 수능을 현실에 맞게 재검토해야 한다며 내놓은 게 고작 '초고난도 문항 출제 금지'였다.
이른바 '킬러 문항'을 왜 출제하는지 설마 모르는 걸까. 그 한두 문제로 등급이 갈리고 당락이 결정된 지 이미 오래인데, 참으로 뜬금없는 공약이다. 그러면 아이들의 학습 부담이 줄어들고, 사교육비가 절감되고, 공교육이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 듯하다. '킬러 문항'이 사라지고 나면 동점자들이 쏟아질 텐데, 그땐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거창하게 '교육 대전환'을 위한 공약이라면서도, 정작 '돌봄과 공교육의 국가 책임제'와 '행복한 지역 학습일 도입'과 같은 참신한 내용이 외려 뒤로 밀려난 느낌이다. 대학 입시의 공정성에 방점이 찍힌 까닭이다. '대입 공정성 위원회'를 설치하면 대입이 공정해질 거라는 발상 자체가 한 편의 코미디다. 그렇게 바루어질 거였다면, 애초 문제 될 일도 없었다.
온존한 학벌 구조를 혁파하지 않고선 백약이 무효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해법을 나 몰라라 한 채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하나 마나 한 대책만 쏟아내는 걸 보면, 과연 개혁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과문한 탓인지, 대학 평준화와 전국 대학 간 공동학점제 시행 등과 같은 정책 대안은 수십 년째 중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재명 후보의 '대입 공정성 위원회' 설치 공약을 접하면서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다. 딱히 교육 분야만 그런 것 같진 않지만,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의 공약이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사사건건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지만, 막상 발표하는 공약만 보면 동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아무튼 지금 학교는 이래저래 '동그란 네모'를 그리도록 강요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