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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딸'은 '여왕'이 될 수도 있고, '사기꾼'이나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당신은 딸을 여왕으로 길러내고 싶은가? 아니면 사기꾼이나 범죄자로 만들고 싶은가? 그런 황당한 질문이 어디 있느냐고? 당연히 여왕 아니겠느냐고?

 

그래. 분명 많은 이들이 자신의 딸이 사기꾼이나 범죄자보다 나라를 이끌 수 있는 여왕의 자리에 오르기를 더 바랄 것이다. 그렇지만 바란다고 해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딸을 그렇게 키울 아버지가 될 자신이 있다고? 그렇다면 내가 당신께 10년도 더 된 게임 하나를 권할테니 직접 해보시라. 정말 그럴 자신이 생기는지 말이다. 권할 게임은 바로 <프린세스 메이커2>(이하 프메2)다.

 

이미 10년도 더 된 게임이니 해 볼 사람들은 다 해보았겠지만, 안 해 본 사람들이라면 구해서 한 번 해보기를 권한다.(워낙 오래된 게임이라 만 원이면 구입할 수 있을 거다) 스스로 원해도 돈이 없다면 딸을 원하는 방향으로 키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느끼게 될테니 말이다.

 

 

<프메2>는 세상을 떠돌던 용사가 한 마을을 마왕으로부터 구해내고, 하늘에서 내려 보낸 여자 아이를 10살 때부터 키우는 게임이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의외로 많은 이들이 즐겼고, 지금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이와 관련한 사이트들이 목록에 뜰 정도다.

 

이 게임이 사랑받는 매력이야 많겠지만, 8년 동안 딸을 다 키우고 나면 딸이 미래에 무슨 직업을 갖게 되는지, 어떻게 살아가게 되는지, 하는 일은 성공하는지 등에 대해 설명해주었던 것이 가장 큰 흡인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라면 다들 당연히 딸이 멋진 성인으로 자라나기를 바란다. 그런데 문제는 <프메2>에서 마지막에 딸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이 60개에 달하지만 모두가 딸이 되었으면 하는 '여왕', '재상' 등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돈 없어 딸을 교육시킬 수 없다

 

왜? 일단 돈이 없기 때문이다. 왕국을 구한 용사에게 왕국이 1년 동안 주는 생활비는 500 골드가 전부다. 그런데 딸이 받아야 할 교육 과목 최저 수강비는 30G다. 그것도 한 달이 아닌 하루에 말이다. 그러면 1주일만 해도 벌써 200G에 달하는 돈이 들어간다. (공교육이 없으니 의지할 것은 사교육 뿐이다)

 

아비의 수입은 500G에 불과한데 그것 가지고는 한 달 교육시키고 나면 파산한다는 얘기다. 그것도 수강료가 싼 과목만 골라 시켰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된다는 것이 게임이지만 정말 비극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비의 수입은 500G이고 게임 상에서 아비는 더 이상 수입을 올릴 수 없으니, 딸이 직접 돈을 버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게임이라고 하나 10살짜리 밖에 안 된 딸에게 아르바이트를 내보내기는 다소 마음이 아프다. 10살짜리 딸에게 시킬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총 8종류인데 무엇 하나 선뜻 내키는 것이 없다. 그 중에서도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히 놓이는 성당 아르바이트를 보내려고 하다가도 멈칫거리게 된다. 하루 일당이 1G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은 성당보다 무려 10배나 되는 돈을 더 주는 농장으로 10살짜리 그 조그만 아이를 아르바이트하라고 보내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조그만 아이에게 아르바이트를 시키는 것이 게임이라 해도 마음에 걸리나, 나중에 16살이 넘어서 유흥업소 아르바이트까지 할 수 있게 되면 어떤 이들은 높은 급여를 받기 위해 애지중지 길러온 딸을 유흥업소에 내보내기도 한다. (게임에서까지 가난이 죄가 되어야 하다니….)

 

딸을 잘 키우고는 싶은데 돈이 부족하다 보니 역시 이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어떻게 하면 유흥업소 같은 데 보내지 않고도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행히도 아르바이트 이외에도 거금을 모을 기회는 있다.

 

수확제에 참가하면 거금을 모을 수 있다

 

매년 한 번씩 열리는 수확제에 참가하는 것이다. 수확제로 '무술대회', '왕국예술제(그림대회)', '댄스파티', '요리 콩쿨' 등이 열리는데 이 중 한 가지만 골라 참여할 수 있다. 네 가지 대회 중 한 대회에서 우승하면 거금의 상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진귀한 보물도 받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 수확제를 목표로 열심히 딸을 아르바이트 시킨 후 그 돈으로 교육을 시킨다. 마치 우리나라 입시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각종 대회에 입상시키기 위해 애쓰는 부모들과 같은 마음으로 그저 그 대회에서 우승시키겠다는 일념으로 1년 내지 2년을 오로지 수확제에서 우승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쓴다.

 

이 게임이 정말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딸에게 미안해하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켜서 번 돈으로 힘들게 교육을 시키고도 성과가 좋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더 재미있게 해주는 것은 집이나 교육 기관에 붙들려 있는 것보다 때로는 밖으로 내도는 일정인 '무사수행'을 갔을 때 더 높은 성과를 얻어 올 때가 있다는 점이다. 1년 내내 교육시킨 것보다 무사 수행 몇 번 갔다 온 것으로 딸의 능력치가 훨씬 높아져 수확제에서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점이 참 묘하지 않은가.

 

무사 수행을 가게 되면 딸이 갖고 있는 지능이나 매력, 감수성, 소지품 등에 따라 다양한 존재(마물도 있고, 인간도 있고, 동물도 있다)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만남 속에서 때로는 값비싼 귀중품을 얻기도 하고, 또 때로는 교육 기관에서 1달을 넘게 해야 올릴 수 있었던 능력을 하룻밤만에 전부 다 올리기도 한다. 틀에 박힌 교육만 고집하다가 아이들의 창의성이 다 망가지는 우리 교육 현실이 생각나는 대목이기도 했다.

 

뭐 어쨌든 아비의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딸의 교육비를 생각해보면 불행 중 다행인 일이었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어린 시절 즐겼던 <프메2>처럼 벌어들이고 있는 수입만으로 딸의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자식이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한다며 어떻게 될까.

 

10년 전 어린 시절 즐겼던 게임일 뿐인데 영어몰입교육, 자사고 설립 정책 등을 접하면서 그 게임에서 딸에게 교육비도 대줄 수 없었던 이 못난 내 모습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태그:#프린세스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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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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