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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놀러와>의 한 장면. 왼쪽이 가수 이하늘.
 MBC <놀러와>의 한 장면. 왼쪽이 가수 이하늘.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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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줄에 접어들어도 악동의 기질은 버릴 수 없었던 걸까.

가요계의 영원한 악동 DJ DOC의 이하늘은 지난 1일 자신의 트위터에 SBS 음악프로인 <인기가요>를 맹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그가 이렇듯 화가 난 이유는 SBS의 대표 예능 프로인 <강심장>의 출연 여부를 놓고 일어난 마찰 때문이었다. 이하늘은 자신의 트위터에 SBS 측에서 <인기가요>에 출연하는 조건으로 <강심장> 출연을 요구했고, 자신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지같은 인기가요!!! 누구를 위한 무대인가?? <강심장>을 안 하면 자기네 방송에 출연 안 시켜주신다며 스케줄을 빼주셔서 고맙게도 널널한 주말 보내게 해주셨다^^ 가뜩이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무대가 없어지고 있는 추세에 우리 말고도 한 번의 무대가 아쉬운 다른 선, 후배 가수들이 이런 공갈압박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니 기분 참 씁쓸하다."

이하늘의 이런 주장에 SBS는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반박하고 나섰다. 당초 1일 <인기가요>는 미리 출연 예정된 가수들이 많아 DJ DOC의 컴백무대는 다음 주로 미뤄지게 됐다는 것. 그러면서 SBS는 "DJ DOC는 지난 7월 28일 <김정은의 초콜릿>의 녹화에도 참여했다"며 "<인기가요> 출연을 미끼로 외압이 있었다면 똑같이 못 나갔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해명했다.

그러나 SBS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언론들을 비롯한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언론들은 연일 '터질 게 터졌다'며 음악프로와 예능의 은밀한 커넥션에 대한 기사를 썼고, 누리꾼들은 '예능 출연 잘 안 하는 몇몇 아이돌 가수들이 유독 <강심장>에만 나오는 이유가 있었다', 'DJ DOC가 아니라면 누가 나서서 이런 소릴 하겠는가' 등의 반응을 보이며 이하늘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아이돌들에게 필수코스가 돼버린 '예능'

DJ DOC 이하늘의 트위터
 DJ DOC 이하늘의 트위터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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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은 드라마와 더불어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시청률 면에서도 예능은 평일 밤 시간대와 주말 저녁 시간대를 책임지며 앞뒤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역할까지 톡톡히 해낸다. 당연히 방송사 입장에선 예능에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예능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누가 나오느냐'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아이돌 가수의 인기가 치솟기 시작하면서 방송가에서 그들의 주가는 무한대로 뛰었다. 예능은 물론이고 드라마에서까지 아이돌 한 명 없는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아이돌의 활동반경은 방송가 전체로 뻗어나갔다. 막강한 팬덤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인기와 화제성은, 시청률에 목말라하는 예능 PD들에게는 단비 같은 존재였다.

아이돌에게 있어서도 예능 출연은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음반 활동을 쉬는 와중에도 TV에 꾸준히 얼굴을 비출 수 있다는 점, 예능을 통해 새로운 캐릭터를 얻어 더 큰 인기를 누릴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예능은 아이돌의 성공을 위한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아이돌과 방송사, 양측 다 '윈윈'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능이 아이돌이 거쳐 가야만 하는 '필수코스'로 인식되면서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능과 음악프로의 출연을 놓고, 아이돌이 방송사 간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예능의 비중이 커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아이돌의 활동 중심은 음반이었고, 그렇기에 음악프로의 출연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했다. 음악프로의 출연 여부와 1위 수상은 인기 아이돌과 비인기 아이돌을 가르는 절대적인 척도로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돌의 팬덤에선 자신들의 언니, 오빠들을 음악프로 1위에 올려놓기 위해 앨범을 공동구매하는 등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음악프로 나가고 싶으면, 타사 예능 나가지 말라?

지난 2월에 불거진 2AM의 MBC <음악중심> 출연 불발은 예능과 음악프로 출연 사이에 무언가 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아이돌 그룹 2AM의 조권은 MBC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지난 2월 SBS <일요일이 좋다 - 패밀리가 떴다2>(이하 <패떴2>)에 소녀시대 윤아 등과 함께 고정 패널로 합류했다. 때마침 당시는 2AM이 신곡을 발표하고 활동을 재개할 무렵이었다. 그러나 KBS <뮤직뱅크>, SBS <인기가요>에는 모습을 보였던 2AM은 어쩐 일인지 MBC <쇼! 음악중심>에는 2주 넘게 출연하지 않았다.

당시 <스타뉴스>는 2AM의 출연 불발 소식을 보도하며 "가요계와 방송계 일각에서는 2AM의 리더 조권이 SBS '일요일이 좋다-패밀리가 떴다2'의 고정 멤버로 나서기로 결정한 점이 이번 갈등설의 주요 배경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이 때도 MBC에선 "사실무근이다, 양측 간에 갈등은 없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많은 이들이 이하늘 발언에 지지를 보내는 이유

SBS 인기가요
 SBS 인기가요
ⓒ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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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기가요>와 <강심장>으로 돌아와 보자. <강심장>은 연예인 폭로의 장으로 불릴 만큼 매주 출연진들의 폭탄선언이 줄을 잇는 예능이다. 그 덕분에 언제나 시청자들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시청률은 늘 동시간대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강심장> 입장에서 보기에 DJ DOC의 출연은 더할 나위 없는 호재다. 그들만큼 굴곡 있는 과거지사를 가진 게스트가 또 어디 있겠는가.

DJ DOC가 <강심장>에 출연해 과거 이슈가 됐던 사건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따위를 폭로하며 시청률을 올려준다면 SBS 입장에선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DJ DOC는 <강심장> 대신 KBS <승승장구>를 선택했다. 이하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강심장>과 동시간대 방송되는 경쟁 프로인 <승승장구>에만 출연하기로 한 것도 <인기가요> 출연 불발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어느 한 쪽의 말만 듣고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몰아붙일 순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하늘의 발언에 지지를 보내는 까닭은 사실무근으로 흘려보내기엔 너무 많은 전례가 남아있기 때문이며, 지금껏 어떤 가수도 이하늘처럼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론은, 방송국-연예기획사의 관계 재구성

방송사와 기획사의 갑과 을의 관계, 그로 말미암은 방송 권력의 남용 문제는 음악계를 넘어서 연예계 전반에 걸쳐 깊게 뿌리내린 폐해다. 그러나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와 공론화된 적은 없다. 그 뒤에 닥칠 불이익을 우려해서다. 그래서 대다수의 연예인과 기획사는 울며 겨자먹기로 방송사와 적당히 타협하는 선에서 언제나 갈등을 봉합해왔다. 그러나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상처가 봉합한다고 해서 나을 리 없다.

이하늘의 발언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그는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하지 않았던 말을 과감하게 꺼냈다. 또 서둘러 봉합한 까닭에 더 곪아버린 상처의 고름을 시원하게 터뜨렸다. 예능에 가려져 있던 악동의 기질은 건재했음을 보여줬고, 그로 인해 방송 권력의 남용 문제는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이제 남은 일은 두 가지.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 그리고 DJ DOC의 음악을 듣는 것이다.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아니면 쉬어. 알았으면 뛰어. 그래 내가 원래 그래. 그래서 뭐 어쩔래. 나 이런 사람이야~" - DJ DOC 새앨범 '나 이런사람이야' 중 일부


태그:#이하늘, #DJ DOC, #인기가요, #강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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