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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7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뉴스-휴머니스트 공동 특별강좌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에서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를 다시 생각하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7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뉴스-휴머니스트 공동 특별강좌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에서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를 다시 생각하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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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민주화됐다는 말은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단언했다. 7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다섯 번째 특강에 나선 박 교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민주화는 아직 멀었다"고 했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오마이뉴스>와 휴머니스트 출판사가 공동으로 마련한 특별강좌다.

박 교수가 이렇게 진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화의 시계를 거꾸로만 돌리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했기 때문일까. 물론 그것도 한 이유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박 교수가 제안하는 국가의 개념에 따르면 이는 완벽한 답이 아니다. 

박 교수는 "국가는 단순히 정부나 통치기구만을 뜻하는 좁은 개념이 아니라 시민사회와 같은 민간영역을 아우르는 공동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 민주적인 행정부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맞지만 민간 영역, 특히 시장에서 소수에게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는 이상 국가 전체가 민주화됐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민주주의적인 정부 혹은 행정부를 가졌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다른 영역에서 비민주성은 강화됐습니다. 언론, 기업(금융, 유통, 통신), 교육 등 민간 영역들에서는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됐지요. 민주적인 행정부는 이들에게 포위돼 부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조금 진보적인 정부에서 보수적인 정부로 바뀌었을 뿐인데 모든 것이 역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증발해 버린 것입니다. 이는 국가의 다른 영역들을 민주화하지 않을 때 이 민주화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CEO 대통령'에 내재된 자기 모순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가 7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뉴스-휴머니스트 공동 특별강좌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에서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를 다시 생각하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가 7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뉴스-휴머니스트 공동 특별강좌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에서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를 다시 생각하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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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국가를 "공공성의 표상"이라고 봤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국가는 공공성이 아니라 사적 이해관계의 표상이 돼버렸다. 그 단적인 예가 'CEO(최고경영자) 대통령'이라는 국적 불명의 말의 범람이다.

"대통령(president)라는 말의 뜻은 원래 조정자·사회자입니다. 어원 자체(pre-side)가 한쪽 편을 드는 존재가 아니라 조정자르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대통령은 공공성의 표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CEO는 사적 이익의 표상이지요. 그래서 'CEO 대통령'은 말 자체가 모순입니다. 대통령에게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CEO의 역할을 키울수록 조정자라는 대통령의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과 지자체장에게 CEO 리더십을 요구하는 대한민국은 이미 사적 이해관계가 공적 영역을 너무 빠르게 잠식해 버린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CEO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쓰는 언론은 세계에 대한민국 말고는 없습니다." 

박 교수는 이어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사익의 논리, 돈의 논리가 국가의 역할을 결정적으로 왜곡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위치를 전도시켜버린 것"이라며 "교육, 의료, 금융 등 공적인 영역에서도 시장이 요구하는 효율성이 없으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이라는 논리가 우리 사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불행한 것은 그런 국가에 속해 있는 개인들이다. 박 교수는 "대한민국은 '국물도 없는 사회'"라며 "개인들은 동물적 생존을 고뇌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민국은 국물도 없는 사회"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가 됐던 시점에 각 나라의 정부지출 중 공공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스웨덴은 34.5%, 영국은 19.9%, 미국은 13%인데 반해 한국은 (영국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6.3%였습니다. 분배를 많이 했다던 참여정부 시절의 통계입니다. 국민총생산(GDP) 대비 공공지출 비중은 OECD 20.7%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절대빈곤도 늘어가고 있지요. 노태우 정부 말기 중간소득 미만 계층이 7.3%였는데 지금은 13%가 넘습니다. 중산층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법정 최저임금을 받은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13.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건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삶의 문제입니다."

박 교수는 "국가가 공공의 영역을 빠르게 침식당하는 바람에 신분 세습 사회로 역근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근대국가 개념이 들어서면서 능력, 즉 공적 경쟁을 통해서 출신이나 가문 등의 신분 제약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근대화 100년만에 '역근대화' 현상을 보고 있습니다. 국가가 공교육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냐, 부모가 강남에 사느냐 아니냐에 아이들의 미래가 결정되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한 신분 세습 사회로 역근대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병폐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박 교수는 다시 "국가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국가가 공적인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가는 민중에 의한 자기 지배라는 기본을 실천하기 위한 시민 개개인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선거를 통한 참여일 수 있고, 또 정당 가입, 혹은 시민운동이나 시위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정치는 구체적인 문제에 답을 주는 것"

"국가의 근본원리는 민중의 자기지배입니다. 그래서 행정부의 영역 뿐 아니라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사회적 영역들 간의 힘의 분배가 매우 중요합니다. 비대화된 시장의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서는 축소된 국가의 공적 역할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 삶의 공공성 보장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육아·교육· 의료·노후생활을 기본적으로 보장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문제는 개인적으로 해결하기 보다 세금을 조금 더 내더라도 공공의 노력으로 해결할 때 삶의 예측가능성을 더 높일 수 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해답을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병원비, 수술비가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상황을 정치가 해결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 교수는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적 장치 마련에 대한 아이디어도 소개했다. 대표적인 것이 '시민의회'와 '개헌'이다.

"시민의회는 로마시대에도 있던 제도입니다. 사법부에 배심원 제도가 있듯이 시민들이 입법부에서 심의한 것이 다수 시민의 뜻에 맞는지 다시 심의하는 것입니다. 또 입법부를 상하 양원으로 나눠 권한을 분산시키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방안도 필요합니다.

한편 입법-행정-사법을 감시·감찰하는 감사원, 공정위, 선관위, 인권위 등 독립기구들을 직접 국민 감독하에 두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국가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의 개헌은 선거를 통해 어떤 정부를 선출하느냐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교수는 끝으로 "에릭 홉스봄은 <극단의 시대>에서 한국이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토지개혁과 교육 평등주의 덕분이었다고 했고 세계은행 통계를 봐도 어느 정도의 평등과 공공성이 보장될 때 국가의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나타난다"며 "진보의 핵심은 공공성"이라고 강조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7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뉴스-휴머니스트 공동 특별강좌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에서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를 다시 생각하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7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오마이뉴스-휴머니스트 공동 특별강좌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에서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를 다시 생각하다'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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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명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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