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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열정적인 수집가로 유명했다. 그는 타임캡슐을 만들어 자신의 일상과 관련된 모든 잡동사니들을 상자에 넣어 보관했다. 그가 모은 상자 속에는 비싼 판화나 현금부터 자질구레한 생활용품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전기요금 고지서 같은 것까지 몽땅 상자에 넣었고, 그렇게 만든 상자의 수는 무려 600개가 넘었다고 한다.

워홀이 벌인 수집 행위는 예술적인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기벽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무언가를 수집하는 행위 자체가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비극을 불러온 콜리어 형제의 이야기가 담긴 <잡동사니의 역습>을 읽기 전까지는 적어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170톤 쓰레기 수집한 명문가 자제들

랜디 O. 프로스트, 게일 스테키티 지음 | 정병선 옮김 출판윌북 펴냄 | 2011.09.10 발간
▲ <잡동사니의 역습> 표지 랜디 O. 프로스트, 게일 스테키티 지음 | 정병선 옮김 출판윌북 펴냄 | 2011.09.10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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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의사인 아버지와 오페라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콜리어 형제는 부유한 집안에서 촉망 받는 인재로 자라났다. 형은 매력 있는 피아니스트가 됐고, 동생은 유능한 변호사가 됐다.

그러나 그러한 영광도 잠시, 그들의 부모가 사망한 후부터 그 형제들의 생활은 눈에 띄게 변해갔다. 마치 준비한 사람들처럼 세상과의 교류를 하나씩 끊어나갔다. 전화와 도시가스·전기, 심지어는 우편마저 거부하면서 오로지 자급자족을 해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자신들이 만들 광석 라디오가 유일하게 세상의 소식을 전달해줄 뿐이었다.

만약 그들이 법원과의 세금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거나,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등의 이상한 기벽에 대한 이웃들의 호기심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그들 형제의 주검은 훨씬 더 늦게 발견됐을 것이고, 그들의 너무나도 특별했던 삶은 훨씬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무엇이 명망가 집안의 두 형제를 세상과 철저하게 단절시켰으며, 그들의 생활공간 전부를 그토록 어마어마한 잡동사니들로 가득 채우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들이 살던 저택에서 나온 쓰레기의 총 분량은 무려 170톤이 넘었다고 한다. 머리말에 실린 콜리어 형제의 이야기는 '저장 강박증'자들에 대한 무궁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물질주의자, 소유물이 행복을 담보해줄 것으로 기대"

저자 프로스트는 심리학 교수로서 그의 연구를 도운 게일과 함께 20년 동안 미국에서 콜리어 형제와 같은 '저장 강박' 문제를 연구했다. 처음에는 저장 강박이 어떻게 그들이 평생을 바칠 연구의 대상이 됐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읽을수록 그 과정이 흥미롭고도 의미심장했다. 어쩌면 이 글은 소비와 소유를 미덕으로 삼고 살아가는 우리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경종이자 성찰할 계기를 부여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저자가 소개하는 더 많은 사례들을 읽을수록 독자는 쉽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분명 자신에게도 존재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유물이 삶을 압도하면서, 우리가 획득을 통해 얻고자 했던 바로 그것을 결국 잃게 된다. 물질주의자들의 소유물은 자기를 매혹하는 수단,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 일상 활동의 원동력이다. 물질주의자들은 소유물이 자의식을 확대 강화해줄 뿐만 아니라 행복까지 담보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소유물은 정반대의 역할을 하는 듯하다. 고도로 물질주의적인 사람들이 지향이 '소유'가 아닌 사람들보다 삶에 덜 만족하고 더 불행하다는 사실을 지적한 연구도 많다."(본문 370쪽)

우리 모두가 간디나 법정스님이 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누려온 지극히 정상(?)적인 생활이라 여겨왔던 소비 패턴이나 소유 방식에 대해서 한 번쯤은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들이 슬며시 옆구리를 찌른다. 이런 대목을 마주할 때마다 <소유냐 존재냐>를 썼던 에리히 프롬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잡동사니의 역습>의 저자 역시 그의 의견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저자는 사회적인 측면에서만 이 병리학적 문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약육강식에 길든 인간의 본능과 생물학적 측면(위태로운 상황에 놓일수록 물건에 대한 집착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점, 2001년 세계 무역 센터 테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피난 전에 소지품을 챙기면서 시간을 보냈다는 연구 사례)은 물론이고, 사회적인 측면만으로 해석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경험(트라우마)이나 성장과정에서의 문제를 다룬다.

그런가 하면 저자는 뇌 과학이나 유전학적 측면에서 검토한 자료들까지 세세히 소개하고 있다. 어느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해도 제 나름의 흥미로움이나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읽는 재미'는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외부세계와 단절될 수록 편안함을 느끼다니

주목할 점은 연구 대상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성향들이다. 저장 강박증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보다는 물건을 통해 세상과 연결하려고 애쓴다. 주의력이나 집중력이 결핍된 경우가 많고,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며, 다소 의외이지만 완벽주의 성향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크고 작은 난관들에 봉착한단다. 일은 벌여 놨는데 수습을 잘 하지 못한다.

또 하나 특징은 성장 과정에서 서로를 격려하는 따뜻한 가정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보통 사람들에 비해 훨씬 낮다는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 중에서도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단절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적당한 시기에 필요한 만큼의 애정이나 보호를 받지 못해 신체 접촉을 몹시 꺼리고 사람보다는 사물에게 더욱 집착하는 결과를 불러온 것이리라.

현장의 환자들은 '산양의 통로' 정도만 남기고 집안 곳곳에 거대한 잡동사니 옹벽을 쌓아올린 채 살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그들이 대개 잡동사니를 생활 공간에 쌓으면 쌓을 수록 더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설령 발 디딜 틈 없이 쌓아 올렸다 할지라도 말이다. 잡동사니들로 인해 그들의 공간이 외부세계와 견고하게 단절됐다는 것을 확인할수록 더 만족해하다니. 세상과의 단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함께 살던 가족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아야 하는 비극의 상태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인식했다고 해도 쉽게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들의 목숨까지 위협을 하는데도 말이다. 보건 당국이 무차별한 청소를 강행한 결과 저장 강박증 환자 세 명이 연달아 죽는 불상사가 빚어지기도 했다는 것을 보면 최근 이 병의 심각성이 조명되는 이유를 새삼 느낄 수 있다.

고양이 200마리와 함께 산 파멜라, 그 이유는...

이 책에 소개된 파멜라는 자신이 수집한 200마리의 고양이를 키우는 일에 모든 것을 바쳤다. 매일 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급기야 외형은 거의 해골만 남은 수준이었다고. 무엇이 그녀를,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고양이 지옥'으로 인도했을까. "남자 형제와 나는 담장 너머로 버린 씨앗 같았어요. 알아서 자라야 했죠." 안타깝게도 그녀의 어린 시절과 성장배경이 그 상처의 원인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였다.

"동물 수집도 무생물 수집처럼 대다수의 사람보다 더 광범위한 지능 및 세상의 다양한 특징들에 조응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우리가 면담한 저장 강박 증상자들은 비상한 수준의 연민과 공감 능력을 보여줬다. 이것은 강박에 의해 왜곡되지 않았다면 칭찬을 들을 만한 훌륭한 특성들이다. 그러나 그 애착은 완고하리만치 융통성이 없었고, 가용한 자원이나 제약에 의해 변경되지도 않았다. 사랑하려는 노력이 결국 그 대상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동물 저장 강박은 원인이 무엇이든 저장 강박 사안 가운데서도 가장 미개척 되어 있는 분야로, 우리에게 여전히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과제로 남아 있다."(본문 192쪽)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라이너스의 담요'와 같이 어린 시절 '이행기 대상'(Transitional object)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나 특정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는 사람들, 혹은 자신의 물건을 정리정돈하지 못한 채 방치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문을 보유하는 행위가 읽기를 대체해버린 아이린의 경우처럼, 우리는 어쩌면 지나친 소비와 소유를 통해 타자와의 구별 짓기를 가속화 하고 그것이 행복의 척도인 것처럼 주객이 뒤바뀐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언제 누구에게서 받았는지도 모르는 명함들이, 1년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고 지내는 휴대전화 속 전화번호들이, 정체도 모른 채 무수하게 연결된 SNS 속 무분별한 친구 맺기가 지금 당신의 삶의 질을 높여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자는 말한다. "당신도 저장 강박 문제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위트 있게 표현한 글귀에 웃음이 난다
▲ 위트 있는 글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위트 있게 표현한 글귀에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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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잡동사니의 역습> (랜디 O. 프로스트·게일 스테키티 씀 | 정병선 옮김 | 출판 월북 | 2011.09. | 1만4800원)



잡동사니의 역습 - 죽어도 못 버리는 사람의 심리학

랜디 O. 프로스트 & 게일 스테키티 지음, 정병선 옮김, 윌북(2011)


태그:#잡동사니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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