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전세를 반전세로 돌리겠다는 집주인(관련기사 :
1년여 전보다 7천만 원↑...'미친 전세' 넘어 '지옥'). 전셋값을 5천만 원 정도 올릴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반전세는 상상하지도 못한 우리 부부는 당황했다. 내가 1년 6개월 전 사회적경제 분야 쪽으로 일자리를 옮기며 수입의 절반 이상 삭감을 감수했던 터라 매달 월세 내는 것은 분명 무리였다. 안 그래도 아이 셋이 먹어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벌고 있는 돈이 곧 부족하게 되리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데 월세가 웬 말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집주인을 마냥 야속하다고 여길 만한 문제도 아니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가 일반화되는 과도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전세는 7%대 고도성장이 가능했던, 그래서 목돈을 은행에 넣어두면 꽤 짭짤한 금융소득을 올릴 수 있었던 우리 사회만의 제도다.
2000년대 초반 캐나다 어학연수 시절, 가끔 외국인들과 만나 우리의 주거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들이 절대 이해 못한 것이 바로 전세 제도였다. 어떻게 다달이 집세를 내지 않고 살 수 있느냐고, 그들은 마냥 신기해했었다.
그런데 그런 전세제도가 이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사회의 저성장과 낮은 금리가 상식이 되면서 어차피 2년 뒤에 돌려줘야 하는 전셋돈의 효용가치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이전처럼 집값이 미친 듯이 오를 때면 투기를 위해서라도 전셋돈이 필요할 텐데 이제는 그런 집값 상승도 기대할 수 없는 시대이다. 그러니 집주인이 당연히 전세를 반전세로 돌릴 수밖에.
게다가 현재 우리 아파트의 경우 앞으로 값이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록 지금은 비정상적인 전세난에 매매가가 반짝 오르고 있지만 하남 미사지구의 수많은 아파트가 완공되고 주위 아파트들의 재건축이 끝나 새 아파트들이 들어선다면 지금의 아파트 값이 떨어질 것은 자명하다. 그러니 집주인으로서는 전셋값을 마냥 올릴 수도 없다. 그러다가는 전셋값이 매매가보다 비싸 집을 팔아도 전셋값을 돌려주지 못하는 소위 '깡통전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건 집주인의 입장이고, 당장 우리는 7월에 어디로 가야할까? 주인이 반전세를 공언한 이상 지금의 아파트는 부동산에 내놓아도 곧바로 계약이 될 가능성이 낮아졌기에 무턱대고 다른 전셋집을 보고 다닐 수도 없었다. 어쨌든 이사를 하려면 집주인에게 전셋값을 돌려받는 게 우선이기 때문이다.
전세난을 또 겪느니, 차라리 집을 확 사버려?
끔찍한 강동구의 전세난과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 오르는 전셋값, 그리고 집주인의 반전세 전환까지. 그 절박함이 목까지 차고 보니 짜증이 밀려들면서 한 가지 생각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 기회에 아예 그냥 집을 사버릴까?'사실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우리의 처지를 이야기하자 적지 않은 중개업자들이 우리에게 차라리 집을 사라고 조언했다. 어차피 직장이 이 주변이고, 내년부터 줄줄이 아이들이 학교를 들어가게 되면 쉽게 주거지를 바꾸기도 어려울 테니, 여유가 된다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집을 구입하라는 것이었다.
어떤 중개업자는 명일역-굽은다리역 주변의 나홀로 아파트들을 추천했다. 비록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보다는 주거환경이 조금 열악하지만 어쨌든 비교적 싸고, 나중에 집을 팔고 나갈 때도 값이 많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남 미사 신도시가 완성되고 재건축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면 결국 구리암사대교가 뚫려있는 명일동이 강동구의 주요 번화가가 될 것이고 그러면 현재 지하철 역 주변에 몰려있는 나홀로 아파트들을 구매해 상가건물을 만들려는 수요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집값이 오르지 않을까 하는 것이 그들의 의견이었다.
근 10년 동안 내 집을 가질 수 있고, 10년이 지나도 손해 보지 않고 집을 팔 수 있다하니 잠깐 혹하긴 했지만, 몇 번 생각하고 나니 개발만이 전부인 전형적인 부동산업자의 생각일 뿐이었다. 물론 주위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예전만큼 이 지역의 집값을 올린다는 보장은 절대 없었다. 이미 그때쯤이면 우리 사회의 인구수는 줄어들 것이고, 그만큼 집이 남게 됨에 따라 집값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아예 대출을 조금 끼고서라도 지금 우리가 사는 수준의 주택을 구입해버려? 부동산업자들에게 이와 같은 우리 생각을 비치자 그들은 우리들에게 조금 더 나은 수준의 집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최소 은행에서 1~2억 원은 빌려야 살 수 있는 집들이었는데, 학교나 시장, 공원 등 그 주변 환경들을 보고 있노라니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비자금까지 탈탈 털어 집 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중개업자들의 말대로 2년 마다 전셋집을 돌아다니는데 최소 2~3백 만 원의 이사비용이 든다고 생각하면 좀 무리하더라도 차라리 월 대출 이자를 갚아 나가며 집을 사는 게 좀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이제 아이들도 크는데 2년 마다 전학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차라리 그렇게 집을 장만하고 나면 우리의 삶이 나아지지 않을까?
그래도 우리가 집을 살 수 없는 이유그러나 우리는 이내 그와 같은 생각을 접었다. 내 집 장만이 아무리 중요하다고는 하나 대출은 이런 불황에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행위임에 분명했다. 극단적인 고용 유연화로 인해 일자리가 불안정한 이 시대에 대출은 그야말로 개인의 자유의지를 가로막는 가장 결정적인 족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연준(연방준비제도)은 올해나 내년 쯤 기준금리를 올릴 거라고 계속 신호를 주고 있다. 언론이나 부동산업자들은 미국의 금리인상이 우리 금리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또 우리 정부의 외환보유고는 그에 대처할 만큼 충분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디 그래서 IMF가 터졌는가? 미국도 어쩔 수 없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졌는데 과연 이 정부 아래서 우리의 경제는 이상이 없을까?
비록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부동산 3법(주택법 개정안,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개정안,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의미하며, 각각의 내용은 민간택지의 분양가상한제 탄력조정,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3년간 유예, 재건축 조합원 주택분양 3채까지 가능이다)을 퉁퉁 불어터진 국수로 비유하며, 경제가 그 국수라도 먹었으니 힘을 차린다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섣부른 착각일 뿐이다.
청와대는 최근 주택 매매량이 늘어나고 가격이 들썩이는 현상을 두고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고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지만 그것은 경기 활성화 때문이 아니라 나와 같이 극심한 전세난에 시달리던 세입자들이 더 이상 못 버티고 빚을 내 집을 사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 되어버린 가계부채의 증가는 바로 이를 증명해준다.
의식주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주'를 위해 많은 가계들이 빚을 내어야 하고, 다른 부문에는 소비할 여력이 없는 사회. 여기에 미국 발 금리인상이 엎친 데 덮친다고 상상해보자. 그 결과는 IMF보다 더 끔찍할 것이 빤하다. 그런데 2~3% 밖에 되지 않으니 대출을 받아 집을 사라고? 에라이, 차라리 집 크기를 줄이고, 사는 곳을 바꿔 버리고 말지.
전세 물량도 없지만, 그렇다고 대출을 해서 주택 매매를 할 수도 없는 갑갑한 현실. 그럼 도대체 우리 부부는 7월 전세 계약기간까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냥 넋 놓고 있다가, 5월쯤 돼서 전셋집을 알아보는 게 최선일까?
그때 우리 눈에 띄는 제도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SH와 LH의 장기전세주택이었다. 6년 전 결혼해서 지금까지 아이를 셋이나 낳고 기르면서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그 제도가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힘들겠지만, 그래도 우리 조건이라면 청약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우리는 처음으로 청약제도를 알게 된 날, 새벽 3시까지 프린트물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마주보며,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하버드로 유학 갔겠다며 '웃픈(웃기고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우리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과연 우리는 장기전세를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