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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3일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와 국정원을 방문한 기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북한 군부 내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4월 30일경 반역죄로 수백 명의 장령급 군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건종합군관학교에서 고사총으로 공개 총살당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당시 국정원의 고위 간부는 기자들에게 북한의 현영철 '숙청' 사유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한 불만 표출, 김 제1비서 지시에 수차례 불이행 확인, 김정은 제1비서가 주재한 인민군 제5차 훈련일군대회에서 졸고 있는 불충스러운 모습 등을 들었다.

국정원이 밝힌 현영철 '총살' 첩보의 한계

4월 16일 러시아 모스크바 래디슨 로얄 호텔에서 러시아 국방부가 주관한 제4차 국제안보회의에서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연설하는 모습.
 4월 16일 러시아 모스크바 래디슨 로얄 호텔에서 러시아 국방부가 주관한 제4차 국제안보회의에서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연설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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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국정원 관계자는 현영철이 표출한 불만과 이행하지 않은 지시의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그리고 현영철 숙청의 다른 사유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영철이 처형당한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불완전한 '첩보'를 서둘러 발표한 것이다.

또한 국정원은 현영철 '공개총살' 관련 첩보를 공개하면서도 그의 '처형'을 단정하지 않는다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현영철 '처형'을 단정하지 않는 것은 그가 핵심 고위 간부임에도 북한의 공식 숙청 발표가 없다는 점, 북한 TV가 방영하는 김정은 기록영화에 그의 모습이 삭제되지 않은 채 계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과거 처형 또는 숙청한 인물들의 모습을 기록영화에서 삭제하고 로동신문 등 관영매체의 웹사이트에서 그들의 이름과 사진들을 삭제해왔다. 그러나 국정원의 발표 이후에도 한동안 현영철의 모습은 북한 TV에 계속 나왔고, 5월 31일 현재까지도 북한 로동신문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현영철 관련 기사와 사진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국정원이 발표한 현영철 '처형'의 이유가 구체적이지 않고 현영철 관련 기사와 사진이 북한 웹사이트에 그대로 남아 있어 필자는 초기에 현영철이 '처형'이나 '숙청'되었다기보다는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을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혁명화'는 북한의 고위간부들이 과오를 범했을 때 지방 기관이나 공장, 기업소, 농장 등으로 내려 보내 생산현장에서 노동하며 반성토록 하는 책벌의 일종이다. 이에 비해 고위 인사들의 '숙청'은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지거나 처형되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처벌이다. 숙청된 인물이 복권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국정원이 현영철의 '공개총살' 이유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하지 못한 가운데, 필자는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의 관계자들과 고위 탈북자 J씨와의 통화를 통해 현영철의 '죄명'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현영철이 처형되었을 가능성을 높게 보는 방향으로 필자의 평가를 수정하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의 주장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현영철이 '군벌관료주의'와 김정은의 영도 거부로 처형되었다는 데에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고, 국정원이 놓친 '군벌관료주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어 주목할 가치가 있다.

현영철의 '군벌관료주의'와 당의 영도 거부

<데일리NK>는 평안남도 소식통이 지난 5월 14일 통화에서 "상급부대 정치부가 조직한 군관 강연에서 인민무력부장(현영철)이 '수령(김정은)의 영도를 거부하고 독단과 전횡의 군벌주의자'로 언급됐다"면서 "강연한 간부는 이번 사건을 두고 40여 년 전에 숙청된 '반당, 반혁명분자 김창봉 사건'과 동일한 종파행위로 간주했다"고 밝혔다고 15일 보도했다.

김창봉은 1962년 10월부터 1968년 12월까지 민족보위상(현재의 인민무력부장직에 해당)을 지내다가 '군벌관료주의'로 숙청된 인물이다. 1969년 1월 19일 김정일은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및 인민군 총정치국 간부들과 한 담화에서 얼마 전에 개최된 "인민군당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지난 기간 민족보위성의 책임적 위치에 들어앉아있던 군벌관료주의자들이 저지른 죄행과 그 엄중성이 심각하게 폭로 비판되었다"고 지적하면서 김창봉을 '군벌관료주의자'로 묘사했다.

그리고 "지난 기간 군벌관료주의자들이 저지른 죄행 가운데서 가장 엄중한 것은 인민군대 안에서 당조직과 정치기관들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인민군대에 대한 당의 령도를 약화시킨 것"이라고 지적함으로써 당의 영도 거부를 군벌관료주의자들의 가장 큰 '죄행'으로 간주했다.

고위 탈북자 J씨도 북측 인사와의 통화에서 현영철이 '군벌관료주의'와 '소총명'(小聰明)으로 극형에 처해졌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북한 사전에 의하면 소총명이란 "잔재간이나 좀 안다는 것을 내걸고 잘난 체 하는 태도나 행동"을 의미한다. J씨는 이를 상좌(한국의 중령과 대령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계급) 이상에게만 알리고 대내외에 발표하지는 말라고 들었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그리고 현영철이 과거에 '총정치국장'이 아닌 '군사가들'에게는 김정은이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군사가들이란 인민군 총정치국장 같은 정치간부가 아니라 군사간부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당의 영도'를 '수령(김정은)의 영도'와 동일시하는 북한 체제에서 군대에 대한 당의 영도를 보장하는 '총정치국장'보다 총참모장이나 인민무력부장 같은 '군사가들'을 더 중시해야 한다는 발언은 '군벌관료주의적' 입장으로 간주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고위 탈북자 J씨에 의하면 현영철이 그렇지 않아도 이 같은 발언으로 관찰의 대상이 되고 있었는데 처형에까지 이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그의 김정은 비하 발언 때문이었다고 한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지난 4월 중순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4차 국제안보회의와 북·러 국방장관회담 참석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했다. 탈북자 J씨에 의하면 현영철은 러시아 국방장관과의 회담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폭격기 등 무장장비를 지원 받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으나 막상 회담에서는 러시아측이 '북한이 발전된 무장장비를 가지고 있다고 TV로 선전하는데 국제여론도 있어 무장장비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이에 크게 실망한 현영철은 귀국 후 동행했던 대표단에게 '다 된 밥을 못 먹게 되었다'고 불평하면서 '젊은 사람(김정은)이 정치를 잘 못한다'고 말했고, 이 말이 김정은에게 들어가 그가 현영철을 '가차 없이 극형에 처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만약 탈북자 J씨의 주장처럼 인민무력부장이 김정은 비하 발언을 했다면 김정은의 제왕적인 사고와 다혈질적인 성격에 비추어볼 때 그가 현영철에 대해 처형 지시를 내렸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본다.

김정은과 노동당의 군부 장악력 강화될 듯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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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국정원은 현영철 숙청 배경과 관련해 그의 김정은에 대한 불만 표시와 지시 불이행 및 '불경죄'만을 주로 강조했다. 이 같은 시각에 의하면 현영철 숙청의 배경은 김정은에 대한 그의 충성심 부족과 김정은의 예측하기 어려운 성격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좀 더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면 북한 지도부가 총참모장이나 인민무력부장 같은 군사간부보다 총정치국장 같은 정치간부를 더 중시하는 데 대한 군사간부들의 뿌리 깊은 불만과 사소한 비판도 용납하지 못하는 김정은의 편협하고 권위주의적인 성향이 현영철 숙청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의 거의 모든 지휘관들이 현영철과 같은 불만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것을 외부로 드러내는 경우에는 비상사건화 되는 것이다.

김정일 시대에도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직에 임명함으로써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에 대한 총정치국장의 우위를 명확히 했었다. 그런데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총정치국장에 당 엘리트인 최룡해를 임명한 데 이어 후임자로는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에서 뼈가 굵은 황병서를 임명함으로써 전통적인 군부 엘리트들의 불만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현영철 숙청 후 김정은이 박영식 인민군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을 상장(별 3개)에서 대장(별 4개) 계급으로 진급시킨 것은 총정치국을 통해 북한군 지휘관을 보다 확고하게 통제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판단된다.

총정치국 조직부국장은 총정치국에서 황병서 총정치국장 다음 가는 제2인자로서 북한군 간부들의 조직생활과 인사를 주로 담당하는 핵심 인물이다. 그가 인민무력부장이나 총참모장보다 더 낮은 계급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는 데 큰 문제가 없지만 그들과 대등한 대장 계급으로 진급함으로써 향후 전통적인 군사간부들에 대한 총정치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현영철의 숙청은 총정치국과 이 기관을 지도하는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의 영향력 확대로 연결됨으로써 전통적인 군사지휘관들의 입지는 더욱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김창봉 민족보위상 숙청 이후 군대에 대한 노동당과 김정일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던 것처럼, 이번 현영철 숙청도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을 가져오기보다는 향후 김정은과 노동당의 군부 장악력 강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성장 박사는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입니다. 이 기사는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현청철 숙청, #김정은 안정성, #군벌관료주의, #총정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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