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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사람인데, 이틀에 한 번꼴로 자정에 퇴근하는데 어떻게 매일 같이 아이들에게 싱글벙글 할 수 있냐. 노동을 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대가는 따라야 하는데, 초과근무에 대한 어떠한 보수도 지급받지 못했다."

"보육시설 평가인증을 받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퇴근시간 이후 계속적으로 서류 작성, 환경 개선사업을 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평가인증인지 모르겠다. 원장에게 시간외수당을 지급해 달라고 요청하니, 월 10만 원밖에 못 준다고 하더니 그마저도 지급하지 않고 있다."

"1월엔 휴가인데도 불러내 '일지' 교육을 받으라고 해서 교육 갔다가 선생님들이 교통사고가 났는데, 병가를 줄 수 없다고 해서 병원 입원 9일 동안 연차휴가를 사용했다. 구청에 항의가 들어가니 다시 병가로 처리하겠다고 한다."

이틀에 한 번 자정에 퇴근해도 '수당 없어'

인천시 부평구 산곡동 소재 A 구립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보육교사들은 수개월째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 보육시설 평가인증 유효기간이 만료돼 다시 인증을 얻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초과 근무에 시달려왔다. 평가인증은 보육환경과 보육과정, 건강과 영양, 안전 등 6개 영역에 대한 평가로 진행되고 있다.

3월 10일 만난 이 구립어린이집 보육교사 B씨의 수첩에는 퇴근시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설 명절 후인 2월 7일 11시 30분, 8일 11시, 9일 11시 45분, 10일 12시, 11일 새벽 1시 30분, 14일 9시, 15일 7시, 16일 11시 50분, 17일 12시 30분, 18일 11시, 21일 12시, 22일 12시 23일 12시 25분, 24일 12시, 25일 12시, 28일 1시 50분에 퇴근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대부분의 보육교사들이 B 교사와 비슷한 시간대에 퇴근했다. 심지어 B 교사보다 더 혹사당한 교사들도 있었다. B 교사의 이러한 상황을 보다 못한 B 교사의 부모가 어린이집에 강하게 항의해 그나마 B 교사는 일찍 퇴근한 날도 있었다.

이렇듯 초과 근무가 너무 가혹하고 그에 상응하는 수당을 전혀 받지 못하다 보니 일부 교사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시설장에게 시간외수당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설장은 "여기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정액으로만 지급할 수밖에 없다"며 시간외수당 지급을 거부했다.

현행 근로기준법 56조 '연장·야간 및 휴일 근로'에 따르면 사용자는 연장근로와 야간근로(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사이의 근로) 또는 휴일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해야 한다.

이에 교사들이 반발을 계속하자, 시설장은 교사들에게 '2월과 3월 10만 원씩 시간외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한 뒤 '대신에 원내의 일을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는 서약에 사인을 하라고 했고, 교사들은 사인을 했다. 그러나 11일 현재까지도 시간외수당 등을 전혀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업무로 인한 교통사고, 연차휴가 사용해 병원치료

B 교사는 "원장의 엄마인 C씨가 이 어린이집에서 특별활동으로 월 80만 원씩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특별활동 교사들이 영어나 체육을 지도하며 월 30만 원 정도를 받는 것과 비교가 된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시간외수당도 지급하지 않으면서 근무시간뿐만 아니라 오후 6시 이후에도 보육교사들의 휴대폰 사용을 금지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보육교사는 "오후 6시 이후에 휴대폰을 사용하다가 원장으로부터 모욕감이 드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교사들은 야근을 하면서도 집과 통화하는 데 눈치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1월 19일 일부 교사들이 '일지' 교육을 받고 시설로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가 났는데, 시설장은 교사들에게 '병가를 내줄 수 없다'며 '퇴근 후 귀가 도중에 사고가 났다고 하라"고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교사들은 20일부터 28일까지 연차휴가를 사용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산업재해보험도 적용받지 못 했다. 이 문제가 불거지자 시설장은 최근 병가를 적용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와 관련, 시설장은 11일 <부평신문>과 한 인터뷰를 통해 "이 같은 경우가 처음이었다. 노무사를 통해 알아보니 '병가로 처리하는 것이 맞다'고 해서 병가를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평가인증으로 인한 야간근무와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는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국공립어린이집이 비슷한 상황이다. 오후 6시까지는 보육을 해야 하고, 그 이후에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2월에만 집중적으로 그렇게 됐다"며 "2월, 3월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고, 야간 택시비도 전액 지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부평구 관계 공무원은 "초과근무 수당 등은 노동법에 적용을 받게 된다. 행정청에서 규제 등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논의를 진행 중이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중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해당 시설에 계속적으로 문제가 불거진다면 특별점검 등을 할 수 있지만, 현재는 양측의 감점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집 열악한 재정문제, 제도적 보완 시급

한편,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은 이 어린이집 문제만은 아니다. 부평구 관내 한 어린이집 원장은 "평가인증 때마다 민간 어린이집들도 서류작업 등으로 인해 종종 늦게까지 일을 한다. 일부 민간 어린이집들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명색이 구립어린이집이라면 민간시설보다는 형편이 좋은데, 왜 이런 문제가 불거졌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재정이 열악한 어린이집 처지에선 시간외수당을 제대로 지급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보육교사들이 좋은 대우를 받아야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사랑이 더 많아질 텐데, 재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현 상황을 털어놓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시간외 수당, #구립 어린이집, #근로기준법, #부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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