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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일급살인> 포스터.
 영화 <일급살인> 포스터.
ⓒ 일급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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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급살인>(Murder In The First)이란 영화는 샌프란시스코만의 유명한 '앨커트래즈'라는 감옥에서 벌어진 죄수 간의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단돈 5달러를 훔쳤다는 이유로 갇힌 헨리 영은 감옥에서 어떤 사건에 휘말려서 칠흑 같은 지하 독방에 3년 동안 갇히게 된다. 3년이 지나 지하 독방에서 벗어나 교도소 식당에 나오자마자, 헨리는 자신을 지하 독방으로 가게 한 동료 죄수를 살해하고 일급 살인죄로 다시 재판을 받게 된다.

그 재판에서 헨리의 변호사는 묻는다. 5달러를 훔친 좀도둑이 왜 3년 만에 살인자가 되었는가? 누가 그에게 살인 본능만 남은 상황으로 만들었을까? 그리고 변호사는 비인간적인 지하 독방을 운영해온 앨커트래즈 감옥을 고문과 살인죄로 기소한다. 결국 배심원단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헨리 영을 이급 살인으로 판결하고 앨커트래즈 감옥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를 지시한다.

앨커트래즈를 대한민국 군대로 바꾼다면 과한 등치일까?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입대해 전역을 9개월 정도 남겨놓았던 김 상병은 왜 살인자가 되었을까? 그의 살인에 해병대는, 군대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어떤 책임이 있는가? 감히 말하건대, 이 사건의 무게는 결코 천안함 침몰보다 작지 않다. 충분히 예상 가능하고,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일로 소중한 젊은이들 죽어나갔다.

그 크기는 다르겠지만, 우리 모두 공범자다.

"때리고 맞아야 군대다"라는 낙후한 인식

일각에서는 "요즘 군대가 빠져서 저런 사고가 난다"는 말이 나온다. 자기 군대 있을 때는 군기가 엄격해서 저런 일은 없었다는 말이다. 이는 먼저 객관적으로 틀린 말이다. 이들은 그 '좋은' 군대에서 사고와 자살률은 꾸준하게 감소했다고 본다. 정말 사고가 없어서? 아니다. 보도 통제로 자신이 몰랐을 뿐이다.

진짜 문제는 여전히 군인은 맞아야 한다는 낙후된 사회적 분위기이다. 이 분위기가 군의 근본적인 변화를 더디게 만들었고, 결국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는 것을 방조했다.

물론 모든 군대는 그 특수성 탓에 나름의 규율과 위계질서를 갖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군대가 유독 가학적인 문화를 유지해왔던 것은 일제 식민지라는 역사적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요즘 군대가 빠졌다"고 말하는 이들의 예전 군대란 바로 일본 황군의 폭력적 군대 문화가 지배하는 병영이다.

20세기 초반,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러시아에 비교해서 낮은 공업 수준과 한정된 군사력으로 강대국 러시아를 이겼다. 이때 일본 군대 승리의 근간은 정신주의에 기초한 백병주의였다. 이 정신주의란 쉽게 말하면, 화력적 열세를 병사들의 군기로 극복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각 부대에 적용되었던 게 엄격한 위계질서와 폭력의 일상화였다. 저비용 다병주의, 즉 사람의 수로 전쟁을 치르다 보니 쥐꼬리만 한 월급과 열악한 복무환경이 엄격한 내부 통제와 폭력으로 강압되었다.

한국전쟁 61주년을 맞아 KBS가 지난 24~25일 이틀간에 걸쳐 2부작으로 방영한 '전쟁과 군인'에 출연한 백선엽씨.
▲ KBS의 '백선엽 특집방송' 한국전쟁 61주년을 맞아 KBS가 지난 24~25일 이틀간에 걸쳐 2부작으로 방영한 '전쟁과 군인'에 출연한 백선엽씨.
ⓒ KBS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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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정신주의로 전장에서 성과를 거둔 일본 군대는 1930년대와 1940년대 초반부터는 장교가 병사들을 구타하는 것을 하나의 '정책'으로까지 격상시킨다. 구타가 보병들을 명령에 복종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기술'이 된 것이다. 한 일본군 병사가 증언한 구타라는 '기술'의 효과는 처참하면서도 정확하다.

"잔인하고 비합리적인 벌을 계속 받다 보니까 아무 생각 없이 명령에 따르는 것이 몸에 배게 되었다."

한국군은 미군정시기에 그 기틀을 잡았기에 형식적으로는 미국 군대와 비슷하지만, 그 제도를 운용한 군부 엘리트들을 모두 일본 제국 군대에서 훈련받고 복무했던 장교들이었다. 요즘 떠들썩한 백선엽씨도 일제의 괴뢰 만주국의 관동군 출신으로 한국군 장군에 오른 양반이다. 그들은 일제 군대에서 병사들의 일상생활을 통제하는 방식을 한국 군대에 그대로 가져왔고, 군대에서는 그렇게 자기들끼리 때리고 맞는 폭력적 문화가 퍼졌다.

물론 민주화 이후 병영 문화에 많은 변화와 개선이 이루어졌다. 분명한 사실이다. 1980년에서 1995년까지 군 복무 중 사망한 사람은 9천 명에 달했다. 연평균 600여 명의 젊은이가 국방부 표현대로 하자면 '비전투손실'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1995년 이후 2004년까지 연평균 사망자는 220명 정도로 떨어졌다. 민주화와 군의 변화가 매년 400여 명의 젊은이를 '살린' 셈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군기가 빠져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보는 이들은 상당하다. 그들이 말하는 "군기"에 수많은 이의 목숨이 사라졌는데도 말이다. 북한 국가 예산의 몇 배의 돈을 국방 예산으로 쓴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저비용 다병주의가 우리 군의 핵심 전략인가? 구타와 모욕으로 사람을 복종하는 기계로 만드는 1940년대 일본 군대의 기술이 21세기 대한민국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정책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군기가 아니라, 제복 입은 시민으로서 군인에게 더 많은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 인권은 더 많은 젊은이를 살릴 수 있다.

군대에 적응 못 하는 신세대 장병 개인의 문제인가?

지난 2005년 6월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연천 최전방부대 GP총기난사 사망 병사들 합동영결식 장면. 고인들의 관이 동료병사들에 의해 영결식장으로 운구되고 있다.
 지난 2005년 6월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열린 연천 최전방부대 GP총기난사 사망 병사들 합동영결식 장면. 고인들의 관이 동료병사들에 의해 영결식장으로 운구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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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19일 GP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사건 때에 "리셋증후군"이란 용어가 언론에 한참 등장했다. 총기를 난사했던 김 일병이 컴퓨터와 게임을 즐기는 신세대에게 퍼져 있는 리셋증후군 때문에 사고를 저질렀다는 분석이었다.

리셋증후군이란 컴퓨터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현실의 관계도 모두 지우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김 일병이 취미란에 "게임"이라 적었고, 말수가 적었지만 미니홈피에는 많은 글을 남겨왔다는 것이 근거랍시고 언급되기도 했다.

이번 해병대 총기 난사 사건 역시 애초의 기수열외와 같은 구조적 문제에서 개인의 부적응 문제로 방향이 선회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12일 국무회의에서 "체벌 자체보다도 자유롭게 자란 아이들이 군에 들어가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는 언급을 했다.

이후 논란이 되자 "70년대식의 병영문화가 지속 돼선 안 된다는 취지의 말씀"이라고 진화했지만, 군 내부의 사고를 사병 개인의 부적응 문제로 돌리는 것은 문제의 원인을 온전하게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오래된 방식이다.

물론 개별 사안과 개개인의 특수한 사정을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안과 개인의 특수성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이다. 이 자살률이 한국 시민의 '국민성'이 유약하고 세계화된 시대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라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이겠는가? 사회가 점점 민주화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요하게 인식해 가는데, 군대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명확하다. 리셋증후군 같은 허황한 이야기 말고, 무엇이 이들을 살인자로, 혹은 자살로 몰아갔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물론 병영문화를 개혁하고자 하는 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훈련소 인분 사건'과 GP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노무현 정부는 더 이상 낙후된 군대를 방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 속에, 병영문화를 개혁하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을 시도했다. 그 결과 중 하나인 '군인복무기본법안'은 "앞으로 군대에서 폭행이나 가혹행위, 언어폭력을 금지하고 병 상호 간에도 권한이 부여된 자를 제외하고는 명령이나 지시, 부당한 간섭을 금지"한다는 설명과 함께 2007년 입법 예고되기도 하였다.

정책이 아니라 집행이 관건이다. 권리는 없고 의무만 가득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그나마 정권이 바뀌고서는 이 군인복무기본법안조차 사문화되어버렸다. 이번 정권에 들어와서 전·의경 부대 내부의 가혹행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줄줄이 이어졌고, 해병대 내부의 구타와 집단 따돌림 문제 역시 올해 3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그 심각성 때문에 직권조사를 벌여 시정권고를 내린 사항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 이번 비극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었다.

경기도 연천 최전방부대 GP총기난사로 사망한 8명의 병사들의 합동영결식이 2005년 6월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유가족과 동료부대원들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합동영결식에 참석한 고인들의 동료병사들이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경기도 연천 최전방부대 GP총기난사로 사망한 8명의 병사들의 합동영결식이 2005년 6월 25일 오전 경기도 분당 국군수도병원에서 유가족과 동료부대원들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합동영결식에 참석한 고인들의 동료병사들이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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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 개입의 제도화가 필요

국방부는 사건이 터지고 부랴부랴 7월 18일 "해병대 병영문화혁신"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모든 구타·가혹행위에 대하여는 군검찰부에 통보하여 법적판단을 받도록 할 것"이라며 "징계처벌에서도 온정적 처리를 배제하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말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말의 무게가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2005년 6월 19일 GP 총기 난사 사건 때에는 발생 사흘 만에 윤광웅 국방장관은 사의를 표명했지만, 이번 해병대 사건 뒤 그 어떤 군 고위관계자도 책임지겠다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사의를 표명하고 사태를 수습해야 할 해병대 사령관이 사태 발생 후 한참이 지나서야 "책임질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겠다"는 하나 마나 한 말을 등 떠밀리듯 뱉은 것이 전부이다. 현재 국방부가 말하는 강력한 병영문화 혁신이란 것이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보신주의의 한 모습으로 보이는 이유이다.

폐쇄적인 집단은 필연적으로 부패하고, 경직되게 마련이다. 민주화된 국가에도 마지막 성역인 군대라지만 그대로 놓아두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목숨을 잃었다. 노무현 정권 때 군 복무는 18개로 단축하며, 군대 내부의 인권교육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군인복무기본법안 등의 제도적 장치로 군인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했으나 모든 것이 뒤집히거나 사문화되었다. 그렇게 뒤집고 깔아뭉갠 것이 바로 군부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 것처럼, 검찰이 검찰을 수사하지 못하는 것처럼, 군대의 병영문화 개혁을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개입이 필수다.

현재 시민사회에서는 시민사회의 개입을 통해 이번 해병대 사건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있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 외부인사의 국방 옴부즈맨 도입이나 사병의 인권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제도적 방안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들을 국방부가 적극 수용해야 할 것은 물론이다. 또한 정권 역시 임기 내내 손 놓고 있었던 병영문화 개혁을 지금이라도 철저하게 집행한다는 의지를 가질 필요가 있다. 사람이 죽어나간 후에야 비로소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 더욱 철저하게 말이다.

여전히 이러한 조치가 군대 기강을 해치고, 안보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들에게 지난 2월 27일 신병 훈련 도중 자살한 정아무개 훈련병의 유서를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20살의 청년은 중이염 증세로 훈련소에서 아파하다 목숨을 끊었다. 도대체 누구를 지키기 위한 군대인가? 정 훈련병의 자살에 우리 사회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엄마, 자랑스럽고 듬직한 아들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요. 2월 4일부터 귀가 먹먹했는데 아직 안 나았어요. 진짜 불편해서 의무실과 병원을 자주 갔는데, 이젠 아예 꾀병이라고 합니다. 혹시나 식물인간이나 장애인 되면 안락사해 주세요. 너무 슬퍼하지 마시고 원래 없는 셈 해주세요. 정말 미안해 엄마. 사랑해."


태그:#해병대, #군대, #인권, #병영문화, #국방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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