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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본색'은 정치부 기자들이 쓰는 '取중眞담'으로 '새로운 정보'가 있는 기자 칼럼을 지향합니다. [편집자말]
새정치민주연합 차기 당권주자로 나선 문재인·이인영·박지원(기호순) 후보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서울특별시당 정기대의원대회 및 당대표 최고위원후보 합동연설회에서 손잡고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차기 당권주자로 나선 문재인·이인영·박지원(기호순) 후보가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서울특별시당 정기대의원대회 및 당대표 최고위원후보 합동연설회에서 손잡고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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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제야?"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의 경선 룰 갈등을 두고 제기되는 가장 큰 의문점이다. 지난해 말에 당 대표·최고위원 선출 시행세칙을 정할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왜 한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결정된 규칙을 두고 우왕좌왕하느냐는 문제의식이다.

쟁점은 이번 경선 결과에 25% 반영될 예정인 일반당원·국민 여론조사 방식이다. '지지후보 없음'이라는 답변을 득표율 계산에 포함할지를 두고 문재인·박지원 후보가 맞붙었다. 그렇다면 여론조사 방식 시행세칙을 의결할 때는 왜 이런 공방이 없었던 걸까.

갈등의 불씨 싹 틔운 전대준비위

새정치연합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2014년 12월 말 열린 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아래 전대준비위) 전체회의에 경선 시행세칙이 의결 안건으로 올라왔다. 시행세칙은 실무를 맡은 당직자가 작성했다.

해당 당직자는 "'2013년 5·4 전당대회 때의 룰을 최대한 준용하라'는 김성곤 전대준비위원장의 방침에 따라 과거 룰을 그대로 가져왔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5·4 전당대회 이후 변경된 정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 기준에 따라 '지지후보 없음'을 문항에 새로 추가하기로 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2013년 5·4 전당대회 때는 문항에 후보들만 있었기 때문에 득표율 합산도 후보들로만 집계하면 됐다. 하지만 이번에 '지지후보 없음'이 추가되면서 합산 방식이 달라질 수 있게 됐다.

100명이 여론조사에 참여해 40명이 1번, 30명이 2번, 20명이 3번, 10명이 '지지후보 없음'을 선택했다고 가정해보자. 문항 그대로 합산하면 후보들의 득표율은 각자 표를 얻은 비율만큼만 계산된다. 각각 40%, 30%, 20%가 되는 것이다.

반면 이전 방식처럼 '지지후보 없음'을 무효표로 처리하면, 모수가 줄어들어 후보들의 실제 득표율은 44.4%, 33.3%, 22.2%로 올라간다. 격차가 더 커지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유리한 문재인 후보는 '지지후보 없음'을 빼야 유리하고, 박지원 후보는 그 반대의 경우가 된다.

지난해 6·4 지방선거 새정치연합 후보 경선 때는 '지지후보 없음' 문항을 넣는 대신 "최종 합산에서는 제외한다"라고 명시해 2013년 5·4 전당대회 경선 때와 마찬가지로 후보 문항으로만 득표율을 계산했다. 이번 시행세칙에는 해당 문구가 들어가지 않았다. '지지후보 없음' 문항까지 합산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당시 전대준비위 회의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어떠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지후보 없음'이 문항에 포함되면 득표율은 어떻게 계산하는가?"라는 질문조차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황인철 전대준비위원 등 일부는 "문항을 전부 포함해 득표율을 합산하는 것으로 이해했다"라는 반면, 전해철 의원 등 나머지 전대준비위원들은 "5·4 전당대회 룰을 준용한다고 했으니 당연히 후보 득표수로만 계산하는 줄 알았다"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행세칙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았다"라는 전대준비위원도 있다.

결국 이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시행세칙을 통과시켰고, 지난해 12월 29일 당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비대위)도 이를 최종 의결했다. 전대준비위와 비대위의 허술한 검토가 갈등의 불씨를 싹 틔운 것이다.

당시 의결된 시행세칙을 받아본 후보 대부분도 합산 방식이 이전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분위기다. 이인영 당 대표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우리도 이러한 문제를 최근에야 알게 됐다, 당직자 출신이 많은 박지원 후보 쪽만 일찍 알아차린 듯하다"라며 "이 사실을 몰랐던 후보들은 무능한 것이나 다름없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갈등의 불씨 진압하지 않은 당 선관위

여론조사 경선 룰 문제가 처음으로 거론된 때는 지난 1월 29일 새정치연합 선거관리위원회(아래 당 선관위) 저녁 식사 자리에서다. 처음 시행세칙을 만든 당직자가 이후 실무작업 중 갈등의 여지를 발견했고, 바로 당 선관위원들에게 '득표율 합산 방식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는 "당초 입법 취지대로라면 후보 문항만 유효표로 인정하는 게 맞다"라는 의견도 덧붙였다.

반면, 당시 자리에 배석한 당 선관위 실무 담당자는 '지지후보 없음'을 득표율로 합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는 것도 국민 여론이기 때문에 포함해야 한다"라는 논리다. "'지지후보 없음' 합산 여부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라는 조언도 나왔다고 한다. 이에 따라 당 선관위원들은 '지지후보 없음' 문항을 포함해 득표율을 합산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헤어졌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후보 캠프에서 강력히 항의하고 나섰다. 문재인 후보 쪽은 반대 성명을 공식 발표하며 당 지도부에 이의를 제기했다. 문 후보 캠프 관계자는 "5·4 전대 룰을 그대로 가져왔다기에 당연히 후보 득표수로만 비율을 합산하는 줄 알았다"라고 설명했다.

전병헌·정청래 등 다수의 최고위원 후보들도 '지지후보 없음을 빼고 합산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당 선관위 쪽에 전달했다. 그러자 박지원 후보 쪽은 "이미 의결된 시행세칙을 수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특정 후보에 유리하게 룰을 변경해서는 안 된다"라고 반박했다.

당 선관위는 다음 날(1월 30일) 오후 회의를 소집하고 시행세칙 수정 여부를 안건으로 상정했다. 이 자리에는 여론조사 전문가도 참석했다. 전문가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안다"라면서도 "보통 '지지후보 없음' 문항 응답률이 30% 정도 된다, 사표가 많이 발생할 것"이라 우려했다고 회의 참석자들은 전했다.

신기남 당 선관위원장은 "우리가 실무자로부터 잘못된 정보를 보고받아 예측을 정확히 못한 측면이 있었다, 사실 이전 전당대회에서 '지지후보 없음'을 득표율로 합산한 적도 없는 것 아닌가"라며 "결국 두 번째 회의(1월 30일) 때는 후보들 득표수로만 비율을 계산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뒤집혔다"라고 말했다.

당 선관위는 논의를 거듭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대신 룰을 최종 의결한 비대위에 재검토를 요청했다. 시행세칙을 수정하거나 유권해석을 내리는 등의 조치를 당 지도부에 넘긴 것이다.

신 위원장은 "우리는 시행세칙이 내려오는 대로 집행할 뿐이지 이러쿵저러쿵 결정할 권한은 없다"라며 "세칙을 의결해 내려보낸 비대위에서 해석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행세칙 29조는 "세칙 개정 등 필요한 사항은 선관위가 정한다"라고 규정한다. 당 선관위가 권한이 있는데도 갈등의 불씨를 진압하지 않은 채 지도부에 책임을 넘긴 셈이다. 비대위는 시행세칙을 수정하거나 유권해석할 권한을 다시 전대준비위에 위임했다.

불씨 부채질한 전대준비위

전대준비위는 지난 2일 전체회의를 열고 '지지후보 없음' 응답을 득표율에 넣을지를 논의했다. 시행세칙 작업을 맡은 당직자는 전대준비위원들에게 "내 실수로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다, 5·4 전당대회 때처럼 후보 득표수로만 비율을 계산하는 게 맞다"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일부 전대준비위원들은 "이미 의결된 룰이니 모든 문항을 득표율로 합산하는 게 맞다"라고 반발했다.

전대준비위는 '지지후보 없음' 조항을 여론조사 결과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표결에 부쳤다. 11명은 찬성, 2명은 반대, 2명은 기권했다. 후보 득표수로만 결과를 합산하는 쪽으로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일부 당권주자들은 "전대준비위가 특정 후보를 위해 룰을 변경했다"라고 항의했다. 박 후보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100m 경주에서 98m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규정을 바꾼다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시행세칙 조문이 이전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문 후보 캠프를 거론하면서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았다면 비열한 것"이라고 힐난했다.

주승용 최고위원 후보도 성명을 내 "시행세칙에 분명하게 명문화돼 있는 것을 자의적으로 재해석하며 일방의 편을 들어준 것은 공정선거 관리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김성곤 전대준비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당의 각종 경선과정에서 일관되게 적용돼온 원칙에 따라 해석한 것"이라며 "결코 새로운 룰을 만들거나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친 결정을 하지 않았다"라고도 강조했다.

"당을 통합할 사람들이 당을 분열시켰다"

그러나 모양새로 보면 사실상 '지지후보 없음' 문항 합산을 반대해온 문 후보 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 선관위에서 여론조사 실무를 담당한 한 관계자는 "후보로만 득표율을 합산하는 게 애초 입법 취지였다면 이번 전대준비위 회의 때 이를 명시하는 쪽으로 세칙을 개정했어야 한다"라면서 "개정이 부담스러우니 무리한 유권해석을 내린 것 아닌가, 비겁한 방법"이라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시행세칙만 놓고 보면 '지지후보 없음' 문항도 합산하는 게 맞다"라며 "사실상 당이 특정 후보에 유리하게 여론조사 경선 룰을 뒤집은 것처럼 돼버렸다"라고 덧붙였다.

이인영 후보 캠프 관계자도 "아무리 실수였다 해도 정해진 규칙대로 가는 게 상식이자 도리"라면서 "'이번에는 의결된 룰에 따르겠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다'고 했어야 한다"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새정치연합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짚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후보들은 잘못한 게 없다. 문 후보의 패권도, 박 후보의 음모도 아니다. 선거에 뛰어든 사람들은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규칙을 해석하는 게 당연하다. 결국 해석의 여지를 남긴 당이 문제다. 갈등을 빚을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당 지도부와 전대준비위의 역할 아닌가. 당을 통합해야 할 사람들이 당을 분열시켰다."

'통합의 전당대회'를 만들겠다던 제1야당의 현실을 냉정하게 지적하는 답변이었다.


태그:#문재인, #박지원, #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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