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3 17:34최종 업데이트 24.02.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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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 계엄령 문건 의혹의 핵심 인물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입국한 뒤 서울서부지검으로 압송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1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 형사5부(부장검사 김정훈)는 2017년 박근혜 탄핵 국면 당시 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 문건 사건' 수사를 종결했다. 수사가 시작되고 6년 만의 일이다. 2018년 7월 계엄 문건이 폭로되면서 시작된 수사는 주요 피의자 중 한 명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소환에 불응하고 해외로 도주, 잠적해 중단되었다가, 2023년 3월 조 전 사령관이 돌연 귀국하면서 재개되었다.

검찰은 계엄령 문건 작성을 내란음모로 볼 수 없다며 조현천, 김관진, 한민구, 박근혜 등의 주요 피의자들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다수의 조직화 된 집단이 폭동을 모의'하여 '폭동 실행을 위한 의사합치'를 이루어 '실질적 위험성'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처분 이유다.


계엄 문건이 문제가 있는 것은 맞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실행을 결심하거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으니 처벌할 수 없다는 희한한 논리다. 대신 검찰은 조현천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기무사가 할 일도 아닌 위헌적인 계엄 문건 작성을 부하들에게 지시했다는 것이 주요 혐의다.

하지만 수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 결론이 아예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담당 검사가 작성한 불기소이유서에 따르면 수사를 통해 검찰이 확인, 인정한 사실은 이렇다.

2016년 10월 29일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가 시작된 이후, 군은 이미 11월 초에 시위가 격화될 시 군대를 투입해서 진압할 계획을 세웠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2017년 2월 중순, 조현천 기무사령관에게 시위가 격화되는 비상 상황을 대비해 위수령과 계엄령을 검토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하였고, 조 사령관은 2월 16일부로 기무사에 위장 명칭을 사용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여 계엄 문건을 작성하게 했다.

T/F는 위수령, 경비계엄, 비상계엄 시행 절차를 마련했고, 위수령·계엄 시행 시 병력을 출동시킬 계엄임무부대를 지정하고, 합참의장이 아닌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하는 비정상적 계엄사령부 편성 계획을 마련했으며, 국회가 계엄해제를 시도할 시 국회의원들을 검거할 계획을 고려사항에 포함시켜 문건을 완성했다.

문건의 결론 부분은 국방부 장관에게 문건을 보고한 이후 기무사가 탄핵 선고일까지 서울지역에 위수령이 발령될 시 증원할 부대, 방호계획 등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위수령이나 계엄 선포의 여건을 지속적으로 평가하며, 명령이 내려지면(의명) 계엄 시행 준비에 착수하겠다는 것이다.

조 사령관은 2017년 3월 3일 한 장관에게 계엄 문건을 보고하였고, 한 장관은 보고가 끝나자 "잘 이해했다. 검토는 종결하라"며 모호한 말을 남긴 뒤 조 사령관에게 문건을 돌려줬다.

이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기무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 취임식이 열린 5월 10일 계엄 문건을 군사비밀로 둔갑시켜 위장 등록했다.

반쪽짜리 검찰 수사가 드러낸 것
 

2019년 11월 5일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청와대가 공개한 계엄령 문건은 가짜라고 주장하며 최종본 공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리하면 검찰 역시 계엄문건에 위헌이자 위법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계엄문건이 '명령'이 떨어지면 시행할 목적으로 작성된 실행계획이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이러한 수사 결과가 의미 있는 건, 그간 국민의힘과 기무사 출신 예비역들이 계엄문건을 아무 문제 될 것 없는 '통상적인 검토 문건'에 불과하다거나, 문재인 정부가 기무사를 해체시키기 위해 조작한 문건이라 두둔해 왔기 때문이다.

과거 하태경 바른미래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계엄 문건을 처음으로 폭로한 군인권센터를 '군괴담센터'라고 비난하고 문재인 정부가 공개한 계엄 문건 최종본은 가짜라며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국민의힘은 여기서 한술 더 떠 문재인 정부가 군사기밀인 계엄문건을 유출시켰다는 주장을 펼치며 송영무 국방부 장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국민의힘의 계엄문건 두둔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계속되는데, 문건 작성에 관여한 기무사 간부들과 T/F까지 꾸려 계엄문건 폭로가 '국가안보문란'에 해당한다며 임태훈 소장 등을 또 고발했다. 이번 검찰 수사 결과는 이들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억지라는 점을 방증해 줬다.

그럼에도 검찰의 수사는 반쪽짜리로 끝났다. 검찰은 계엄문건의 실체와 문제점을 다 밝혀놓고 정작 작성 지시에 관여한 이들이 누구인지, 무슨 의도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대충 수사하고 덮어버렸다.

기무사는 문건에 계엄 발령 시 병력을 출동시킬 계엄임무부대를 선별해두었고, 국방부 장관의 명령이 있으면 즉시 국방부, 육군본부, 관련 부대에 문건을 전달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러한 계획은 국방부 장관과 기무사령관의 검토, 확인도 모두 거쳤다.

그러나 검찰은 계엄령이 선포되면 계엄임무부대로 출동하게 될 부대 관계자들이 계엄 문건에 대해 듣거나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는 이유로 이러한 문건 작성을 지시한 한 장관과 조 사령관을 '국헌문란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조직화된 다수를 이룬 집단'으로 보기 어렵다고 일축해 버렸다.

군에 대한 명령, 지휘권을 가진 국방부 장관이 정보기관장인 기무사령관을 시켜 '명령만 내리면 행동을 개시할 목적'으로 만든 문건을 주물럭거리고 있었는데 출동 대상 부대장들이 그러한 계획을 몰랐다고 '주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실행 가능성 없는 문건이라 판단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군은 명령을 내리면 움직이는 조직이다. 문건 마지막 페이지에도 분명 '의명'이라 적혀있다. 때문에 설사 수명 대상인 부대장들이 정말 문건의 존재를 몰랐다고 해도 문건 작성을 지시하고, 그 지시를 이행한 이들의 의도와 위험성이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계엄문건은 '명령'이 떨어지면 실행하겠다는 취지로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아직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상황은 내란을 저지르기 위한 '의사 합치'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상한 논리도 내밀었다. 군령권을 가진 사람이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의 반헌법적 군사작전 계획 문건을 쥐고 있어도 실제 명령을 발령하지 않았으니 문제가 안 된다는 검찰의 인식대로라면 국민은 언제나 쿠데타의 위험을 떠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권력 눈치 보며 헌법을 벼랑 끝에 매달아둔 검찰
 

서울서부지방검찰청 형사5부(부장검사 김정훈)는 계엄령 문건 작성을 내란음모로 볼 수 없다며 조현천, 김관진, 한민구, 박근혜 등의 주요 피의자들을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 이정민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도 요식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청와대에서 계엄령은 검토한 적이 없다'며 문건 작성 과정에 자신은 아무것도 관여한 바가 없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검찰은 2016년 10월경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 소위 '희망계획'이라는 이름으로 계엄 선포를 검토한 사실을 수사 과정에서 확인한 바 있다. '희망계획' 역시 국회의원 체포 등 기무사 계엄문건과 유사한 반헌법적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의심할 만한 정황이 충분함에도 검찰은 김 전 실장의 말을 '믿어준' 것이다.

게다가 한민구 전 장관은 '국회 답변용으로 법률 검토를 시킨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조현천 전 사령관은 '장관에게 비상 상황을 대비해 위수령과 계엄을 검토하라고 지시받았다'고 주장하는 등 문건 작성 경위에 대한 진술이 서로 엇갈렸음에도 누구의 말이 맞는지 규명조차 하지 않고 수사를 종결지었다.

내란음모죄 성립 여부를 따지자면 문건을 만든 의도를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고, 그러자면 작성 경위부터 명명백백히 밝혀야 하는데 시작 단계에서부터 덮어버린 셈이다. 검찰에 애초부터 내란음모죄를 적용할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주요 피의자 중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아예 진술서 한 장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전두환과 노태우에게 면죄부를 줬던 검찰이 이젠 '실행하지 않은 쿠데타도 처벌할 수 없다'며 조현천 일당에게 면죄부를 쥐여줬다. 차마 계엄 문건의 문제점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지만, 문건 작성 의도와 경위가 밝혀지면 닥치게 될 후폭풍이 두려워 온갖 법리를 짜맞추어 관련자들을 다 풀어준 것이다.

검찰의 결론대로라면 앞으로 공직자들은 '실행'만 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세금으로 헌정질서를 위태롭게 할 계획을 세워도 처벌받지 않을 것이다.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안녕과 인권을 지켜야 할 법집행기관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헌법을 벼랑 끝에 매달아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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