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30 15:02최종 업데이트 24.01.3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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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예람 중사의 유가족과 변호인단이 지난 15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고 이예람 중사 2차가해·부실수사' 공군 관계자 1심 선고 재판을 마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6형사부(재판장 정진아)는 '공군 20전투비행단(20비)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관련 군 내 성폭력 및 2차 피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가 기소한 사건 중 이 중사의 대대장 A씨, 중대장 B씨, 담당 군검사 C씨에 대한 선고 공판을 진행했다.

전출 예정 부대 중대장에게 이 중사가 '관련된 언급만 해도 고소를 하려고 한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20비 중대장 B씨는 명예훼손으로 징역 1년, 본인 휴가 일정 등을 이유로 피해자 조사 일정을 연기해 놓고 이 중사 사망 이후 수사 지연 사유를 '피해자의 희망에 따른 조사 일정 연기'로 허위보고한 20비 군검사 C씨는 허위보고, 무단이탈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대대장으로서 피-가해자 분리 등 피해자 보호 조치를 소홀히 했고 2차 가해 사실을 알고도 관련자에 대한 징계 및 조사 절차에 착수하지 않은 직무유기 혐의, 가해자의 수사 편의를 봐주기 위해 공군본부에 거짓말을 하여 전출 시기를 늦춤으로써 피-가해자의 지역 분리를 지연시킨 허위보고 및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또, C씨가 군검사로서 강제추행 가해자에 대한 구속 수사 원칙을 지키지 않았고, 2차 가해 사실을 알고도 보호 조치나 관련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으며, 정당한 사유 없이 수사를 한 달 반 동안 진행하지 않아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나아가 C씨가 수사 과정에서 동기 법무관 등 지인들에게 피해자의 자살 시도, 사망 직전 촬영한 영상에 담긴 내용 등을 누설한 혐의는 압수수색 한 C씨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하여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무죄 판결
 

전익수 전 공군 법무실장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지난해 7월 29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고 이예람 공군 중사 어머니 박순정씨가 기자회견 중 이 씨의 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이번 선고의 주된 쟁점은 '직무유기'의 성립 여부였다. 이 중사가 소속 부대의 소홀한 보호 조치로 2차 가해에 지속 노출되고, 군 수사기관이 사실상 이를 방치하고 수사를 지연시킨 가운데 사망했기 때문에, 소속 대대장과 담당 군검사의 직무유기에 대한 판단은 이 중사 사망 책임을 가리는 일에 있어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무원의 직무유기 성립에 대한 오래된 판례를 그대로 수용했다. 대법원은 공무원의 직무에 대해 '법령의 근거 또는 특별한 지시, 명령에 의하여 맡은 일을 제 때에 집행하지 아니함으로써 그 집행의 실효를 거둘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는 때의 구체적 업무'라고 규정하고 있다(대법원 2007. 7. 12. 선고 2006도 1391 판결 등).

그런데 직무유기는 '법령, 내규에 따른 추상적 성실의무를 게을리하는 일체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의 무단이탈,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 등과 같이 국가 기능을 저해하고 국민의 피해를 야기할 구체적인 가능성이 있는 경우만을 가리킨다'고 좁게 해석한다(대법원 1983. 3. 22. 선고 82도3065판결 등).

판례에 따르면 공무원이 법령, 규정, 지시로 명확하게 정해진 직무를 근무지 무단이탈, 의식적인 포기 등으로 이행하지 않을 때만 직무유기가 성립되고, 직무를 이행하지 않아 피해자가 사망하는 등의 부적절한 결과를 도출해도 '고의'로 직무를 포기한 것이 입증되지 않으면 형사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대대장, 군검사 등은 바로 이 '고의'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선고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대장 A씨는 이 중사가 강제추행을 당하고 다음 날인 2021년 3월 3일 밤 9시 50분경 이 중사의 직속상관인 반장 노모 준위로부터 피해사실을 신고받았다. 이때 A씨는 노 준위가 강제추행 사건을 신고 받았음에도 12시간 동안 보고하지 않았으며, 이 중사와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며 회유하다가 이 중사 고모의 항의를 받고 난 뒤에 뒤늦게 보고하였음을 인지하였다. A씨는 피해사실을 군사경찰대대에 신고하기는 했으나, 신고가 늦어진 경위 등 노 준위의 행동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다. 노 준위는 이때 이 중사를 회유한 죄 등으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신고 이후 A씨는 비행단장, 군사경찰대대장, 성고충상담관 등으로부터 피-가해자 분리를 철저히 하고 2차 가해를 방지하라는 당부를 여러 차례 받았다. 하지만 A씨는 이 중사가 청원휴가 중이라 출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가해자가 분리된 것으로 판단하고 가해자에 대한 인사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당시 이 중사는 부대 안 관사에서 머물고 있었고, 가해자도 이 중사 관사 인근 관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접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가해자를 타 부대에 파견하기 위한 절차는 성고충상담관이 A씨에게 문제를 제기한 뒤에야 이루어졌다.

그런데 돌연 A씨는 상부에 가해자의 조사예정일 이후로 파견 일정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특검 공소사실에 의히면 A씨는 군사경찰대대가 조사를 위해 파견을 미뤄달라고 요청을 했다는 식으로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군사경찰대대는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없었고, 조사일정 변경은 20비의 공식 입장도 아니었다.

결국 A씨의 파견 연기 요청으로 가해자는 사건 발생일로부터 보름이 지난 3월 19일이 되어서야 타 부대로 전출을 갔다. 그 사이 가해자는 부대 안에 이 중사를 비방하는 소문을 내고 다녔다. 가해자는 허위사실로 피해자를 비방하고 다니며 2차 가해를 한 죄로 지난해 징역 1년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이처럼 2차 가해를 한 사람들이 줄줄이 법원에서 유죄를 받았음에도 이를 막기위해 책임을 다해야 했던 지휘관인 A씨는 '고의'로 직무를 유기한 것이 아니란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여러 정황에 비추어 볼 때 직무유기가 고의가 아니란 점도 의심스럽지만, 백번 양보해 고의가 아니라 치더라도 2차 가해로 피해자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책무를 다하지 않은 지휘관이 단지 판례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공무원이 직무를 정상 수행하지 않아 인명피해 등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해도 법으로 다스리기 어렵다.

군검사 C씨도 마찬가지다. C씨가 2차 가해 상황을 인지하고도 이 중사에 대한 소환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에 대해서도 고의가 인정되지 않아 직무유기가 성립되지 않았다. 군검사가 이 중사를 죽게 만들 고의를 갖고 수사를 지연시키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군검사의 그릇된 행동이 영향을 미쳐 결국 피해자가 사망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판례로 인해 C씨는 처벌받지 않았다. 

직무유기 혐의, 결과의 중대성을 보고 판단해야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가 지난해 5월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 등의 결심공판을 방청한 뒤 취재진에게 의견을 밝히고 있다. ⓒ 소중한


직권남용, 직무유기죄는 국민의 안전과 복리를 위해 일하는 공직자의 엄격한 직업적 윤리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만큼 공직자 직무수행의 결과가 국민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죄 모두 낡은 판례에 따라 매우 보수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직무범위에 속하지 않는 지시를 내리거나 직무를 수행하면 직권남용을 인정하지 않고, 고의성이 없으면 직무유기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직권남용, 직무유기가 대개 무죄 선고를 받는 이유다.

공직자로서 분명 책임져야 할 일을 해놓고도 판례가 보수적이어서 빈틈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면 이는 법원의 책임이 크다. 더 이상 직권남용, 직무유기를 다룸에 있어 공직자가 무슨 의도를 갖고 행동했는지, 기계적인 직무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공직자가 저지른 문제 행동의 결과가 빚어낸 결과의 중대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A씨는 이 중사 생전에 부모님을 만나 성폭력 사건을 잘 처리하겠노라고 약속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딸은 자결했고, 법정에선 A씨의 잘못된 행태가 낱낱이 폭로되었다. 그럼에도 '잘못은 있지만 죄를 줄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은 유가족에겐 이런 뜻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시간을 다시 돌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에 대한 선고에서도 잘못은 있지만 법이 없어 벌을 못준다는 비슷한 내용의 선고가 있었다. 그때도 유가족은 소리 높여 '전익수 방지법' 제정을 요구했지만 국회는 감감무소식이다.

피해자에겐 지켜줄 법도, 법원도 없는 것일까. 한없는 절망의 무게 속에 대대장 A씨가 무죄를 선고받자 이 중사 어머니가 실신했다. 항소심에서 수십 년 묵은 낡은 판례에 대한 전향적 고민이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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