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2 11:01최종 업데이트 23.12.2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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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 권우성


대통령부터 지방기초단체까지 국민을 대신해 국가를 운영하는 공공기관들은 자신들의 정당성과 행위를 국민들에게 어떻게 증명할까? 바로 '기록'이다. 기록이라는 단어의 피상적 의미는 건조한 사실관계나 사료를 지칭하는 말 같지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기록이 국가기관과 공공기관 행위의 명분과 그 책임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라고 하면 기록은 그저 단순한 사료가 아닌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담지하는 요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런 기록의 중요성 때문에 국민을 대행하고 있는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경우 2007년 시행된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그리고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2000년부터 시행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아래 공공기록물법)에 따라서 업무 간 생산하거나 접수해 보유한 기록들을 엄격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국회의원 의정활동기록 관련 법규 없어서 관리 안 돼

그러면 국민을 대의하는 국회와 국회의원의 경우는 어떨까? 국회와 국회의 각 기관은 국가기관에 포함되어 공공기록물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리고 공공기록물법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국회는 '국회기록물관리규칙'을 별도로 두고 있다. 이 규칙의 적용을 받는 국회 소속기관으로는 국회사무처, 국회도서관, 국회예산정책처, 국회입법조사처가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국민들의 삶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300명의 국회의원(실)은 공공기록물법과 국회기록물관리규칙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국민의 세금으로 지급되는 세비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고,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공무수행을 하는 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 기록물은 어떤 예외적인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결국 '공공기록물'이다.

즉 현재는 국회의원이 공식적으로 국회 소속기관에 제출하는 최소한의 기록을 제외하면 그보다 훨씬 많은 온갖 종류의 국회의원 의정활동기록들이 공공기록물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국회의원이 의정활동 간 생산되거나 제출한 회의록과 정책연구, 상임위원회 공식자료, 의원외교 등 최종적인 형태의 기록들을 제외하면 이 기록을 형성하기 위한 훨씬 더 많은 공공정보들, 즉 행정부에게 제출받은 자료들이나, 지역구 정치활동에 관련된 자료들 등 공공기록물법과 국회기록물관리규칙으로 관리되는 기록들보다 몇 배나 더 많은 공공기록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기록물들은 공통된 관리 법규 없이 국회의원 각자에게 공개와 비공개, 보존과 폐기 여부가 영구적으로 맡겨진 상태다.
 

제19대와 제20대 국회의원실 의정활동기록물 수집현황 국회기록보존소에 따르면 제19대와 제20대 의원실 중 국회기록보존소로 의정활동기록을 기증 이관한 의원실은 제19대에 20개 의원실, 제20대에 14개 의원실에 지나지 않는다. ⓒ 정보공개센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까지 수많은 의정활동기록들이 국회의원의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되거나 의원 본인과 보좌관 및 비서관들에 의해 사유화되는게 일반적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민의 알권리가 더 확대되는 것이 가로막히고 의회정치 발전을 지체시키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작용들은 자연스럽게 의정활동기록을 수집해 공개함으로 국민의 알권리와 의회정치 발전을 도모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국회기록보존소가, 체계적인 기록 이관이 아닌 의원들의 자율적인 '기록 기증'에 과도하게 의존하도록 만들고 있다.

국회의원 의정활동기록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2018년 현경대 전 의원(11대, 12대, 14대, 15대, 16대)과 이종찬 전 의원(11대, 12대, 13대, 14대)은 각각 자신들이 보유하던 의정활동기록물들을 국회기록보존소에 기증해 기증된 기록물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현경대 전 의원의 경우에는 1987년 개헌 당시 국회 헌법개정안기초소위 위원장을 맡아 30년이 넘게 보관하던 기록물 386점을 기증했다. 1987년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한 '헌법개정요강안 주요 쟁점 검토 보고' 문서, 여야 중진의원 8인 회담의 협상 내용을 반영한 중간보고 문서, 현경대 의원 자필 메모 등 당시 여당인 민정당의 헌법특별위원회 구성에서부터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기까지의 과정들이 세세하게 드러난 헌정사의 귀중한 사료다.
 

이종찬 전 의원(현 광복회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3년 운암 김성숙 학술심포지엄'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직 인수위 위원장, 국가정보원장 등을 지낸 이종찬 전 의원은 평생 보관해 왔던 의정활동 관련 자료 6500여 점을 국회도서관에 모두 기증했다. 여기에는 1985년 '학원안정법' 시안, 1986년 '국회 프락치 사건' 조사철, 1987년 '6·29 민주화 선언' 직전 노태우 대표에게 전달한 메모와 선언문 수기본 등 격동의 한국 현대사 주요사건들에 관련된 기록들과 지금까지 다른 사료들에서 발견된 적 없었던 비사(祕史)도 다수 포함하고 있었다.

이듬해인 2019년에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3김 중 한 명으로 현대사의 굵직한 정치가였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기록물 기증이 이루어졌다. 김 전 총리의 장녀 김예리 여사는 김 전 총리 사망 1주기를 맞아 국회도서관과 기증협약을 맺고 김 전 총리가 남긴 기록물 일체를 기증했다.

여기에는 김 전 총리 정치활동의 원동력이 되었던 옛 청구동 자택 서재에 보관된 책 약 7000여 권과 각종 기록물과 사진, 비디오 등 수천 점이 포함되었다. 김 전 총리가 보관하던 기록물 역시 지금까지 학계나 언론 등에 공개된 적이 없는 자료들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처럼 국회의원 의정활동기록물들은 그 자체로 당대의 역사이며 동시에 후대의 국민의 삶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보들이다. 이런 중요한 기록들이 앞의 사례들처럼 우연한 계기로 기증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국민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빛을 보지 못한채 소실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드디어 시작된 국회의원 의정활동기록 제도화 논의
 

의정활동기록 제도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개회사 중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 박주민 의원실

 
지난 15일 때마침 국회에서는 (재)바보의나눔 후원으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정보공개센터)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공동주최한 '국회의원 의정활동기록 제도화를 위한 국회토론회'가 개최되었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국회의원 의정활동기록들의 유형별 특징과 현재 보유 및 관리되거나 수집되지 않는 현황들을 분석했다. 서 대표는 의정활동기록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되어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의회정치를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인력과 자원이 척박한 기존 국회도서관 산하 국회기록보존소를 의정활동기록 전담 기관인 '국회기록관' 등으로 분리해 독립기구화"해서 인력과 자원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정활동기록 제도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발제 중인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 ⓒ 정보공개센터

 
또한 서 대표는 국회의원과 의원실 직원들이 체계적인 의정활동기록 관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행정부의 공공기록물법과 같이 의정활동기록의 개념과 범위 그리고 체계적인 관리 기준들의 법적 근거를 포함하는 '국회기록물법'의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토론에 참여한 김장환 국회기록보존소 기록연구관은 "국회의원실 보좌직원의 현실은 인수인계의 부재, 상당 부분 잦은 인원교체 등 기록의 중요성을 생각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특수한 업무환경에 놓여 있어, 기록관리 자체가 수행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며 "현재도 21대 국회의 종료 시점이 다가오고 있지만, 어느 의원실도 의원실 기록을 어떻게 정리하고, 이관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지 않다"고 일선 현장의 고충을 전했다.
 
" 국회기록보존소로 넘겨도 정말 괜찮아?" - A 의원실 보좌관 

김장환 연구관은 의원실 입장에서 "기록이 남겨짐으로써 갖게 되는 (정치적)위험요소 때문에 (의정활동기록)법제화에 반대할 것 같다"는 우려를 이야기 하기도 했다. 의원실에서 제도화에 동의하기 위해서는 "기록이 남겨지고, 기록보존소로 이관됨으로써 철저히 비밀이 보장되고, 기록보존소 역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도록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역시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의정활동기록 제도화 토론으로 참여한 이종호 오마이뉴스 데이터저널리즘 기자 ⓒ 정보공개센터

 
이종호 <오마이뉴스> 데이터저널리즘 기자는 국회와 국회의원실의 정보를 활용하고 감시하는 입장에서 "국회의원의 이해충돌을 감시하기 위해  피감기관에서 자료 목록 공개"가 중요하다며, "(행정부)피감기관에 따로 정보공개 청구하면 일부 공개가 가능할 수 있지만 반복적으로 큰 행정인력이 소요된다"라고 말했다. 의정활동기록 제도화의 필요성을 설명한 것이다.

또한 "의정활동기록의 제도화는 정치인 검증의 중요한 수단과 전환점이 될 수 있다"라며 "의정활동기록의 체계적인 관리 체계에 의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위해서 의원별 참여 정도를 지수화해서 의원평가나 공천 점수 등에 반영하면 효과적"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1948년 제헌 국회 이래로 얼마나 많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기록들이 소실되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이제라도 의회정치의 발전을 위해 이런 손실을 막아야 한다. 당장 얼마 남지 않은 21대 국회부터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정보공개센터는 이번 토론회를 시작으로 내년 5월 총선 이후에도 22대 국회에서도 의정활동기록 제도화 논의를 지속하고, 국회의원 및 국회 기관들과 협력해 국회기록물에 관련한 법률 등 입법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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