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1 10:56최종 업데이트 23.11.0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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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가 출현한 첫번째 영화관으로 지목되었던 파리 12구의 영화관 UGC Paris Bercy ⓒ JIM-Lindwood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바캉스를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오던 지난 8월 말, 프랑스인들은 반갑지 않은 소식을 미디어를 통해 접하게 됐다. '빈대의 출현!'

시작은 파리 시내 한 영화관이었다. 지난 8월 26일 한 관객이 영화관에 갔다가 빈대에 물렸다는 사실을 X(구 트위터)를 통해 전한 이후, 비슷한 증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언론의 취재 결과, 문제의 빈대 출현 영화관 리스트는 파리와 파리 인근 영화관 10여개로 속속 늘어났다. 2~3주가 지나자, 영화관뿐 아니라, 기차, 지하철, 학교까지 빈대의 서식지가 확산되었다는 보도가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했다.


뉴스는 계속 새로운 희생자와 증언들을 찾아냈고, 사람들이 모이면, 어김없이 빈대에 대한 걱정과 과거에 경험했던 끔찍한 기억들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런 대화는 늘 같은 결론으로 끝이 났다. "코로나가 끝나니까 이번엔 빈대냐?" 그것은 현실에 대한 푸념인 동시에 강박과 공포를 부추기는 언론의 태도에 대한 염증이기도 했다.

지난 5년간, 10개 중 1개의 프랑스 가정이 빈대의 출현을 경험했다는 식품환경노동 보건안전청(ANSES)의 통계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그것은 새로운 재앙의 출현을 공식화하는 문구처럼 전해졌다. 분명한 것은, 사회 전체가 순식간에 빈대를 둘러싼 새로운 걱정에 휘말렸다는 사실이다.

쀠네즈! (Punaise!)    
 

지난 10월 4일 프랑스 파리의 한 해충 퇴치 업체가 파리의 빈대 문제를 다룬 지역 신문 <르 파리지앵> 1면을 가게 문 앞에 붙여놓고 있는 모습. ⓒ EPA/연합뉴스

 
빈대를 가리키는 프랑스말인 쀠네즈는 일상에서 흔히 등장하는 표현이다. 우리말의 "젠장" 혹은 "헐!" 같은 단어에 해당하며, 강도 높지 않은 실망, 당황, 유감의 상황에서 사용하는 단어다. 쀠네즈가 일상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말이듯, 빈대는 아득한 옛날, 초가집이 있던 시절에만 있던 추억의 벌레는 아니다.  2019년 미국의 세포생물학 전문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빈대는 약 1억 1500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아왔던, 공룡만큼이나 오래된 지구촌의 오랜 터줏대감이다.

공룡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빈대는 오늘날까지 살아서 전 세계 신문의 헤드라인에 오르내리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이다. 강력한 화학 살충제 DDT의 등장으로 빈대는 1950년대 이후 한동안 대부분의 나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항공업계의 가격 인하가 배낭여행 문화의 확산으로 이어지며 여행자들 숙소에 주로 서식하는 '베드 버그' 라는 이름으로 다시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여행자들이 숙박업소 후기를 전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심심치 않게 피해 경험을 알리는 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문제는 이것이 일부 숙박업소뿐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 학교, 일반 가정까지 무차별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파리 올림픽을 불과 10개월 앞둔 상황에서 발생한 이 난감한 현실은 외신의 자극적인 보도로 이어지며 파리시를 비롯해, 프랑스 정부가 관계장관 회의를 개최하며 대책 마련에 나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왜 이런 현상이 갑자기 파리에서 나타났을까  

정부 당국은 먼저 그 원인 파악에 나섰다. 두 가지 핵심 원인은 갑자기 늘어난 관광객과 그 사이 더 강력해진 빈대다.

빈대가 출현한 것으로 처음 지목된 파리의 영화관 'UGC 베르시'는 유럽 전역으로 여행객을 실어 나르는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옆에 있다. 빈번한 빈대의 출몰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호텔업계도 늘어난 여행객들을 빈대 창궐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한다.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묶여 있던 여행자들의 발목이 일제히 풀리면서 올여름 항공편 가격을 예년의 2배로 끌어올릴 만큼 여행자들의 수는 급증했다. 프랑스 관광부의 발표에 따르면, 올여름 프랑스를 다녀간 외국 관광객의 수는 예년에 비해 29% 증가했고, 프랑스인들의 국내 여행도 10% 증가했다. 부동의 관광대국 1위인 프랑스는 3년간의 암흑기를 지난 후, 급증한 관광객의 수에 기쁨의 비명을 질렀던 한편, 골치 아픈 문제를 떠안게 된 셈이다.

두 번째로 지목되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빈대들이 화학 살충제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면서, 더 이상 기존의 살충제로 그들을 제거하기 힘들게 된 현실이다. 살충제의 남용은 저항력이 강한 빈대들만 생존하게 만들면서, 끈질긴 빈대들만 번성하도록 품종 개량을 부추겼던 것이다.  

최근 들어 의류 거래의 20%가 중고 시장에서 이뤄질 만큼, 중고 의류 구매에 대한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이 또한 빈대가 전파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부수적인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래서 해법은?
 

지난 10월 4일, 프랑스 파리의 한 지하철역으로 들어가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기차와 지하철을 포함한 다양한 대중 교통 수단에 빈대가 나타났다는 동영상이 SNS에 올라오고 있다. ⓒ EPA/연합뉴스

 
기존 살충제가 문제 해결책이 아닐 뿐 아니라, 더 문제를 키워온 원인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가 내놓은 빈대 퇴치 해법도 해충제보다는 '고온' 혹은 '저온'을 이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장 효과적으로 빈대를 제거할 수 있는 것은 고온 증기 청소기다. 빈대의 70%는 침대에, 23%는 소파나 의자에 주로 서식하므로, 120°C 이상의 고온 증기 청소기로 매트리스 등 침대 주변을 청소하면, 거기 서식하던 거의 모든 단계의 빈대(알에서 성충까지)를 제거할 수 있으며, 옷이나 이불은 60°C 이상에서 세탁하고, 고온에서 건조시키며, 작은 물건들은 냉동실에 72시간 이상 보관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빈대는 퇴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으로 해결이 안 될 경우, 전문 업체의 개입이 필요하고, 그때는 비용이 800~900유로에 달하기 때문에, 정부의 보조금 지원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프랑스 식품환경노동 보건안전청(ANSES)은 내놓고 있다.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게, 빈대는 부유층이나 빈곤층에 상관없이 나타날 수 있고, 불량한 위생 상태를 증명하는 것도 아니라고 정부 당국은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제거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는 빈부격차가 발생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모든 가정이 필요한 장비를 구비하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이 문제를 개인들에게만 맡겨 놓을 수 없는 근거로, 보건안전청은 프랑스에서 연간 약 2억 3천만 유로의 비용이 빈대를 퇴치하기 위해 쓰이고 있다는 통계를 제시하기도 했다.

2024년 올림픽 개최 당사자인 파리시는 이미 빈곤층에 한하여, 전문업체를 이용해서 빈대를 퇴치한 가정에는 비용을 보상해 주는 지원제도를 도입하였고, 정부 당국에도 이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다뤄서 파리시와 같은 수준의 지원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프랑스판 <허핑턴포스트>가 지난 10월 2일 진행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55%의 프랑스인들이 정부 차원에서의 대책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한 바 있으나, 정부는 대책 마련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은 보이면서도 아직은 부분적 대응에 그치고 있다.

정부가 미적거리고 있는 사이, 이러한 현상에 가장 민감한 피해를 입고 있는 호텔업계는 자체적인 대응책을 찾아 나섰다. 침대의 머리 부분에 빈대를 유인하는 페로몬을 방출하는 장치를 설치하고, 빈대가 포착되는 즉시 이메일을 통해 어느 호텔 몇 호실에서 빈대가 발견되었는지를 탐지해서 관리자에게 알려주는 'AI 기기'를 도입한 것이다. 이 기기는 이비스(Ibis)를 비롯한 일부 대형 체인 호텔에서 이미 사용되어 그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진화에 나선 정부
 

의회에서 총리를 대상으로 확산되는 빈대의 문제에 대하여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고 있는 LFI당의 마틸드 파노 의원 ⓒ france Info 보도 캡처

 
9월 한달간, 빈대를 둘러싸고 지치지 않고 울려대던 언론의 경보음은 10월에 들어서면서는 냉정한 현실 진단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이다.

10월 8일, 교육부는 '5만 9천개에 달하는 전국의 학교 수에 비해 빈대가 나타난 것으로 보고된 학교는 10개 미만'으로 극히 미미한 숫자임을 밝혔다. 빈대가 발견된 학교들에 대해선 전문 방역이 이뤄진 상태며, 현재로서는 빈대 예방을 위해 전체 학교에 방역을 실시하려는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프랑스의 대표적 학부모 단체 FCPE와 PEEP도 현재로서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특별히 문제 제기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그들이 진단한 현실 또한, 한 달간 언론이 떠들었던 것에 비해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교통부 장관 클레망 본(Clément Beaune)도 빈대와 관련해 SNS를 통해 확산되고 있는 과장된 뉴스에 대해 직접 경고했다. "최근 몇 주 동안 파리교통공사에 신고된 사례는 10건 정도였고, 그중 실제로 빈대가 입증된 사례는 0건이었다. 프랑스철도공사(SNCF)에도 최근 몇 주 동안 37건의 사례가 신고되었으나 확인 결과, 빈대가 발견된 사례는 전혀 없었다"라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신고가 있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사태를 감시하고 있으나, 확산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영화관에서 빈대가 나오는 것은 보도가 안 됐을 뿐, 전에도 종종 있었던 일이며, 그때마다 업체를 불러 방역해 왔다는 영화관 직원의 증언도 보도되었다.

해충제의 남용이 빈대의 저항력을 키웠고, 급증한 관광객의 수는 빈대가 창궐할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을 서서히 키워왔다. 이 모든 것은 차분히 체계적으로 대처해야 할 일이지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사태는 아니므로,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현실적 진단들이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문제를 방치해 온 정부의 무책임함을 추궁하는 정치권의 공세도 이어졌다. 특히, LFI 당의 마틸드 파노(Mathilde Panot)의원은 이미 2017년부터 이 문제에 국가가 개입해야 함을 역설해 온 인물이다. 빈대가 "더 이상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문제이며, 이렇게 계속 방치하다간, 대응할 능력이 없는 시민들의 건강에 심각한 피해가 갈 것이 우려된다"라고 정부의 개입을 촉구했다.   

빈대는 인간의 피를 빨아먹지만, 특별한 전염병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러나, 1주일간 몹시 가렵기 때문에 불면과 불안의 초래하고 장기간 문제가 지속될 경우 심각한 심리적 불안정을 초래할 수도 있다. 

호들갑스런 언론과 진화에 나선 정부, 그리고 현실 사이엔 크고 작은 온도 차가 존재한다. 프랑스인들은 그 사이에서 자신들이 취해야 할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빈대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한 서로의 팁을 전하면서도 파리지앵들은 전과 다름없이 일상을 이어갔다. 영화관, 카페, 레스토랑은 물론 지하철이나 철도에도 빈대 창궐의 여파로 인적이 줄어든 특별한 흔적은 찾기 힘들다.

이 기회에 정부 당국과 2024년 올림픽을 치러야 할 파리시가 공공 장소의 보건 위생에 좀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파리시가 좀 더 깨끗한 도시가 될 수 있다면, 파리시민들과 이 도시를 방문하는 모든 여행객들에게 큰 수확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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