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5 18:05최종 업데이트 23.09.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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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의 침로인 'ESG'가 거대한 전환을 만들고 있다. ESG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의 앞자를 딴 말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세계 시민의 분투를 대표하는 가치 담론이다. 삶에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사람과 조직을 만나 그들이 여는 미래를 탐방한다. [편집자말]

서울 중구 오장동 서울제일교회 옆 기후위기시계 ⓒ 서울제일교회

 
"기후위기시계는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토대로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C 오르기까지 남은 시간을 보여줍니다. 1.5°C는 우리가 기후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마지노선입니다."

서울 중구 오장동 서울제일교회 나무 담장에 붙은 커다란 전자시계에는 이 문구가 반복해서 나온다. 일반 시계와 달리 현재 시간을 확인하는 용도로 쓰이지 않는 '기후위기시계'다. 지난 15일 마주한 기후위기시계는 지구표면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오르기까지 5년 311일이 남았음을 알리고 있었다.


이곳에 기후위기시계를 내건 주체는 서울제일교회다. 한국 교회가 기후위기시계를 설치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제일교회는 6.25 한국전쟁 끝 무렵인 1953년 5월 17일에 창립되었다. 1970~80년대에 박형규 목사를 중심으로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2016년 6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정원진 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생태계 보전에 앞장서고 있다.[1]

올해로 70주년을 맞은 서울제일교회는 ▲ 생태환경 사회선교사 양성 ▲ 제로웨이스트샵 '나아지구' 개소 ▲ 기후위기시계 설치 등의 기념 사업을 벌였다. 정 목사는 "작은 규모의 교회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70주년을 의미 있게 기념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환경 보전 과제에 더욱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서울제일교회가 속한 한국기독교장로회에는 사회선교사 제도가 있다. 사회선교사는 일반 교회나 기독교 기관이 아닌 사회적 현안과 관련한 현장에서 일하는 목회자를 일컫는 말이다. 서울제일교회는 7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생태환경 사회선교사'를 뽑아 급여 형태의 지원금을 지급하며 전문가로 육성하고 있다. 
 

서울제일교회 70주년 사업으로 영업을 시작한 제로웨이스트샵 ‘나아지구’ ⓒ 서울제일교회

 
선발된 생태환경선교사가 일하는 곳 중 하나가 교회 내 제로웨이스트샵 '나아지구'다. 지난 5월 17일 서울제일교회 창립 70주년에 맞춰 교회 바로 옆에 이 가게를 냈다. 제로웨이스트샵은 불필요한 쓰레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플라스틱 대체품을 판매하고, 원하는 사람이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도록 대용량 제품을 비치해 두는 공간이다.

물품 구매 시에도 비닐봉지를 지급하지 않는다. 서울제일교회 교인으로부터 나눠 받은 종이 가방을 종종 재사용한다. '나아지구' 점장인 김요한 생태환경선교사는 "제로웨이스트샵을 이용할 때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낭비를 줄이기 위해 제로웨이스트샵을 찾을 '용기'와 대용량 제품 리필 소분 시의 빈 '용기'가 필요하다는 중의적 표현이다.

서울제일교회는 이에 앞서 지난해 4월 17일 부활절을 기점으로 교인이 이용하는 2층 복합공간에 책꽂이 2개 크기의 제로웨이스트샵을 만들었다. 대나무 칫솔, 천연 수세미 등 포장하지 않은 친환경 물품을 판매했다.

정 목사는 "이대 옆 봉원교회에서 제로웨이스트샵을 배웠다. 거기는 무인으로 운영하더라. 교회에서 일하는 교역자가 가끔 물량을 점검해 주기만 하면 된다. 어느 교회나 다 시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제일교회는 나아가 생태환경선교사를 통해 한국 교회에 제로웨이스트샵을 보급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서울제일교회의 환경보전 활동

서울제일교회가 70주년 기념사업으로 다양한 환경보전 활동을 시작한 일은 갑작스럽지 않다. 이미 지난 2018년에 한국기독교협의회(NCCK) 생명문화위원회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매해 환경주일인 6월 첫째 주 일요일에 발표하는 '녹색교회'에 선정된 바 있다. 그해 2월 교회 옥상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한 일이 계기였다.

서울제일교회는 일본 동경에 있는 니시카타마치교회와 자매 결연을 맺어 40여 년 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니시카타마치교회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반핵 운동에 앞장선 교회다.

2년에 한 번씩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정기 합동 수양회를 개최한다. 2016년 정원진 담임목사 청빙 직후엔 후쿠시마에 다녀왔다. 2011년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발한 원자력 발전소로부터 5km 정도까지 접근하여 그곳의 실상을 파악했다. 정 목사는 "사람들이 방사능복을 입고 돌아다니며 피폭된 흙을 파내고 모아뒀다가 다른 곳에 뿌리는 모습을 봤다. 어민들과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도 들었다"고 전했다.
 

2018년 2월 서울제일교회 옥상에 태양광발전소가 설치되었다. ⓒ 서울제일교회

   
합동 수양회 이후 니시카타마치교회 옥상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로부터 영감을 얻어 서울제일교회 교인들은 교회에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추진위원회가 자발적으로 조직되었고, 추진위원회에서 연구한 사항을 교회 당회에서 구체화한 뒤 설교를 통해 교인들을 설득했다.

2017년 8월 옥상에 20kW 용량의 태양광발전소를 짓기 시작하여 2018년 2월에 공사를 마쳤다. 이 태양광발전소는 연간 약 2만 3000kWh의 전력을 생산해 전량 판매한다. 수익금은 사회선교, 생태환경선교, 지역사회선교 등의 선교비로 사용한다.

태양광발전소를 만들고 운용하는 데 비용상의 큰 문제는 없었다. 정 목사는 "5년 정도 지나면 설치비를 100% 회수하고 이익이 남는 체제로 넘어간다는 계산이 나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제적 이득이 되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신규로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지 말라고 말만 하면서 전기 소비 생활을 바꾸지 않는다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서울제일교회가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기 위한 의견을 모을 때도 비용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정 목사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원자력 발전소의 대안이 될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건설적인 투자"라고 교인들을 설득했다.

2018년 녹색교회로 선정된 뒤로는 교회 내 일회용품 사용량을 줄여갔다. 일회용 종이컵 대신 스테인리스컵을 비치했고, 남은 음식을 싸갈 땐 비닐 위생팩 대신 다회용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화장실 종이 타월을 없앤 뒤 교인들이 손수건을 들고 다니도록 만들었으며, 예배실 전면에 전광판을 설치하여 행사용 현수막을 대체했다.

2~3년이 지난 뒤부터는 교회 밖의 실생활에서 변화를 이끌기 위해 교인들에게 '녹색 그리스도인'의 삶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2021년에는 ▲ 책 <그린 엑소더스> 일독하기 ▲ 365일 탄소금식 실천하기 ▲ '몽골 은총의 숲'에 나무 한 그루 이상 심기 ▲ 적어도 하나의 생태환경 운동단체 회원 가입하기를 실천 과제 삼아 전 교인이 필수로 이행하도록 권면했다. 생활 습관을 만든 것이다.

특히 환경단체 회원가입 과제와 관련해 정 목사는 "우리가 일회용품을 안 쓰고 대중교통을 안 탄다고 해도 전체 탄소 배출량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상쇄할 수 있다.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전환과 기업의 변화가 필요하다. 환경단체들이 그런 요구를 담당하고 있다.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지는 못하더라도 재정적 후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 반대 '우산 시위'

지난 2021년 4월 13일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겠다고 밝혔다.[2] 다핵종 제거 설비(ALPS)로 처리한 방사능 오염수가 과연 무해한지, 설비로는 정화할 수 없는 삼중수소를 바닷물에 방류하여 희석하면 정말 안전한지 등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3]

지난 5월 환경운동연합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 방류와 관련해 85.4%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4] 그러나 지난 8월 24일 오후 1시를 기점으로 일본은 방류를 시작했다.[5]

니시카타마치교회와의 합동 수양회로 후쿠시마에 방문한 경험이 있던 서울제일교회 교인들은 깊은 우려를 품게 됐다. 핵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제안문을 바탕으로 동참할 교회를 구했다. 한 달 만에 100개가 넘는 교회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들과 연합하여 '후쿠시마 방사능 핵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한국교회 연대'를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7월 2일에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후쿠시마 핵 오염수 투기 반대 기도회'를 개최했다. 더운 날 야외에서 열린 집회였지만 약 250명이 모였다. 정 목사는 "한 150명 정도가 올 줄 알고 순서지를 150장만 준비해 갔다. 그런데 250여 명이 모여 다들 놀랐다"며 "보통 기자회견이나 기도회를 열면 활동가만 참석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평신도들이 모였다. 긍정적인 신호로 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에 반대하는 전국 도보순례 마지막 날인 9월 7일 참가자들이 우산을 들고 서울역에서 일본 대사관 앞까지 걸어가고 있다. ⓒ 서울제일교회

  
기도회 이후 더욱 많은 사람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집회 방식을 고민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우산 시위다. 정 목사는 "덥다는 일기 예보가 있었다. 우산을 만들어 나눠 쓰면 양산 역할도 하고 시위가 더욱 커 보여 주목을 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8월 20일에는 250~300명 정도가 모였다. 실내에서 기도회를 연 뒤 핵 오염수 방류 반대 문구가 적힌 노란 우산을 들고 광화문에 갔다. 지방에 있는 교회에서도 우산을 주문해 릴레이 걷기 순례회에 활용했다.

9월 7일에는 전국에서 진행한 걷기 순례회를 마무리하기 위해 150여 명이 서울역에 모였다. 일본 대사관까지 도보 순례하는 길에서도 집회 참가자들은 노란 우산을 들었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한국 교회의 움직임에 있어 주요한 상징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정 목사는 "사회운동은 활동가들만 움직여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며 "대중이 실질적으로 자각을 하고 참여하도록 하는 대중운동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제일교회는 이외에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 1인 시위, 서명운동, 차량용 반대 스티커 부착 등의 운동에 참여했다.

기후위기시대, 교회의 역할은?

다른 환경단체가 이미 많은데 왜 교회가 나서야 하느냐는 질문에 정 목사는 "교회이기에 나서야 한다"고 답했다. 성서는 신이 세상을 만든 이야기를 담은 창세기로 시작한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표현할 때 가장 먼저 따르는 말 역시 '창조주'다. 창조 신앙이 기독교 신앙의 기본이라는 뜻이다. 정 목사는 "환경 운동은 곧 창조세계를 보전하기 위한 활동으로서 종교적으로 중요한 신앙 운동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교회가 환경운동에 동참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로 "개신교에 원죄가 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가 발생할 때 개신교 정신이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고, 실제로 막스 베버는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청교도가 자본주의 정신을 만들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베버에 따르면 당시 개신교인들은 주어진 직업으로 성공을 이루고 재산을 축적한 뒤 획득한 자본을 오로지 기업의 번영에 투자함으로써 현세에서 구원의 표시를 찾으려 했다.[6] 정 목사는 "산업화를 출발시킨 사상적 근거를 제공한 집단이므로 더욱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제일교회 정원진 목사 ⓒ 한채하

 
기후위기시대에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두고 "교회라서 유리한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어느 교회나 장소와 사람이 이미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할 때는 대개 수익 문제에 부딪힌다. 대부분의 고객이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20~30대 여성인데, 고객층이 한정적이라 가게 운영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는 공간이 있으니 세를 낼 필요가 없고 일할 수 있는 사람도 많다. 무엇보다 수익 창출에 연연하지 않고 신앙적 가치를 추구하며 환경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마지막으로는 교회가 "대중의 각성을 이끌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시민사회단체는 회원을 모집해 활동해야 하지만 교회에는 이미 교인이 모여 있다. 설교를 통해 환경 보전의 기반이 될 이론을 가르치고 실천 과제를 제시할 수 있다. 독서∙강연회∙토론회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 교인을 교육하는 일이 가능하다.

정 목사는 "한국 교회가 환경운동이 신앙운동의 하나라는 점을 주지시키며 중요한 선교 과제로 삼는다면 시민운동을 확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원래 우리의 하나님 나라는 땅에서 시작했고, 그 나라가 땅에 임하기를 힘쓰라는 게 예수의 가르침이었다.  

글: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한채하 기자(지속가능바람),이윤진 ESG연구소 부소장
덧붙이는 글 [1] 편집부(2022). [기후 위기 시대, 녹색교회를 만나다] 서울제일교회 신연식 서울제일교회 부목사. 새가정 754.- 1 p.89

[2] BBC NEWS 코리아(2021.04.13). 후쿠시마: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왜 논란인가?. https://www.bbc.com/korean/news-56672262

[3] 인천YWCA(2023.06.07). 세계 해양의 날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기자회견. http://ywcaic.or.kr/bbs/board.php?bo_table=b0402&wr_id=201

[4] 환경운동연합(2023.05.25). [보도자료]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대국민 인식조사 설문 결과 발표. http://kfem.or.kr/?p=231776

[5] 구유나(2023.08.24).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시작…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BBC NEWS 코리아.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y0gxvlkkdlo

[6] K 아알하임(1978). 개신교정신과 자본주의(막스 베버). 신학사상 23.- p.674-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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