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9.30 19:04최종 업데이트 21.09.3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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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본격청춘다큐 친절한 미분양> 오프닝 티저 영상의 한 장면. 신원을 드러내지 않은 청년들이 비어있는 지방 임대아파트 외벽에 밧줄을 걸고 올라가고 있다. ⓒ <친절한 미분양> 유튜브 영상 갈무리

 
정체불명의 청년들이 아파트 외벽에 줄을 매달고 힘겹게 기어오른다. 허공에 대롱대롱 흔들리는 두 발 사이로 눈과 얼음이 깔린 땅바닥이 까마득하다. 서편 하늘이 붉게 물든 석양녘, 이 수상한 청년들의 줄타기를 눈여겨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엉성한 등산용 밧줄 하나에 매달려 위태롭게 외벽을 타고 있는 젊은이들의 등 뒤로, 장기하가 부르는 <여긴 아무것도 없잖어>란 곡이 주제가처럼 깔린다.
 
죽을똥 살똥 왔는데 여긴 아무것도 없잖어
푸석한 모래밖에는 없잖어
풀은 한 포기도 없잖어
이건 뭐 완전히 속았잖어
되돌아갈 수도 없잖어
(장기하와 얼굴들, <아무것도 없잖어> 중에서)
 
대한민국의 주택 수가 가구 수를 초과해서 주택보급률 100%를 넘어선 지 오래인데, 왜 마음 편히 다리 뻗고 편히 쉴 수 있는 내 공간은 이 하늘 아래 없는 걸까?

지방에서 올라와 동시에 두세 개의 알바를 뛰어도 방세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고달픈 자취생 청년들이 2012년 겨울, 호기롭게 작당을 했다. 분양에 실패해서 텅 비어 있는 지방 소도시의 임대아파트들을 무작정 찾아가 현황을 취재하고, 주거문제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이들을 만나 집에 얽힌 애환을 인터뷰했다. 엉성한 동물탈을 쓰고 때론 코믹하게, 때론 진지하게 집 얘기를 풀어나가는 유튜브 동영상 <본격 청춘 다큐, 친절한 미분양> 시리즈는 그렇게 탄생했다.


동영상을 제작한 청년들은 당시 연세대에서 '민달팽이유니온'이란 교내 학생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던 학생들이었다. 이들은 곧 민달팽이유니온을 주거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청년 당사자들의 연대조직으로 발전시켰고 2014년에는 새로운 주거모델을 설계하고 실험하기 위한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달팽이집'이란 이름으로 커뮤니티형 쉐어하우스를 16곳에 지어 새로운 사회주택 모델을 선보이고, 청년주거문제를 지난 10년간 사회적 의제로 발전시켜 왔다.

그 주요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권지웅이다. 민달팽이유니온 창립멤버이자 위원장,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창립이사장, 서울시 청년명예부시장 등을 맡았고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서 청년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주거불평등 문제를 다뤄온 시민운동가로서, 제도정치권에 발을 디딘 청년정치인으로서, 그는 지금 새로운 외줄타기에 도전하는 중이다.

그가 꿈꾸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는 가능한 것일까? 트렌디한 구색 맞추기용으로 청년이 소비되곤 하는 정치판에서 그는 개혁을 위한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지난 14일 서울 성수동의 와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친절한 미분양'에서 '권지웅의 알권리즘'까지
 

9월 14일 서울 성수동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에서 만난 권지웅(좌)과 이진순(우) ⓒ 와글

  
- <친절한 미분양> 동영상을 만든 게 벌써 9년 전이에요. 어리숙하지만 기발한 캐릭터들이 여기저기 출몰하면서 주거문제를 다루는 게 마치 영화 <세 얼간이>를 보는 느낌이었어요(웃음). 어떻게 이런 동영상을 만들 생각을 했죠?

"민달팽이유니온이 그때는 교내 학생 세입자 모임 같은 거였는데 활동을 같이 하던 친구 하나가 여러 가지로 낙담을 하고 군대를 가겠다고 할 때였어요. 그냥 그렇게 보내고 싶진 않더라고요. 제가 여행 갈 생각을 하고 1년쯤 모아놓은 돈이 100만 원 정도 있었는데 그 돈으로 친구한테 여행을 떠나자고 했죠. 그냥 다니기는 아쉬우니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멀쩡한 빈집이 얼마나 많은지, 누구는 집이 없어서 허덕이는데 어딘가에는 아무도 살 사람이 없는 빈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모순인지 드러내는 여행을 해보면 어떨까? 그렇게 나름 결의를 하고 (웃음) 시작했어요."

- 전체 13화를 찍었는데 여러 곳을 다니면서 조사하고 인터뷰하느라 품이 많이 들었겠던데요.

"촬영을 위해서 목요일 밤쯤 출발해서 토요일이나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이었어요. 2박3일이나 3박4일. 근데 운전을 할 줄 아는 게 저뿐이어서 잠도 거의 못자고 신호등 앞에서 깜박 졸만큼 정말 빡센 일정이었어요. 낮에는 학교 다니고 알바하고 저녁에 다시 편집을 하고. 원래는 딱 2주만 찍으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1년 반짜리 프로젝트가 됐죠."

- 당시 일간지에 소개도 되었던데 반응이 좋았나요?

"<나는 꼼수다>가 막 유행할 때라 저희도 대박 한번 쳐보겠다고 했는데 (웃음) 그때는 유튜버란 용어도 없을 때였죠. 비어 있는 아파트를 취재하기 위해서 단지 내에 주차된 차를 막 세어봐요. 경비원한테 '1000세대짜리 아파트인데 700세대가 비어 있군요' 하면서 확인 인터뷰도 따고. 주변에선 재밌다는 반응들이었어요. '나도 껴줘라' '진짜 그렇게 했냐?'는 친구들이 많았죠."
 

<친절한 미분양>을 함께 만든 친구들과 2013년 기념사진 ⓒ 권지웅

 
- 유럽에서는 스쾃운동(Squatting)이라고 해서 비어 있는 건축물을 무단점거하고 거주하는 형태가 시민저항운동의 하나로 오랫동안 자리잡아 왔어요. 독일 메르켈 총리도 젊은 시절 스쾃을 한 적이 있죠. 우리에겐 그런 사례가 거의 없죠?

"스쾃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지역에선, 일정 시간 이상 어떤 공간을 점유한 사람은 함부로 퇴거시키지 못하도록 법으로 보호하고 있어요. 반면에 우리는 주거침입죄로 걸리죠. <친절한 미분양> 찍을 때도 빈 아파트를 찾아 들어가 내부를 찍기도 했는데 이게 우리 법규상으로 보면 현행범으로 바로 잡혀갈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탈을 쓰고 등장한 거예요. 몇 화를 올리고 난 후에 EBS에서 저희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 얼굴을 드러내야 하나 엄청 고민했어요. 결국 인터뷰에 응했는데, 아무 일 없이 지나갔죠(웃음)."

- 최근 유튜브 활동을 다시 재개하셨죠? 제목이 권지웅의 알권리즘? 무슨 뜻이에요?

"세상을 보는 알고리즘이랄까, 렌즈 같은 거죠. '알 권리'와 알고리즘을 합성해서, 저의 렌즈로 세상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뜻으로."

- 9년 전 영상에 비하면 <알권리즘>은 굉장히 반듯하고 바른 생활 청년 같은 느낌이에요. 댓글에도 보니까 '귀엽고 성실한 교회 오빠 같아요'란 의견이 달렸던데 (웃음) 요즘 유튜브는 자극적이고 적나라한 독설이 대세 아닌가요?

"전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충실히 대변하는 미디어가 다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시민들이 자기가 동조하는 콘텐츠를 통해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하는 것도 이해가 되고요.

그런데 한국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균형감 있게 공론장 역할을 하는 미디어가 너무 부족하잖아요. 제가 하는 것도 저의 렌즈를 통한 것이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이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균형감을 가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건 필요하지 않을까요."
 

권지웅은 올해 6월부터 <권지웅의 알권리즘>이란 제목으로 유튜브에 매주 1회씩 영상을 올리고 있다. <권지웅의 알권리즘> 첫 회 촬영 중. ⓒ 권지웅

  
- 요즘 정치는 균형감이 아니라 정파성과 진영논리를 더 강조합니다. 그게 고정지지층을 흡인하는 더 빠른 길이니까요. 지웅님도 그걸 아실 텐데, 그렇게는 안하겠단 건가요? 지웅님이 생각하는 정치는 뭐죠?

"정치가 시민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려고 한다면, 누군가를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정치 바깥에 있는 사람들한테 '정치가 내 거였구나. 내가 좀 써먹어도 되는 수단이구나' 느끼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 링 위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링 밖에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참여시키는 정치?

"네. 기성 정치인들이 주로 대변하는 집단은,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 주택 소유자, 혈연, 법률혼으로 이뤄진 4인가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비정형 노동자, 세입자, 1인 혹은 법률혼이 아닌 동거 가구가, 주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정당에 말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없거나 미약합니다.

저는 이 정치와 제도 밖에 있는 '울타리 밖 시민들'을 모두 포괄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더 넓게 새 울타리를 치고 싶습니다. 울타리 밖 시민의 비율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고, 젊은 시민일수록 울타리 밖에 놓일 가능성이 훨씬 커지고 있어요. 단번에 해결하진 못하더라도 서둘러야 합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대변되지 못한 시민들의 목소리가 사회를 해치는 쪽으로 작동될 수도 있습니다."

정의로운데 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았나요? 연세대 부총학생회장을 하고 위원장, 이사장, 서울시 명예부시장, 민주당 청년대변인, 가는 데마다 근사한 직함을 달고 살았어요. 하나같이 돈은 안 되는 자리였지만(웃음).

"저도 어쩌다 이런 경로를 밟아 오게 됐는지 잘 모르겠어요(웃음). 부산에서 나고 자랐는데 사회문제나 역사에 특별히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세상은 상식적으로 돌아간다고 막연히 믿고 살았고, 친구들이랑 어울려 축구하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였어요."

- 그러다가 연세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는데, 평범한 공대생이 어떻게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됐어요?

"처음에 대학 와서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 듣고 되게 놀랐어요. H.O.T 말고 그런 인디밴드가 있다는 것도 전 몰랐거든요. 와! 대단하다. 얘네들은 저런 가수도 알고... 그때 제 로망은 '박카스 국토대장정'을 가는 거였어요. 박카스에서 후원해서 대학생들 뽑아서 국토 종단하는... 근데 그거 신청했다가 떨어졌고요(웃음). 비슷한 시기에 한국대학생연합에서 하는 국토대장정이 있어서 친구랑 '야, 저거 해보자' 해서 같이 따라가게 됐지요. 그땐 한국대학생연합(전대협, 한총련을 잇는 학생운동단체)이 뭔지도 몰랐어요."

- 박카스 대장정 비슷한 프로그램이라 생각했군요(웃음).

"그랬죠(웃음). 임진각부터 부산까지 20일 가까이 걷는 여정이었는데 대구 근처 경산에서 코발트광산의 민간인 학살현장도 가보고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현장들을 둘러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사는 세상에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

- 박카스 대장정에 붙었으면 인생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텐데(웃음).

"맞아요(웃음)."
 

와글 사무실에서 권지웅 ⓒ 와글

 
- 그 일로 학생운동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선배들의 꼬임에 넘어가서 (웃음) 공대 학생회장을 하게 됐는데 당시 이공계열 등록금이 인문계랑 한 학기에 110만 원 차이가 났거든요. 근데 실제 실험실습비로 쓰이는 금액이 공개됐는데 그게 20만 원이더라고요. 그럼 나머지 90만 원은 어디로 간 거야? 전 그게 제대로 알려지면 바로잡힐 줄 알았어요. 학생총회도 하고 총장님 면담도 했는데 바뀌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게 저한테는 또 다른 충격이었죠. '정의롭다'고 해서,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해서 수용되는 게 아니고 이게 힘의 균형에 의해 결정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을 그때 처음 하게 된 것 같아요."

힘을 모아 대항하지 않으면 단순한 부조리도 바로잡히지 않는다는 걸 체험한 순간이었다. 권지웅은 학생운동에 더 깊이 몰두했지만 그가 정작 하고 싶었던 일은 학생운동의 전통적인 흐름과는 다른 것이었다.

"내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

- 학생운동이 이념지향적인 전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였는데 당시 청년주거문제 같은 생활상의 이슈를 들고 나온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당시에 농활이나 이런 것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계속 고립되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어요. 저는 '친구들이랑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어떤 일'을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당선되면 기숙사를 짓도록 하겠다, 서대문구청이든 서울시든 이야기해서 20대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보증금 지원 같은 걸 만들자고 요청하겠다, 그게 저희 팀의 공약이었어요. 당시로선 새로운 일이었는데 주변에선 그게 되겠냐고 냉소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2010년 5월 연세대에서 ‘집을 짓는 달팽이 캠페인’을 진행하던 모습. 가운데 달팽이 탈을 쓴 이가 권지웅 ⓒ 권지웅

 
- 낙담했겠군요. 

"아뇨. 그래도 즐거웠어요. 처음 기숙사 문제를 제기하고 몇 년 지나서, 우연히 옆에 앉은 초면의 복학생 친구랑 얘길 나누게 됐는데,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군대 가기 전에도 기숙사 짓겠다고 하더니, 군대 다녀왔는데 여전히 기숙사 짓자는 운동을 한다고. 그거 안될 것 같은데... 근데 그래도 고맙더라고."

- 뭐가 고마워요?

"월세로 학교 앞에 살고 있어서 부담이 많이 됐는데, 잘 안 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 내 얘길 대신 해주고 있구나' 싶어서 고마운 생각이 들더래요. 기숙사도 못 짓는 운동이었지만 이게 마냥 의미 없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결국 4년 후에 기숙사가 지어졌죠."

당장 가시적 성과가 눈 앞에 떨어지지 않더라도 내 삶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 채워져야 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당사자들이 있다는 건, 사람을 견디게 한다. 그 믿음과 연대감이 서로의 외로움과 무력감을 이겨낼 수 있게 한다는 걸 권지웅은 마음에 곱게 담아뒀다.

집 없는 사람들의 정치는 가능할까
 
저는 종부세 및 재산세 완화에 반대합니다.
지금 시점에 종부세, 재산세를 완화한다면
민주당은 기득권 정당이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산 인플레로 자산, 소득 격차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를 줄이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더욱 절실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소유권자의 공화국이 아니라
전체 시민의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라면
이 논의는 이상한 논의입니다.
(2021.5.26. 권지웅 페이스북에서)
 

권지웅은 대규모 택지개발보다 세입자가 모멸감을 느끼지 않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한 해법이라고 말한다. ⓒ 와글

  
권지웅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그가 낭독한 선언문의 제목은 <집 없는 사람들의 정치를 시작합니다>였다. 주택보급률은 100%를 넘어섰지만 자가보급률은 1980년부터 2015년까지 오히려 2%가 줄어든 사회, 대한민국 국민의 45%가 세입자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집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그는 약속했다.

- 입당하면서 발표했던 '집 없는 사람들의 정치'가 민주당 내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지웅님이 속한 정당의 정책이 지웅님의 개인적 소신과 반대로 갈 때 무력감을 느끼진 않나요?

"답답함을 느끼죠. 근데 이게 민주당만의 모습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사회는 '소유권자와 예비소유권자의 사회'라고 믿어요. 그게 사실인가요? 아니죠. '소유권자와 세입자의 사회'죠."

- 그러니까 세입자가 자기정체성을 '예비소유권자'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세입자가 아니라 언젠가 집을 소유하게 될 사람으로.

"맞아요. 예비소유권자라는 환상 때문에 세입자의 삶은 계속 정치와 제도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소외돼 왔어요. '소유권자와 예비소유권자'가 아니라 '소유해서 사는 사람과 빌려서 사는 사람의 사회'라고 인식을 할 때 해결의 실마리가 잡힌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야 세입자가 자신의 처지를 스스로 더 나아지도록 만들 수 있죠. 계속 세입자로 살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모멸감을 느끼면서 살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죠."

- 우리에게 집은 살아가는 곳이라기보다는 자산 증식의 보루로 인식돼왔어요. 집에 대한 열망은 이 사회에서 더 이상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안간힘 같은 건데, 소유가 아닌 거주의 행복이라는 게 가능할까요?

"그런 열망은 순수한 열망이라기보다는 불안으로 파생된 열망으로 보여요. '주택가격이 올랐으면 좋겠다' '나는 꼭 집을 사야겠다'고 하지만, 만약에 집을 사지 않고도 존엄하게 살 수 있다고 한다면 소유에 대한 열망이 지금처럼 강렬할까요? 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산 증식을 이유로 집을 사고 싶다는 의견은 10% 안팎에 불과해요. 나머지는 다양한 '모멸감'에 대한 이야기죠.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내가 내 집을 내 집답게 꾸미지 못한다', 누구든 더 큰 집에 살고 싶고 더 비싼 집에 살고 싶은 욕망은 가질 수 있죠. 하지만 최소한 내가 사는 곳이 어디든, 세입자로 살든 작은 집에 살든 그것 때문에 모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주거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로지 자신의 집값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현명함이 되어버린 사회,
나만 손해 보는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공동체 내에서 행해졌던 폭력과 배제의 울타리를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집을 가진 사람, 가지지 않은 사람 모두가
각자의 존엄을 되찾는 일입니다.
(2020.2.26. 권지웅 <집 없는 사람들의 정치를 시작합니다> 중에서)
 

2020년 7월 국회앞 임대차3법 도입 촉구 기자회견. 가운데 마이크 든 이가 권지웅. ⓒ 이희훈

  
이제 그는 맨손으로 아파트에 줄을 걸고 기어오르는 20대 초반이 아니다. 30대의 권지웅은 과거보다 훨씬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자세로, 그러나 여전히 쉽고 빠른 길보다는 모두가 함께 걸을 수 있는 탄탄한 길을 끈질기게 모색한다.

집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고, 계층세습의 열쇠가 되는 한국사회에서 그가 꿈꾸는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할 권리'는 어쩌면 아파트에 줄을 타고 올라가는 것 이상으로 무모한 도전인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도 까마득한 벽을 기꺼이, 즐겁게 기어오르는 중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진순씨는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으로, 와글 간행 <듣도 보도 못한 정치>, 인터뷰집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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