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변상욱 전 CBS 대기자
 변상욱 전 CBS 대기자
ⓒ 변상욱 제공

관련사진보기

 
"사실 저는 올해 들어서 장래 희망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장래 희망이 바로 여러분들과 같은 일을 직업 삼는 기자였거든요. 저의 꿈이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러분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신념을 뒤로 한 채, 가만히 있어도 죽을 만큼 힘든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애타게 기다리는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가장 먼저 특보를 입수해 내고 국민에게 알려주는 게 의무입니다. 하지만 그저 업적을 쌓아 공적을 올리기 위해서만 앞뒤 물불 가리지 않고 일에만 집중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며 정말 부끄럽고 경멸스럽고 마지막으로 안타까웠습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당시 단원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학생이 기자들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언론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기레기'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것도 이때다. 그 후 언론은 세월호 보도에 대해 반성한다고 했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한국언론은 달라졌을까?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한국언론을 짚어보기 위해 지난 11일 40년 넘게 한국 사회를 취재하는 변상욱 전 CBS 대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변 대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세월호 참사 때 드러난 언론의 민낯
 
2015년 4월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단체 공동주최로 '세월호 참사 1년, 기레기는 사라졌나' 토론회가 열린 모습. 왼쪽부터 김동훈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 정수영 성균관대 교수, 유가족 정혜숙(고 박성호군 어머니)씨.
 2015년 4월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단체 공동주최로 '세월호 참사 1년, 기레기는 사라졌나' 토론회가 열린 모습. 왼쪽부터 김동훈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 정수영 성균관대 교수, 유가족 정혜숙(고 박성호군 어머니)씨.
ⓒ 언론노조제공

관련사진보기

- 오는 16일이면 세월호 참사 10주기잖아요. 아마 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 전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사간이었잖아요. 한국 사회를 40년 취재해 온 기자로서 10주기 맞이하는 기분이 다를 것 같은데 어떠세요?

"세월호 사건은 한국 저널리즘에 있어서 엄청난 변화의 현장이었죠. 언론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추락하고 '기레기'라는 비난에 언론 스스로 항의나 변명을 꺼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한국 언론의 구조적인 문제가 뭔지 드러났고, 한국 언론과 언론인들이 가진 도덕적인 불감증 등까지 총체적으로 민낯을 보인 사건입니다. 10주기면 그 후 언론이 어떤 점에서 어느 만큼 반성하고 무엇을 바꾸려고 노력했는지 평가해야 하는 때인데, 10년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듯 해서 안타깝습니다."

- 왜 아무 소용 없었다고 생각하세요?

"세월호와 같은 대형 참사가 다시 터지면 우리 언론은 10년 전과 별다를 것도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크거든요. 오보와 왜곡 보도를 또 내놓게 되고, 막장으로 기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암담하죠. 세월호 이후 잠깐의 반성이 있기야 했지만 그 10년도 막장으로 가고 있는 한국 언론을 돌려세우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 세월호 참사를 지나고 언론들은 보도에 대해 반성한다고 했잖아요. 그건 아무 의미가 없었나요?

"제가 보기에 현장의 취재 기자들은 개선된 점들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데스크나 경영진을 비롯해 한국 언론의 구조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처절한 반성과 그 반성의 내용을 내면화하고 개선해야 할 점들이 강령과 가이드라인으로 나와야죠. 결국 반성은 분노한 국민에게 보여주기식 제스처에 불과했던 것이죠."

- 개선된 건 뭔가요?

"참사와 그 현장을 대할 때 더 신중해졌습니다. 생명과 안전, 피해자와 유가족을 대하는 태도와 시각도 조금은 개선되었고요. 그래서 이태원 참사 때 현장에서 커다란 대형 오보는 나오지 않았어요. 사고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을 통해서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접근하려는 태도도 나아졌습니다. 피해자들과 유가족에 대한 배려 없이 취재 보도 과정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도 줄었습니다. 유가족, 실종자 가족도 배려하면서 각각의 상황에 따라 더 신중하게 접근하려 애쓰는 걸 느꼈습니다. 신뢰 관계를 먼저 회복한 다음 접근하려는 노력도 보였습니다. 대형 참사를 보며 국가의 책임을 바로 추궁하고 들어가는 태도도 발전했습니다.

문제는 막상 국가 권력이 책임을 회피하고 축소하려고 하자 언론도 슬그머니 비판의 날카로움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추모 분위기에 대해서도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죠. 참사에 대한 언급과 이후 처리를 여야 정쟁으로 끌고 가려는 권력의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했습니다."   - 세월호 참사 때는 공영 방송이 정권에 장악되어 있어서 문제 있었는데 이태원 참사 때는 그나마 그런 건 없지 않았나요?

"세월호 참사 때도 이태원 참사 때도 보수 정권하에서 언론이 눈치를 보던 건 마찬가지죠. 다만 공영방송을 중심으로 살핀다면 이태원 참사 때는 이전 문재인 정권 때 구축된 공영방송 체제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신문과 종편 등에서 문제는 더 많았죠. 용산구청장, 행안부 장관,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으로 책임추궁의 방향이 틀어지자 정치권이 가로막고 언론도 호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기자 쪽이 아니라 언론의 구조적 취약과 경영진, 간부들의 문제가 컸다고 봅니다."

- 그럼, 경영진이 눈치를 본 건가요?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후 유가족들의 요구나 삼보일배 등도 외면당하기 시작했고 책임자 처벌에 대한 언론의 목소리도 잦아들었습니다. 기자들이 취재 지시가 있다면 기사를 얼마든지 쏟아낼 만한 이슈들이고 세월호 때의 경험도 축적되어 있는데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삼보일배 현장도 미디어몽구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는 등 1인 미디어의 노력만 돋보였습니다."

- 그럼, 세월호 때 언론의 문제가 드러난 건 정권의 방송 장악 때문만은 아닌 건가요?

"세월호 보도가 왜곡된 건 정권의 방송 장악에 의한 바가 크고 대형 오보나 부실한 보도는 언론보도 시스템 등 구조와 관행 때문이라고 봅니다.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게 외압 전화를 건 것이 대표적 사례죠. '나라가 어려운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렇게 그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는 게 맞습니까? (...)극적으로 좀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과장하지 말고'라고 했죠, 이게 외압이지 부탁이겠습니까? 물론 법적 처벌을 받았습니다.

KBS 뉴스에서 '투입된 경비함정만 81척, 헬기 15대가 동원됐고, 200명에 가까운 구조인력 등 육·해·공이 총동원돼 하늘과 바다에서 입체적 구조 작업을 벌였다'라고 했지만, 실제 투입된 수중 수색 인원은 16명이었습니다. 이것은 언론이 정부 홍보성 물타기용 발표를 확인 없이 받아쓰는 그릇된 보도 관행에 의한 것이죠.

속보 경쟁 때문이었다고 적당히 변명하지만 대형 참사 현장에서는 그런 속보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거죠. 그때는 그런 인식조차 언론에 없던 겁니다. 일부 언론에서 사망자가 184명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공식 발표는 181명일 때죠. 그런데 취재 지시는 184명을 어떻게든 확인해 빨리 그 숫자를 쫓아가라는 거였습니다. 어차피 사망자는 계속 늘어나서 184명에 이른 건 12시간 지나서입니다. 현장 기자가 공식 발표 놔두고 사망자 숫자 소문을 12시간 추적하는 게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때 바닷속엔 백 명 넘게 잠겨 있는데 말입니다."

세월호 이후, '재난 보도 준칙'을 넘어서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지난 3월 14일 인천시청 앞에서 세월호 유족과 시민들이 진실·책임·생명·안전을 위한 전국시민행진 인천지역 기자회견을 한 뒤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세월호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지난 3월 14일 인천시청 앞에서 세월호 유족과 시민들이 진실·책임·생명·안전을 위한 전국시민행진 인천지역 기자회견을 한 뒤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 세월호 참사 후 재난 보도 준칙이 제정되었는데 의미가 있었을까요?

"15개 언론단체가 모여서 재난 보도 준칙을 만들었어요. 이후 참사 현장이나 재난 현장에서 포토 라인이 신속하게 설정이 되고 잘 지켜졌다고 평가받습니다. 기자들이 몰려가 현장을 훼손한다거나 유가족들한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는 태도도 나아졌습니다. 특히 사망자의 신원을 노출하거나 인양된 시신 등 또는 수습된 시신 등을 노출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도 진전이죠. 무엇보다 재난과 참사 현장에서 취재 보도에 임하는 자세가 피해자 위주로 전환된 것이 나름의 성과입니다.

그러나 기자는 취재 보도 준칙을 지키고 싶어도 취재 지시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속보의 압박이나 특정 방향으로 기사화하라는 불합리한 지시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는 기자가 준칙을 지키기 어려워집니다. 과연 데스크가 참사 현장을 취재하는 데 있어 재난 보도 준칙 철저히 지키라고 신신당부하며 내보낼까요? 재난 보도 준칙이 잘 안 지켜진 현장은 여럿 계속됐습니다. 전남 장성에서 요양병원의 방화 사건, 판교 콘서트장 환풍구 붕괴 사고, 전남 담양 펜션 화재, 강화도 캠핑장 화재 등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을 뿐 취재 보도 준칙의 준수가 미흡하다는 지적들은 계속되었습니다."

- 재난 보도 준칙에 대한 교육은 되는 건가요?
"각 언론사 상황을 다 살펴보지 못하니 나중에 설문조사라도 해봤으면 합니다. 언론사에 입사해 수습 교육을 받을 때 한 번씩 교육 받겠죠. 그 이후는 취재 나가기 전에 읽어 보고 신중히 잘 하라고 할 듯합니다. 지속적인 교육은 없는 듯합니다. 중요한 건 준칙과 윤리강령이 저널리스트들의 깊이 새겨져 당연하게 내면에서 우러나와야 하는데 '이거 잘못하면 욕 먹어 조심해'라고 해선 안 됩니다. 그걸 넘어서야죠."

- 그게 문제겠네요?

"그렇습니다. 진정성 있는 지속적인 교육과 내면화가 중요합니다. 세월호 이후 열린 토론회에서 NHK 사례가 발표된 적 있습니다. 방송이 모두 끝나고 자정이나 새벽에 뉴스룸과 스튜디오에서 실제상황으로 연습을 한다는 겁니다. 자료 동영상, 이미지의 사용, 임무 숙지, 심지어 앵커의 목소리 톤까지 재해방송에 적절한지를 논의한다는 거였습니다. 그런 태도로 임해야죠.

두 번째는 매뉴얼을 계속 업그레이드시켜야 합니다. 재난과 참사 상황은 늘 다르니까요. 이태원과 세월호의 취재 보도 준칙이 똑같을 수 없습니다. 똑같다면 그건 구체적인 사항을 넣지 않고 포괄적이고 추상적으로 준칙을 만들어 둔 겁니다. 취재 매뉴얼도 업그레이드된 준칙에 따라 구체적으로 작성돼 여러 가지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 세월호 당시 음모론도 많았잖아요.

"다른 언론사가 보도 안 한 내용을 찾자니 음모론에 솔깃할 수도 있고 더 자극적인 걸 찾다 보면 음모론 옮겨 쓰는 경우도 생기죠. 또는 유가족들에게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다 보면 가장 과격한 요구나 주장에 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 데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합니다. 가능한 과학적 검증을 확인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다양하게 들은 뒤 판단해야 합니다."

- 그러면 앞으로 과제는 뭘까요?

"속보 지상주의로 오보를 낳으면 안 된다는 건 분명합니다. 이걸 지키려면 데스크가 과도하게 요구하거나 현장에서 특종에 욕심을 내는 것을 자제해야 합니다. 최소한 대형 참사 현장에서는 자제하라는 거죠. 그다음 정부의 발표는 일단 공기관의 공식적인 기록이니 존중은 하는데 책임을 면피·축소하거나 프레임 바꾸려는 의도가 담겼는지는 언론이 감시하고 수상하면 그것 자체도 비판의 대상으로 취재해야 합니다. 대표적인 게 세월호 참사 때 '구원파'로 프레임 바꿔 구원파 관계자를 체포하고 압수수색 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것처럼 시선을 돌린 걸 언론이 맹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청률, 클릭 수를 좇아 무리한 비인권적인 취재를 해서도 안 됩니다."
 

태그:#변상욱, #세월호, #한국언론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