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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구절이다.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엄마의 소중함을 느낀 막내딸이 언니에게 하는 말이다. 나는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 딸처럼, 엄마를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함께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막내딸의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그렇다' 대답할 자신은 없다.

나는 엄마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더듬어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엄마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아는 것이라곤 그저 집에서 보이는 '엄마'의 모습뿐이다. 나는 엄마의 다른 모습들도 궁금해졌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엄마'가 궁금했다.

때마침 방학을 맞이한 내게 엄마가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 회사 와서 며칠만 도와줘."

엄마의 직업은 건설현장에 위치한 함바식당의 점장이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는 식당의 수익이 맞지 않아 주방의 직원 한 명을 해고했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가 그 직원의 빈자리를 채운다는 얘길 들었는데, 그게 많이 힘들다고 했다.

엄마 회사에 같이 출근하기로 한 날, 나는 끔뻑끔뻑 겨우 일어났다. 엄마는 회사에 가기 위해 오전 5시에 집에서 나가기 때문에, 4시쯤에는 일어나야 한다. 나는 비몽사몽 엄마를 따라 나섰다. 밖은 여전히 어둑어둑했고, 무섭기까지 했지만 엄마는 익숙하게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새벽부터 쓸고 닦고 정리하고, 엄마는 매일 했을 일들...

엄마가 일하는 책상과 매점
 엄마가 일하는 책상과 매점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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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회사는 인천 청라지구에 위치해 있다. 경기도 시흥에 있는 집에서 엄마의 회사까지는 고속도로로 40분 정도 소요된다. 엄마와 나는 5시 40분쯤에 회사에 도착했고, 50분이 되자 건설현장의 노동자들이 아침밥을 먹으러 왔다. 함바식당의 주방장 이모가 만든 반찬을 내놓자 엄마는 노동자들이 먹기 편하게 반찬들을 정리해 놓았다.

약 150명의 노동자들이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니, 별 일 하고 있지 않은 나도 정신이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은 엄마 책상 옆에 작게 위치한 매점을 지키는 일이었는데, 몇 가지 음료수와 빵 가격이 헷갈려 엄마에게 자꾸 물어봐야 했다.

아침 배식시간이 끝나자, 엄마는 더욱 바빠졌다. 노동자들이 아침을 먹고 난 식탁을 닦아야 하고, 설거지 한 식판과 숟가락, 젓가락을 정리해야 했다. 나는 엄마가 식탁을 닦을 동안 식탁 의자들을 정리했다. 식탁을 정리하고 나서는 식판을 닦았다. 엄마와 나는 150개가 넘는 식판을 닦았는데, 엄마가 나의 속도 차이는 무척 컸다. 엄마가 식판 4개를 닦으면, 나는 겨우 1개 정도 닦을 수 있었다.

이렇게 다 정리하고 나니, 오전 8시였다. 8시부터는 한가했다. 노동자들도 다 건설현장으로 일하러 가고, 식당도 조용했다. 이때부터 점심시간 때까지 약 3시간 동안은 엄마의 자유시간이다. 나는 엄마 책상 옆에 의자 하나 가져다놓고 앉아 엄마와 자유 시간을 보냈다. 이 시간 동안 엄마와 나는 매점에 오는 노동자들이 건네는 말에 웃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함께 기사를 보기도 했다.

달콤했던 3시간이 끝나고, 가장 바쁘다는 점심 배식시간이 왔다. 11시부터 노동자들이 점심을 먹으러 오기 시작했다. 그 날 메뉴는 미역냉국이었는데, 엄마도 바쁘고 주방 이모들도 바빠 내가 냉국을 담당했다. 사실 국을 그릇에 담아주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힘들어서 놀랐다.

엄마나 주방 이모들은 미역과 국물의 비율을 잘 맞춰서 담아주던데, 나는 그게 잘 안되서 애먹었다. 어느 그릇에는 미역만 너무 많았고, 어느 그릇에는 미역을 찾아보기 힘들게 국물만 있었다. 국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잘 담아지지 않아서 고생했다. 그래도 잘 담으려 노력한 결과 미역과 국물의 비율을 조금은 맞출 수 있었다.

그 날 점심을 먹으러 온 노동자들은 약 230명. 내가 자리에 서서 국을 담을 동안, 엄마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처럼 이리저리 오가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멀티플레이 중이었다. 오가는 노동자들을 체크하고, 배식 중인 반찬들도 체크하고, 주방 상태도 체크하고, 많은 일들을 혼자 해내는 중이었다.

아프다는 엄마한테 무심했던 나... 원망스러웠습니다

점심시간. 나는 서서 국을 담았다.
 점심시간. 나는 서서 국을 담았다.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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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동안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밥을 먹고 나가고, 엄마와 나에게 남겨진 건 쌓인 식판과 바닥에 떨어진 음식물 찌꺼기들이었다. 아침처럼 엄마는 식탁을 닦고 나는 의자를 정리했다. 그리고 엄마와 나는 각각 밀걸레와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내가 식당 바닥을 빗자루로 쓸면, 엄마가 밀걸레로 닦기로 했다. 식당이 별로 크지 않아,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정말 큰 오산이었다. 식당의 3분의 1도 쓸지 못했는데 손목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음식물 찌꺼기와 노동자들의 신발에 묻어있던 모래들이 가득했다.

엄마와 나는 쓸고 닦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몇 개월 전부터 내게 종종 손목이 아프다고 했었는데, 그 때마다 나는 "병원 가봐" 하는 무심한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데 내가 식당을 쓸어보니, 엄마가 왜 그토록 손목이 아프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고작 쓸기만 했는데도 손목이 아려왔는데, 매일을 쓸고 닦는 엄마의 손목은 얼마나 아팠을까. 무심하게 대답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식당을 쓸고 닦고, 설거지한 식판도 닦고, 숟가락과 젓가락도 정리했다. 다 정리한 후에는 엄마와 함께 문서작업을 했다. 엄마가 매달 하는 월매출 정산이었는데, 엄마가 수량이나 금액을 불러주면, 내가 얼른 입력하는 작업을 했다.

문서작업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의 퇴근시간이 왔다. 엄마는 식당에서 꼬박 12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엄마와 나는 땀에 절고, 공사 현장에서 날아오는 먼지와 모래로 피부는 빨개졌다. 엄마와 같이 돌아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나는 참 힘든 하루였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엄마를 따라가 도와준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림자처럼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게 전부였다. 모르는 게 많고, 처음으로 가본 공사 현장이라 우왕좌왕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음의 짐이 더해졌다. 내가 보지 못했던 엄마의 생활들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아서 더 그랬다. 먼지 많고 어지러운 공간 속에서 홍길동처럼 힘들게 일하는 엄마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엄마와 '엄마의 하루'를 같이 보내고 나서야 엄마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엄마에게 무심했는지, 그리고 무심한 내게 엄마가 가진 서운함은 얼마나 컸을지.

전부터 엄마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다녀오셨어요"라는 인사를 듣고 싶어했다. 딸들의 반가운 인사로 하루의 피곤함을 덜어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어물쩍 넘어간 적도 많고, 내 할 일 바쁘다는 핑계로 인사를 건너뛴 적도 있었다. 엄마가 서운해 할 때면, "별 거 아닌데"라고 되레 발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크게 외쳐야겠다.

"엄마, 다녀오셨어요!"

덧붙이는 글 | 김은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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