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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열렸던 사진 에세이전에서 한영준씨
 전주에서 열렸던 사진 에세이전에서 한영준씨
ⓒ 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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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젊음의 거리인 홍대에서 진짜 '젊음'을 만났다. 바로 '국제꽃거지'로 불리는 공정여행가 한영준씨다. 올해 28살인 한영준씨는 지난 3년 동안 공정여행가로 세계 일주를 했다. 그는 세계 일주 과정에서
한 사이트에 여행 글을 쓰면서 유명해졌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별명인 '국제꽃거지'가 뜨기도 한다.

그와의 만남은 그가 현재 사진 에세이전을 하고 있는 홍대의 한 카페에서 이루어졌다. '희망을 여행합니다. 간지나게'라는 주제의 그의 사진 에세이전은 지난 6개월 동안의 여행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진전에는 4만 원 들고 유럽 88일 여행한 일, 스리랑카 현지 가족에게 집 한 채 지어서 선물한 일, 스리랑카 현지인들에게 농장 5개 선물한 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근처에 도서관을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일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담겨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기자를 '들었다 놨다' 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어요?'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아직 모르겠어요? 잘 생겼잖아요'라는 대답으로 당황하게 했고, '사진전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는 '간지나니까요'라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자칫하면 얄밉고 재수 없을 법한 대답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얄밉거나 재수 없지는 않았다.

그가 '얄밉거나 재수 없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신감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진짜 청춘답게',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재미있게 살아가는 멋진 사람이었다. 그는 지금 하고 있는 모든 봉사활동들도 "재미가 없어지면 언제든 그만둘 것"이라고 말할 만큼 삶의 모토가 분명해보였다. 다음은 한영준씨와의 일문일답이다.

"현지인들에게 도움주는 공정여행... '거지' 별명 이유가 있죠"

- 자기소개를 한다면?
"많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이에요. 현재는 공정여행가, 사진 에세이 작가예요."

- 한영준씨가 하는 공정여행이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여행 중 내가 쓰는 돈이 현지인에게 이르게 되는 것이죠. 가령 인도를 간다면, 스타벅스를 가는 게 아니라 길거리에 파는 코코넛을 먹는다든가 하는 거죠. 그 외에는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관계 중심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어요."

- 공정여행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처음에는 남들처럼 세계 일주를 시작했어요. 좋은 것들 보고, 좋은 곳에 가서 사진 찍고 그랬는데 아시아 여행하면서 여행지의 불편한 모습을 보게 된 거예요. 가령, 그곳은 분명 관광지이고, 관광객들이 많고, 산업이 많이 발달해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방치되어 있는 모습들을 본 거예요. 왜 그렇게 됐는지 의문을 갖게 됐고, 알아본 결과 소비구조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현지의 큰 손들이나 외국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고, 그 결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 심화된 상태였어요. 그래서 현지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공정여행을 시작하게 됐죠."

- 대표적 별명이 '국제꽃거지'인데, 이 별명은 어떻게 생기게 된 건가요?
"원래는 친구들이 '국제거지'라고 많이 불렀어요. 여행을 하면서 친구들한테 신세를 많이 졌거든요. 또, 여행할 때 현지 사정을 알려면 게스트 하우스보다는 현지인들의 가정과 함께 생활을 하는 게 더 좋잖아요. 그래서 현지인들 가정에 빌붙어 생활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거지'라는 타이틀이 붙게 됐죠. 그런데 사실상 진짜 거지는 아니었어요. 기고해서 받은 원고료 등 수익이 있었거든요. 근데 올해 1월부터는 진짜 거지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거지라고 하면서도 진짜 구걸을 해본 적은 거의 없었거든요. 제 수익들은 기부를 하고, 필요한 돈은 구걸했어요. 친구들에게 '방 구할 돈이 필요하니 돈 좀 달라' 혹은 '나 생활비가 필요하다, 선착순으로 얼마씩 받는다'라고 말해서 돈을 받은 적도 있고, 실제로 사람들 만나서 구걸을 하기도 했어요."

- 올해부턴 진짜 '거지생활'을 하셨네요. (웃음) 세계여행을 3년 하셨는데, 부모님은 걱정 안하시나요?
"처음에는 걱정하셨죠. '어떻게 지낼까'하는 걱정이요. 그렇지만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제가 돈 벌어서 가는 거였기 때문에 딱히 반대는 하지 않으셨어요. 또, 이렇게 여행하고 다녀도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책임감을 지워주려 하시지 않으시고요. 부모님을 잘 만났죠."

베니스에서 프리허그하는 한영준씨
 베니스에서 프리허그하는 한영준씨
ⓒ 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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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한영준씨에게 많이 하는 질문일 것 같은데, 혹시 돈이 많아서 세계여행을 하시는 거 아닌가요?
"물론 세계여행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죠. 그렇지만 젊잖아요. 또 얼굴 반반하고, 몸짱이고, 어디서도 일할 수 있으니까요. (웃음) 돈이 필요하면 현지에서 일하면 되니까요. 그래서 여행하는 데 크게 어렵지 않아요. 다음 달에도 캐나다 출국 예정인데, 돈 한 푼도 없어요. 사진 에세이전 하려고 카메라 렌즈도 팔았어요.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죠."

- 카메라 렌즈까지 파셨어요?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전혀 도움을 안주세요?
"네. 이번에 한국 왔을 때 15만 원 주신 게 전부예요. 15만 원도 처음 주신 거예요."

- 한영준씨 여행 에피소드 중에 '4만 원으로 유럽여행'이 있던데, 정말 4만 원으로 유럽여행이 가능한가요?
"무전여행이죠. 이동 시에는 히치하이킹을 이용했고요. 숙식 해결은 대부분 카우치서핑이라는 사이트를 이용했어요. 카우치서핑은 전 세계 여행자들이 서로 잠자리를 제공하고 제공받는 사이트예요. 그걸 통해서 현지 사람들 집에 가서 잠을 잘 수 있었어요. 이외에도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하기도 하고, 다른 어플들을 이용해서 현지인들과 접촉하는 편이에요. '나 ○○에 있다, 나 재워줄 수 있겠니?' 뭐 이런 식으로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현지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었어요. 가끔은 친구들이 비행기 티켓을 사주기도 했어요."

- 현지 친구들이 티켓을요? 왜요?
"아직 모르겠어요? (웃음) 잘 생겼잖아요."

- 현지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시나보네요. 그 친구들은 어떻게 사귀셨어요?
"유럽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아시아 여행을 하면서 만났어요. 호주나 태국 등에서 만나서 관계를 형성한 친구들이에요."

- 영어는 잘하세요?
"영어 잘 못해요. 그래도 이제는 앞에 여자 한 명 있으면 꼬실 수 있는 정도는 해요.(웃음) 근데 딱히 책을 보면서 공부를 한다든가, 학원을 다닌다든가 하지는 않았어요. 토익 시험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요."

- 여행 중에 현지 친구들을 잘 사귀시는 것 같은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
"저도 처음에는 잘 못했죠. 근데 두려워하면 안 돼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영어가 부족해서, 내가 사람들과 어떻게 친해질까'라고 두려워하잖아요. 근데 사람이 마음과 마음이 통하다보면 의사소통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여행 다니다보면, 영어로도 소통이 불가능한 제3세계 같은 곳도 가게 되는데 그 곳 현지인들은 영어도 못하고 그래서 의사소통도 쉽지 않지만, 저도 그 사람들도 서로 진심으로 대한다면 통할 수 있거든요."

- 그렇군요. 그럼 결국 4만 원으로 유럽 88일 여행한 것은 현지 친구들의 도움이 컸네요?
"네. 그렇죠. 4만 원으로 유럽여행 뿐만 아니라 여행 중에 250만 원을 벌어서, 스리랑카로 갔죠. 그 돈으로 스리랑카의 한 가족에게 집을 지어줬고요."

- 오히려 돈을 벌었다고요? 어떻게요?
"원고료요. 라디오 사연을 쓰거나, 글을 연재하는 등의 방법들로 돈을 벌었죠."

"스리랑카 가족들에게 집 지어준 뒤 일부러 연락 안 해요"

스리랑카에서 현지 가족에게 집 선물했을 때 공사하는 한영준씨 모습
 스리랑카에서 현지 가족에게 집 선물했을 때 공사하는 한영준씨 모습
ⓒ 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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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하시네요. 스리랑카 가족들에게 집을 지어줬다는 게 인상적인데, 그 가족들과는 연락하시나요?
"아뇨. 그 가족들과는 연락하지 않아요. 연락하다보면 그 사람들이 저를 신격화하려고 해서요. 그럼 간지 안 나잖아요. 불편하기도 하고요. 그냥 집 지어주고, 가구도 넣고, 필요한 물품들도 다 구입 해주고 나서 빠이빠이 했어요. 대신 집 짓는 데 도와준 사람을 통해서 가끔 소식 들어요."

- 대부분의 여행을 혼자 하셨던데, 혼자 다니실 때 무섭거나 아찔했던 적은 없었어요?
"있었죠. 인신매매 당할 뻔했었던 적도 있었고, 강도도 2번 정도 당할 뻔했어요."

- 어떻게 대처하셨어요?
"즉각적인 대처를 하는 거죠. 가령, 인도에서 사람들이 칼을 들고 쫓아오면, 저도 같이 큰소리 치고, 옷도 벗으면서 강한 척하면서 싸운 적도 있었고요. 그래도 칼부림은 없었어요. 저도 도망갔고, 그 사람들도 쫓아오지 않았기 때문에.(웃음) 호주에서는 밤에 사람들이 제 물건을 뺏으려고 저를 바다에 던져버렸던 적도 있었어요. 그땐 진짜 아찔했는데, 헤엄쳐서 나왔죠."

- 정말 아찔하네요. 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 에피소드는 있으신가요?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꼽기가 힘드네요. 일단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제가 스리랑카의 한 가족에게 필요했던 집을 선물한 일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외에도 여행하면서 만났던 아이들과의 추억들도 많이 기억에 남고요."

-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집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농장을 선물하시기도 했는데 이 일들을 한영준씨 본인의 수익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후원금을 받아서 진행하셨더라고요. 후원금은 누구에게 받으시고, 어떻게 쓰나요?
"후원금은 온라인·오프라인에서 후원해달라고 말해서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죠. 후원금은 열 명의 만 원 후원자, 백 명의 삼천 원 후원자, 천네 명의 백 원 후원자들에게 받아요. 그들의 후원금은 빈민 돕기, 농장 선물, 가족사진 인화, 아이들과 소풍 등에 쓰여요. 이런 사용내역들은 후원자들에게 정기메일을 보냄으로써 알려주고요. 외의 제 여행경비, 즉 제가 먹고, 자고, 이동하는 모든 비용은 제가 충당해요."

사진 에세이전 팜플랫
 사진 에세이전 팜플랫
ⓒ 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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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여행 기록을 한국에서 사진전을 통해 보여준다고 들었어요. 사진전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서요. 저는 제가 하고 있는 '공정여행'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정여행을 알리고 싶고, 그 방법 중 하나로 사진전을 하는 거예요. 또, 간지나잖아요. (웃음)"

- 그래서 사진전 주제가 '희망을 여행합니다. 간지나게'인가요?
"네. 저는 우선 뭘 하든 '간지나게' 하고 싶어요. 멋있잖아요. 근데 이번 전시는 거의 제 자랑이죠. 자랑인데, 왜 자랑을 하냐면, 사람들은 저를 보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요. 진짜 제 자신감에는 근거가 없어요. 키도 작고, 얼굴도 그다지 잘생기지 않았고, 지방대 출신이고, 토익이나 토플 점수도 없고, 인턴경험도 전무해요. 가지고 있는 거라고는 주민등록증하고 운전면허증 뿐이에요. 또 돈도 없잖아요. 근데, 여행 잘하잖아요. 그러니까 사진전을 통해서 아무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저도 하니까요."

"공정여행·봉사활동 재미있어하는 일... 젊음 나눠쓰자고요"

홍대의 한 카페에서 진행 중인 사진 에세이전의 모습
 홍대의 한 카페에서 진행 중인 사진 에세이전의 모습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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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영준씨는 주변 또래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진짜 '청춘' 같아 보이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어떤가요?
"저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요. 또 어떻게 보면, 사회에 약간 반항하는 것도 있죠. 사회에서는 스펙을 요구하는데, 저에게는 제 여행이 스펙이에요.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없지만, 기 안 죽고 살아요."

- 그렇지만 한국사회는 아직도 틀에 맞춰진 스펙을 원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한영준씨는 아직 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는데, 주변 또래 친구들 중에는 열심히 스펙을 쌓거나 이미 취업을 한 친구도 있을 것 같아요. 혹시 두려운 마음이 들진 않으세요?
"없죠. 왜 있겠어요. 이건 좀 허세지만, 제가 지금 잘나가고 있는데. (웃음) 저는 '많이 가진 자보다 많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부자'라는 말에 공감해요. 전 많이 나누고 있어요. 또 많이 사랑받고 있어요. 제가 가는 이 길이 너무 재밌고, 행복해요. 거기다 많은 사랑까지 받고 있으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죠. 학교는 한 학기가 남았는데 생각 중이에요. 중퇴가 더 간지가 나는지. (웃음)"

- 그럼 한영준씨는 앞으로 어떻게 지내실 계획인가요? 취업이라든지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요?
"취업 준비는 안하고요. 우선 계획은 내년에 학교를 짓는 게 꿈이고, 내 후년에는 병원을 지을 예정이에요. 그 후에는 NGO를 만들 예정이고요. 그렇지만 만약 도중에 꿈이 바뀌게 된다면 언제든 그만하려고요."

- 언제든 그만둔다고요?
"네. 앞으로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려고요. 지금처럼 재밌게, 간지나게요. 지금은 이렇게 공정여행하면서 봉사활동 하고 있지만, 재미가 없어지면 안하려고요. 다행히 지금까지는 너무 재밌어서 하고 있고요."

- 당장 다음 달에 캐나다로 출국한다고 하셨는데, 캐나다에서도 봉사활동 하시나요?
"아뇨. 다음 달부터는 봉사는 조금 접어두고, 제 개인적인 공부를 할 생각이에요. 영어도 더 공부하고, 악기도 배우고 싶고, 예술 쪽에도 관심 많아서 배우고 싶고요."

- 마지막으로 현재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느꼈으면 좋겠어요. 좁은 곳에 머물지만 말고요. 저도 아직은 속도 좁고, 못하는 것도 많아요. 그렇지만 하나 자신 있는 것은 많이 보고 많은 경험을 한 거예요. 또, 해주고 싶은 말은 젊음을 혼자 쓰지 말고, 나눠쓰자는 거예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 돌아보기도 하고, 도와줄 수 있는 건 돕고 살고요."

덧붙이는 글 | 김은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한영준, #국제꽃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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