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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학교 정문 앞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
 전주대학교 정문 앞에 걸려 있는 플래카드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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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학교 학생회관 앞. 전북 평등지부 지부장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천막
 전주대학교 학생회관 앞. 전북 평등지부 지부장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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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학생들보다 학교에 더 오래 있는 사람들. 본업을 내려놓고, 외박까지 하면서 가족들 밥도 못 챙겨준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 이야기이다. 전주대·비전대 건물 청소를 담당하는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이 1년 사이 6번째를 맞았다. 4일 현재 민주노총 전북평등지부 소속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은 29일째에 접어들었고, 전북 평등지부 지부장은 전주대학교에서 18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전주대학교와 비전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은 학교와 용역계약을 맺고 청소를 대행하는 업체인 ㈜온리원이라는 회사에 고용되어 있다. 두 학교는 신동아학원이라는 같은 재단에 속해 있으며 ㈜온리원은 신동아학원 재단 산하기업으로 1000원짜리 생활용품을 파는 상점으로 유명하다. 이 업체는 11년간 용역계약을 맺어오며 청소노동자들에게 학교 건물 청소뿐만 아니라 학교의 김장을 하게 하기도 했고, 이외에도 온리원 매장 청소, 물건 운반 및 정리를 하게 했다. 그렇지만 이에 맞는 대가는 받지 못했다. 청소노동자들은 본래 업무인 청소 외의 많은 일을 했지만 임금은 최저임금을 웃도는 70여만 원밖에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청소노동자들이 '우리도 인간이다'라며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면서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업체에 교섭을 청했다. 하지만 업체는 복수노조라는 이유로 교섭을 거부했다. 노조는 업체에 계속 성실히 교섭할 것을 요구했고, 법원에서도 노조가 "교섭대표노동조합의 지위를 갖는다"며 ㈜온리원에 성실히 교섭할 것을 결정했으나 업체의 태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고 현재로선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주대·비전대 1년 사이 6번째 파업... 학교엔 무슨 일이?

전주대학교 총장실. 청소노동자들은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전주대학교 총장실. 청소노동자들은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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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6일 동안 진행됐던 5번째 파업에서 청소노동자들은 ㈜온리원과 전주대학교가 11년 동안 지속해 온 수의계약방식에 의한 유착관계가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공개경쟁입찰'을 요구했다.

전주대학교와 비전대학교는 이러한 사항을 받아들여 공개경쟁입찰을 실시했다. 하지만 공개경쟁입찰에서 ㈜온리원이 다시 선정됐다. 이에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5월 7일 공개경쟁입찰이 공정하지 않았고, 그 후에도 노동조건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다시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하지만 ㈜온리원 측은 노조의 주장과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일 ㈜온리원 관계자는 기자의 서면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노조와의 교섭에 성실히 참여했으며, 계약 중에 근로기준법을 어기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다 들어줬다"고 반박했다.

노조와 ㈜온리원의 주장이 계속 엇갈리고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청소노동자들은 실사용주인 전주대학교가 나서서 ㈜온리원을 관리 감독하고 파업을 해결해줄 것을 요구하였고 급기야 전주대학교 총장실을 점거했다.

노조 측은 "진리의 상아탑인 대학에서 더 이상 노동자를 착취하며 노동기본권을 박탈하는 용역업체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주대학교 측은 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제3자인 학교가 개입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에 학교는 개입할 수 없다"며 "현재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해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고 있고, 특히 지금 총장실을 점거하는 것 또한 불법 노동행위이므로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법적인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노조와 회사 간의 합의도 쉽지 않은 상태이고, 학교 측도 뚜렷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 않아 파업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현재, 청소노동자들은 총장실에 교대로 머물면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청소노동자들이 김치전을 부치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이 김치전을 부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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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들고 지치는 법. 청소노동자들의 대표는 지난 1일 농성장을 찾은 기자에게 파업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들을 토로했다.

"젊은 노동자들 가운데에는 초등학생을 자식으로 둔 이도 있다. 그런데, 밤에 교대로 농성장을 지키다 보니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졌다. 농성장에 있으면 집에 있을 가족들이 걱정되고, 집에 있으면 농성장이 걱정된다."

청소노동자들 대부분이 가정이 있다 보니 절로 생기는 고충들이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움보다 힘든 것은 '외로움'이다.

"파업하기 전에는 학생들이 이모라고 부르면서 잘 따랐다. 그런데 파업을 하고 난 후로는 그런 인사도 없고, 학교 건물에서 서명운동을 할 때엔 그 학생들한테 내쫓기기도 하고… 아들, 딸 같았던 학생들인데 마음이 많이 아프다."

청소노동자 대표의 말처럼, 농성장에서는 학생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지지서명한 학생수가 5000명을 넘기기는 했지만, 현장에 지지하러 찾아오는 학생들은 거의 없는 게 사실이었다. 청소노동자들은 학생들의 외면에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고3 학생들의 지지 방문... "전주대 언니 오빠들 관심가져 달라"

청소노동자들이 UCC 촬영을 하기 위해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이 UCC 촬영을 하기 위해 합창 연습을 하고 있다.
ⓒ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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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지난 5월 중순 처음으로 전주대 한 학생이 농성장을 찾았다. 바로 '만분의 일' 학생. '만분의 일'이라는 별명은 청소노동자들이 붙여준 것이다. 전주대학교 만 명이 넘는 학생 중에 유일하게 찾아왔다고 해서 '만분의 일'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만분의 일' 학생은 특이한 별명을 갖게 된 소감(?)에 대해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처음 농성장에 지지방문했을 때, 노동자분들이 '전주대 학생 중에 학생이 처음으로 왔다'라는 말을 듣고 굉장히 슬펐다. 그래서 처음에는 별명이 씁쓸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요샌 되레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청소노동자들 파업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만분의 일이라는 별명이 얼른 깨졌으면 했는데, 며칠 전에 드디어 깨졌다, 농성장에 찾아오는 전주대 학생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며 "더 많은 학생들이 찾아와서 천분의 일, 백분의 일까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농성장을 찾은 고3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알리기 위해 피켓을 만들었다.
 농성장을 찾은 고3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알리기 위해 피켓을 만들었다.
ⓒ 강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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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대 학생들의 지지방문에 이어, 농성장에는 교복 차림의 학생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김제에 있는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었는데, 휴일을 맞아 방문한 것이다. 이 학생들은 농성장에서 노동자들과 같이 수박을 먹기도 하고, 파업 상황을 알리는 대자보, 관심을 호소하는 피켓을 만들기도 했다.

"학교에서 활동하는 인문학 동아리에서 전태일 열사에 대한 공부를 했었는데, 우리 주변에도 전태일 열사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 전주의 다른 파업현장인 전북고속 지지방문을 하다가 전주대 청소노동자분들이 파업한다고 해서 방문하게 됐다."

학생들은 농성장을 다녀가면서 파업 상황과 청소노동자들과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한다. 요즘은 학생들의 트위터를 보고 다른 학교의 더 많은 고등학생들이 지지방문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학교가 쉬는 주말을 이용해, 간식거리를 사들고 농성장을 방문해 청소노동자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처음엔 농성장에 와도 도움 드릴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아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까 노동자분들이 너무 반겨주시고 좋아해주셔서 오히려 우리가 좋다. 전주대 학생인 오빠, 언니들이 많이 관심 가져주면 더 좋겠다."

파업 농성장을 지지방문한 학생들에게 바라는 점을 묻자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파업 해결". 그리고 이 파업이 빨리 끝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지금 전주대·비전대 청소노동자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학교 캠퍼스 내에서 처절하게 외치며 요구하는 것은 하나다. '노동기본권 확보와 단체협약 체결' 그리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바람. 청소노동자들의 소박한 소망이 이뤄져 그들의 일자리와 가정으로 하루 빨리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김은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2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전주대 청소노동자,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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