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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역인 동대문에서 종착역인 서울역까지 천천히 가는 전차를 친구들과 쫓아가 잡아타던 시절이 8살 무렵이었는데, 한 게 아무것도 없이 벌써 90이야. 세월 참 빠르다!”는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거제도에 있는 외도에 다녀왔다.

 

10윌 3일은 두 분의 결혼기념일이고 26일은 장인 생신이다. 꽃을 좋아하여 ‘80 먹은 소녀’라고 놀리던 장모님과 여행을 좋아하시는 장인을 모시고 안동을 가기로 오래전부터 계획했었다.

 

하지만 여수에서 안동까지는 상당한 거리이고 순천 낙안읍성과 비슷하다는 주위의 설명에 꽃을 좋아하시는 장모님을 위해 외도를 가기로 했다. 며칠 전에 말씀을 드리고 7시 반에 출발한다는 말씀에 어린애들처럼 좋아하시는 두 분을 보니 진작 모시고 갔어야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인은 어릴 적 종로 YMCA 옆에 집이 있어 틈나면 도서관에 가기도 하고 농구도 하여 학창시절에는 농구선수를 했다. 그런 연유로 여수시 농구협회장도 맡기도 할 만큼 건강했지만, 지금은 방금 한 말을 또 묻고 하셔서 치매가 걱정되기도 한다.

 

더 쇠약해지기 전에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여행도 보내드리려고 하지만 요즘 걸음 걷는 속도가 5년 전보다 훨씬 떨어졌다. 일본에서 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셔서 지금도 시립도서관에서 영자신문을 보시는 장인은 치매방지를 위해 사전을 찾아가며 영자신문을 읽고 오신다.

 

일제 때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취직해 고위직에 올랐지만 올곧은 성격이라 부정과 타협하지 못하고 퇴사하여 사업을 벌였지만 남의 말을 쉽게 믿어서 실패를 거듭하기도 했다.

 

장모님도 연세가 80이다. 역시 일제 때 사범대학을 졸업해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셨다. 한때는 수녀가 되어 소록도에서 나환자 간호의 꿈을 꾸다가 장인과 결혼하셨다. 장인 대신 경제를 책임지고 일찍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대신 8남매의 맏이로 집안 대소사까지 도맡아 했다.

 

어느 날 새벽기도 가는 데 강도가 성경책 가방을 돈으로 알고 빼앗으려는데 끝까지 놓지 않자 왼쪽 눈을 밟아 멍이 들고 퉁퉁 부은 눈으로 병원에 누워 계셨다. 화난 자식들이 강도를 욕하자 그 와중에도 “하나밖에 없는 허리를 밟았으면 꼼짝 못할 텐데 한쪽 눈만 밟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다”고 말씀하셨던 천사다.

 

두 분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거제시 장승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11시 20분 배를 타고 출항하려는 데 선장이 비슷한 배가 너무 많고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돌아올 때 이 배를 탈 수 없을 수도 있다며 ‘챔피언’이라는 선명을 나눠주며 이름표처럼 차도록 권한다.

 

15분쯤 항해 후 일본해군이 주둔했었다는 지심도가 보인다. 현재는 낚시터로 유명하다. ‘쥐의 귀’처럼 생겨 ‘서이말’이라 불리는 바위는 대마도와 가장 가까워 조오련씨가 대마도를 향해 수영을 출발한 곳이다.

 

항구에 있는 여객선이 크기나 높이가 적은 이유는 해금강에 있는 십자 동굴을 빠져나가야 하기 때문이란다. 파도가 없고 날씨가 좋으면 동굴을 지나갈 수 있지만 오늘은 약한 파도가 있어 구경만 하고 다시 되돌아 나왔다.

 

 

우리나라 명승 1호는 소금강이고 2호는 해금강이다. 득남바위, 촛대바위, 이빨 빠진 사자바위 등으로 유명한 해금강을 거쳐 외도에 도착했다. 상륙 후 돌아와 다시 승선하기까지 허용된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거동이 불편한 두 분을 위해 노인복지회관에서 휠체어를 빌렸지만 오히려 불편할 거라는 말에 휠체어를 포기하고, 경사진 산길을 걸어 올라가던 도중 공원 벤치에 앉아 부두에서 사온 충무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커다란 총각김치며 오징어무침과 어묵 맛을 음미하며 즐거운 점심 식사시간을 가졌다.

 

 

정상 부분에 오르니 정말 대단하다. 섬을 이렇게 아름답게 가꾼 이창호씨 부부에게 감사드리며 부럽기도 하다. 일전 TV에서 봤지만 온갖 화초와 나무들로 꽃 공화국을 건설했다. 장모님은 예쁜 꽃들만 보면 “씨를 얻을 수 없는가?”며 묻는다.

 

4만 4천 평의 천연동백림 숲과 아열대 식물인 선인장, 코코야자, 가자니아, 선샤인, 용설란, 등 3천여 종의 수목과 섬 안에 조성된 전망대, 조각공원, 야외음악당 등 섬 전체가 하나의 공원이다.

 

 

식사하느라 시간을 뺏겨 두 분을 비너스 공원에서 구경하시라고 한 후 아내와 함께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녔지만 승선할 시간이 다됐다. 선장에게 좀 기다려달라고 사정하든지 다음 선편을 예약하든지 선택하기 위해 부리나케 뛰어 내려가고 아내는 두 분을 모시고 서둘러 내려와 간신히 배를 탔다. 가쁜 숨을 몰아쉬던 노인들이 안도감에 즐거워하신다.

 

다음 코스는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이다. 포로들이 가장 많았을 때는 17만 3천 명까지 달했다는 포로수용소 디오라마를 본 두 분은 “정말 새삼스럽다. 6.25를 겪어보지 못한 세대는 그때 얼마나 지독했는지를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때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했다”고 한다. 전쟁이 나자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문관이 되어 미군 양륙함인 LST를 타고 제주도에서 갓 신병교육을 마친 군인들을 태우고 최전선으로 배치되는 군인들을 육지로 실어나르는 임무를 맡았다. 장인은 작전 중 차가 뒤집혀 죽을 뻔했다.

 

영양상태가 나쁘고 의료시설이 부족했던 일제 때는 나병환자들이 어린 사내아이 고추를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집안에 대사를 치르느라 고모가 축음기 바늘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켜 밤 8시쯤 시내에 나갔다. 저만치서 50대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도와달라고 하여 따라갔다가 허리춤을 잡고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는 순간 잡았던 손을 뿌리치고 도망쳤다.

 

“두 번의 죽을 위기를 벗어나 이렇게 오래 사는가 보다”고 하며 “아무것도 한 게 없이 아흔이 돼 버렸다”고 한숨이다.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을까? 장인은 항상 진취적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

 

수지침을 배워 노인정을 돌며 봉사활동을 하는데 짐이 많아 불편하다며 6번 만에 전국 최고령으로 운전면허를 따고, 자식들에게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낙심하지 말라”고 가르쳐 자녀들이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간다.

 

자전거로 시내 상가를 돌며 여수에서 최초로 상호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셨고, 수지침 전문가가 되어 알고 있는 의학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알리겠다고 85세에 컴퓨터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든 일을 쉽게 포기하고 갈수록 도전정신이 부족하다”고 하시는 장인의 마음만은 언제나 청춘이다. “손주들이 시집 장가가는 모습을 보고 죽으려면 120까지 살아야겠다”는 욕심에도 기력이 쇠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자식들은 안쓰러운 심정이다.

 


저녁을 사겠다고 고집부리는 두 분을 모시고 광양읍에 있는 월남쌈 전문식당에 갔다. 각종 해초류와 깻잎, 숙주, 양파, 날치알, 양배추, 한천, 비트 등 21가지나 되는 맛깔스럽게 생긴 야채들을 듬뿍 라이스페이퍼에 싸서 두 손으로 먹어야 하니 "양반 되기는 틀렸다"고 웃었다.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 사장님의 취향으로 실내까지도 꽃이 가득하게 심어있는 모습에 장모님이 더욱 좋아하신다. “처음으로 타본 휠체어에 승용차, 배까지 타고 맛있는 음식까지도 먹었으니 너무나 행복한 하루였다”는 장인 장모님이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할 텐데.

덧붙이는 글 | SBS와 남해안신문 및 뉴스365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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