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에너지, 재생가능 에너지 개발이 전세계적 화두가 된 지 오래지만 우리나라의 인식 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일부 지자체와 지역 주민들이 재생 에너지 활용 방안에 대한 다양한 시도와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3회에 걸쳐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의 지역화'를 조명하고 에너지 논의의 해법을 찾아봅니다. [편집자말] |
지난 10월 13일자 <조선일보> 1면에 웃지 못할 기사 하나가 올라왔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밝힌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기는 했지만 에너지 정책에 대한 기본 상식이 없음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살게 될 경남 김해 '봉하마을 집'의 지열 냉난방 시설 설치에 국가 보조금이 지급되었는데 "그간 사회시설에 지원되던 보조금을 개인 사저를 위해 신청한 것은 부적절한 처신 아니냐?"는 문제 제기였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보급 사업의 지원 자격은 "시설 소유자"로 분명히 명기되어 있을 뿐이다. 특혜 여부를 따질 사안이 전혀 아니다. 지열의 특성상 대형 시설에 설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개인보다는 단체 또는 영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주가 주로 보조금을 받아갔던 것이다.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사업 계획에 따라 집행한 일일 뿐"이라며 이런 기사가 난다는 게 이상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아무튼 "재생 에너지에 대한 인식이 척박한 현실에서 지원 사업이 홍보가 돼 좋은 면도 있다"고 귀띔했다.
고유가·지구온난화, 이제 식상해?
이런 걸 두고 '생태맹(盲)'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악의적인 보도랄까. 대한민국의 초등학생 정도면 알 수 있는 '지구온난화' 문제지만 실질적인 대책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침묵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지구온난화 대책, 재생에너지 사업은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의식은 이미 진행중인 정책 수준에도 한참 모자라 보인다.
그렇다. '국제유가 상승', '지구온난화'만큼 식상해진 보도 주제도 없다. 각각의 기사가 생산하는 위기의 징후는 갈수록 구체화되고 있건만, 한계효용의 법칙 때문인지 위기의식은 점점 일상화되고 있을 뿐이다.
지구적 위기, 세계 경제 체제를 뒤흔들 두 가지 문제가 얽혀있지만 실상 문제 해결의 답은 비교적 단순하다. 바로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사용을 높이는 일이다. 하지만 말만 쉽다. 한 마디로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문제는 늘 그렇듯 '어떻게'이다.
세계재생가능에너지위원회 헤르만 셰어는 그의 책 '에너지주권'에서 "진정으로 재생가능에너지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입으로만 재생가능에너지를 외치는 사람들과 그들의 변명거리가 함께 늘어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누구나 말하는 위기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는 문제가 되어 버린 걸까?
재생 에너지의 희망, 지역 공동체그러나 포기는 아직 이르다. 최근 에너지 문제의 해결사로 새롭게 떠오르는 주체가 등장하고 있으니 곧 도시, 또는 지역 공동체다. 국가정부는 보수적인 이해관계, 정치-에너지업계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고 있는 반면에, 도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시스템에서 엄청난 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도시 또는 지역 공동체가 지역의 에너지 소비를 직접 조율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에서 에너지 생산자로 전환하고 지역의 에너지 자립도를 높여가는 일이 해결의 가능성이란 발견이다. IEA(국제에너지기구)의 '솔라시티', ICLEI(지방자치단체 국제환경협의회), FEDARENE(지역에너지환경사무국) 등이 에너지 전환을 이끌 도시와 지역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선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고, 에너지 전환을 선도할 대한민국 도시 및 지역의 에너지 정책은 어디까지 왔을까?
소비자·환경 단체의 연대 단체인 '에너지시민연대'가 발표한 논평을 보면, '2001년 서울특별시 에너지기본조례 제정' 이후로 10여개 이상의 시·군·구에서 에너지조례를 제정하였지만, 지자체의 독자적인 에너지 정책의 수립과 실행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에너지 조례를 일찌감치 상정한 서울의 전력 자립률이 2.2%로 전국 꼴찌라는 사실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여전히 에너지 문제는 중앙정부의 실질적인 권한, 공급 체계 아래 한정되어있다.
그렇다면 지역 에너지 정책 수립의 실행력은 어디에 달려 있을까? 김광훈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지자체의 예산확보, 담당 공무원의 의지, 그리고 시민교육과 시민참여"로부터 담보된다고 강조한다. 지자체 차원의 예산 편성과 지역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에너지 계획이 함께 맞물릴 때 지역 에너지 정책의 현실성이 확보되고 에너지 자립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태양에너지 도시' 광주 대 '풀뿌리 에너지' 홍성우리 사회 지역 에너지의 현실과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가장 앞서고 있는 지역을 찾아보기로 했다.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은 지역 에너지 정책을 가장 효과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지자체로 광주광역시를 들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제1회 세계솔라시티총회'를 유치하며 '솔라시티'(solar city)를 표방하고 있는 대구보다 정책과 사업 면에서 모두 앞선다는 평가다.
광주를 우리말로 풀면 '빛고을'이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 국내 평균 일사량이 4441㎉/㎡인 것에 비해 광주는 5394㎉/㎡이다. 국내 최고 일사량이다. 명실상부라고 빛고을 광주는 일찍이 '태양에너지 도시'를 선언하며 빛고을의 현대식 버전을 구축해 오고 있다.
반면, 지역 시민들이 의욕적으로 재생에너지 사용을 논의하고 추진하고 있는 곳으로는 전북 부안군 주산면과 충남 홍성군 홍동면 등을 꼽는다. 전북 부안군 주산면은 '부안유채네트워크', '주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바이오디젤 생산과 이를 활용한 장기적인 지역 에너지 수급 체계를 모색 중이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은 충남 홍성군 홍동면 지역 주민들의 재생에너지 활용 노력이 주목을 받고 있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은 풀무학교와 풀무생협, 문당리 환경농업마을 등 농촌 마을 공동체 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에너지 전환을 자발적으로 모색할 주민 토대가 오래전부터 닦여 왔다고 할 수 있다. 풀무학교는 이미 1978년 기숙사에 태양열 시설을 들여 놓았고, 1980년대 초반부터 '대체에너지 연구소'를 조직해 자료를 모아 왔다. 현재 풀무학교 앞마당에 놓인 12kw 태양광 발전 시설은 우리나라 처음으로 생긴 3개의 시설 중 하나다.
취재를 위해 홍동면과 광주시를 차례로 방문했다. 광주시청의 정책, 홍동면의 시민의식이 만나면 어떤 시너지를 발휘하게 될까를 상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재미있는 상상이었다. <태양도시>의 저자는 "도시의 에너지 체계가 바뀔 때 도시 사람들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걸 더 눈여겨보았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그래서 에너지 전환이 초래한 주민 삶의 변화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사실 국내 여건상 지역의 에너지 자립을 논하는 게 섣부른 욕심은 아니었을까 하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성과는 있었다.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에너지 전환에 대한 노력, 재생에너지 사용에 관한 고정관념, 막연한 거부감에 비해 지자체가 속도를 내어 고민하고 있으며, 입소문을 타고 번져가는 속도도 제법 빠르다는 발견이다. 이미 에너지 전환을 일상의 지평에서 조금씩 만들어 가는 지역 주민들의 변화도 없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이미 변하고 있다던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획취재단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