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여성, 이름을 불러 주세요

한국인 이름으로 개명하는 이주 결혼 여성들

등록 2010.05.25 15:53수정 2010.05.2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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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하는 생각을 하며,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에게 왜 황수정으로 개명했느냐고 물어봤다. 대답은 간단했다. 베트남 이름이 '황티투하'이기 때문에 성을 '황'으로 했고, 이름은 남편이 지어준 것이라고 했다. 평소 아이 이름을 따라 '성원이 엄마' 혹은 '하씨'라고 불렀었는데, 이젠 황씨라고 불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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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안고 있는 황 씨 결혼이주여성들 모임에서(아이를 안고 서 있는 사람) ⓒ 고기복

▲ 아이를 안고 있는 황 씨 결혼이주여성들 모임에서(아이를 안고 서 있는 사람) ⓒ 고기복

황씨는 작년 9월 귀화했다. 그 후 올 1월에 개명신청을 했고, 2개월 만에 '황수정'이라는 이름으로 된 주민등록증을 받았다. 황씨는 성(姓)과 본(本)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황'이라는 성씨가 한국에도 있다는 것과 자신의 이름이 유명한 연예인의 이름과 같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 황씨에게 본을 베트남으로 할 수도 있다고 말해줬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며 웃기만 할 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개명을 했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황씨가 '황수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거나 사용하는 경우는 은행에서 통장을 사용할 때 외에는 거의 없다.

 

하다못해 베트남 출신이라는 것을 아는 주위 사람들조차 황씨를 '월남댁'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긴 요즘 시골에서도 택호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피부색이 한국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황씨는 단지 '성원이 엄마'로 불릴 뿐이다.

 

그 외에 만나게 되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들은 황씨를 '하'라고 부르지, 새로운 한국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황수정이라는 이름은 단지 주민등록증에 새겨진 글자에 불과하고, 여전히 생뚱맞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나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개명한 주민등록증을 사용할 때 외국인이냐고 묻지 않는다는 것 정도다. 어쩌면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황씨는 개명한 이름에 좀 더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질지 모른다.

 

황씨의 개명 사실을 알고 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물어봤다. 다른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언이 엄마인 후엔, 진아 엄마인 동티 리우, 별이 엄마인 검반씨 모두 개명을 했거나 신청 중이지만, 여전히 그녀들은 '시언 엄마' 혹은 '후엔'과 같이 아이 이름이나 본국에서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일반적인 한국 여성들처럼, 그녀들은 큰 맘 먹고 개명을 하고 나서도 그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셈이었다.

 

남유미로 개명 신청 중인 동티 리우씨의 경우 남편이 지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본을 어디로 했는지, 성을 어디서 따온 건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개명 신청한 이름만으로는 원래 이름이나 출신을 유추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 결혼이주여성으로 살면서 자신의 출신을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중국에서 와서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개명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중에도 개명한 경우가 있었다. 설씨 성을 가진 메이씨는 윤씨로 개명을 했다고 한다. 설씨가 희귀성이라 사람들이 자꾸 물어볼 것 같아 개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 역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는 많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비록 지금은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지만, 언젠가는 개명한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날이 있기를 바라고, 그로 인해 그녀들과 그 가족들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2010.05.25 15:53 ⓒ 2010 OhmyNews
#결혼이주여성 #개명 #베트남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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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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