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포기할래? 불법체류자 될래?

이주노동자는 결근할 권리도 없나

등록 2010.05.12 16:47수정 2010.05.1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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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 바하리입니다. 외국인 등록증 만료일이 내일까진데, 회사에서는 출입국에 가지 말래요. 출입국에 신고하러 가면 퇴직금 없대요. 어떡하면 좋아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그 말은 불법 체류자가 되어도 좋다는 말인데, 합법 체류자 쓰면서 이유 없이 불법체류자 만들겠다는 회사 본 적이 없거든요."
"제가 내일이면 여기서 정확하게 1년이에요. 회사에서 먹고 자는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밤에도 물건 들어오면 그냥 일을 해야 해요. 그런데 사장님은 그게 시간 많이 걸리지 않는다고 계산해 주지 않아요. 그래서 여긴 오래있는 사람들이 없어요."
"그러니까 일 년 돼서 회사를 옮기겠다고 하니까 출입국에 신고하러 가지 말라고 한다는 거군요?"
"네."


그렇게 전화를 해 왔던 바하리(26)은 결국 그 다음날(7일) 출입국에 신고하러 갔다. 설마 하니 회사에서 퇴직금을 안 주기야 하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원칙과 규율'을 따지며 퇴직금 지급을 거부했다. 마지막 날 일하지 않았으니, 퇴직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일로 바하리가 다니던 회사 총무과장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총무과장이라는 사람은 "회사라는 것이 원칙과 규율이 있는 법인데, 그렇게 나가고 싶을 때 다 나가 버리면 회사는 어떻게 운영합니까"라며 "우리 같은 제조업체에서 인력이 부족하다는 거 뻔히 알잖아요"하며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정당하다고 강변했다.

노무 관리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하루라도 인력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것은 이해가 갔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조퇴도 할 수 있고, 결근도 할 수 있는 법이다. 아무리 만만하고 부려먹기 좋은 이주노동자라고 하지만 신고 시기를 놓쳐 멀쩡한 사람이 불법체류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결근을 허락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바하리는 당일 출입국에 들렀다가 회사로 복귀했다. 또한 퇴사 희망일자를 분명하게 근로계약 만기일까지라고 밝혔다. 퇴직금을 못 받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일 년을 같이 일한 사람인데, 웃으며 보내주면 좋지 않겠느냐는 점에서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이 좋겠다고 총무과장을 설득해 봤다. 그러나 총무과장은 퇴직금 지급 문제는 자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며 원칙과 규율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이주노동자가 기계도 아닌데 하루도 결근하지 말고 일하라는 것은 지나친 억지다 싶었다. 게다가 그 결근이라는 것이 노동자 본인에게는 체류 자격을 유지하느냐, 못하느냐의 중요한 이유이기때문에 부득이한 것이었다. 결국 회사에서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바하리는 이 일을 노동부에 진정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헤어지며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는 잘 이야기해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에 그는 며칠 기다려 보기로 했다. 결국 12일 바하리 회사로부터 퇴직금을 지급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양측이 서로 약간의 양보를 해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된 셈이었다. 하지만 이 일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이주노동자는 결근할 권리도 없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있음을 알게 해 주어 씁쓸함이 남았다.
#이주노동자 #퇴직금 #근무처변경 #출입국 #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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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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