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7일 오후 광화문 열린 시민마당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여중생 추모 및 SOFA개정촉구 미사'에 참석했다. 이 후보의 양옆으로 이부영 의원, 박계동 전 의원의 모습이 보인다. ⓒ 연합뉴스
<제3신 대체: 7일 오후4시52분>
"떠나달라" 요구에 묵묵히 자리지킨 이 후보


이회창 후보 '촛불시위' 참석 안한다

'여중생 장갑차 압사사건'과 관련해 7일 저녁 광화문에서 열리는 '토요 촛불시위' 참석 여부를 놓고 고민하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결국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앞서 이 후보는 이날 오후 3시께 미 대사관 인근, 문화광광부 옆 '열린시민광장'에서 농성중이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집전한 추모미사에 참석했다. 이후 대학로 유세를 마친 뒤 외신기자들과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이를 끝으로 이 후보의 이날 공식 일정은 마무리됐다. / 이한기 기자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7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추모미사에 참석했다가 신부와 신도들의 싸늘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이 후보는 이 같은 분위기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 신부와 신도들의 빈축을 샀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한 관계자는 "오늘 오후3시7분경 이 후보가 이부영 의원 등을 대동하고, 사제단이 농성중인 열린 시민마당을 찾아왔다. 마침 행사에는 매일 3시로 예정된 추모미사를 올리기 위해 2백여 명의 신자가 모여 있었다"고 전했다.

강론을 하던 김현영 신부는 이 후보 일행이 나타나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국민의 대상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장갑차에 깔려죽는 국민, 미군에게 맞는 국민은 당신을 국민의 범주에 두지 않았다. 선거를 앞두고 자기 사진 찍으러 온 게 뻔한데 '잘 왔습니다' 할 수 없다. 우리는 당신과 같은 반민족, 반통일 주의자를 안아줄 힘이 없다. 우리는 함께 가야할 사람들도 다 안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다"

말이 끝나자마자 일부 신도들이 박수를 치고, 근처에 있던 시민들이 계란이나 종이뭉치를 던졌다. 이 후보의 경호원들은 계란을 던진 시민을 곧바로 제지했다.

이 후보의 측근이 김 신부에게 다가가 "사람이 조금씩 반성하고 변화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지만, 김 신부는 "지금의 이 후보가 변화했거나 반성했다고는 볼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후보는 북한 주민이 수백명 죽어나갈 때 지원하지 말자고 했던 사람이다. 민족주의자인 척 하는데 거짓임이 명백하다. 이 후보는 여의도에서 국가보안법 시위할 때 면담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다. 그 때 면담을 요청한 신부가 지금 농성하는 신부들이다. 똑같은 신부다."

김 신부는 이후에도 "여기서 떠나달라"고 수 차례 요구했고, 일부 신자들은 박수로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냉랭한 분위기 속에도 40여 분간 자리를 지키다 미사가 끝나서야 돌아갔고, 신부들과 신도들은 이 후보의 행동에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이 후보에게 계란던진 사람은 매향리 대책위원장
전만규 씨, 종로서로 연행 '선거법 위반' 조사중

▲ 전만규 매향리 대책위원장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전만규 매향리 미군사격장 대책위원장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추모미사에 참석한 이회창 후보에게 계란을 던진 혐의로 7일 종로경찰서에 연행됐다.

종로경찰서의 관계자는 이날 저녁 "대통령 후보에게 계란을 던진 전씨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조사중인데, 구속 수사할 지 여부는 일요일에 결정된다"고 밝혔다. 전 위원장은 김용철 매향리 이장과 함께 이날 광화문 열린 시민마당에서 추모미사를 올리던 신부들을 만나던 중 갑자기 이곳을 방문한 이 후보 일행과 맞닥뜨렸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당시 미사를 집전하던 김현영 신부가 이 후보 일행에게 나가달라고 계속 요구했음에도 이 후보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에 흥분한 전 씨가 인근 구멍가게에서 두개의 계란을 사서 이 후보에게 집어던졌다. 계란은 이 후보의 몸에 맞지 않았지만, 곧바로 경호원들과 경찰들이 전 씨를 연행했고, 종로경찰서로 이송했다.

여중생 범국민대책위와 사제단은 "사제단의 요청에 불응한 이 후보에게 사태의 1차적인 책임이 있다"며 선처를 호소하고 있다. / 손병관 기자

이에 앞서 이 후보는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국 대사를 만나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와 즉각적인 SOFA 개정작업 착수를 강력히 요청하는 한편, "한미 관계를 대등한 동반자 관계로 만들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허바드 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효순, 미선이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상처 입은 우리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며, 한미 두 나라의 동맹관계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막는 길"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 후보는 최근 반미운동의 확산 사태와 관련해 본질은 절대 다수 국민의 공분이라는 점, SOFA 개정에 즉각 나서라는 점, 일차적 책임은 미국측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즉각 SOFA 개정에 나설 것을 미국쪽에 촉구했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또 현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며,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 이후 이 정부가 취한 무성의한 태도를 보면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효순, 미선이는 나와 국민 여러분의 딸"이라며 "나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나 할 말은 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이회창 후보가 허바드 대사와 면담한 이후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저는 오늘 오후 토마스 허바드 주한 미국대사를 불러 면담하고 이번 신효순, 심미선 두 여중생 사망사건과 관련한 항의 시위에 대한 저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미국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성의 있는 조치에 즉각 나설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먼저 저는 이번 사태와 관련, 세가지 점을 미측에 분명히 밝혔습니다.

첫째, 이번 사태의 본질은 어린 학생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데 대한 절대 다수 국민의 공분이라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둘째, 이번 사태에 따른 국민의 요구는 불공정, 불평등한 SOFA의 개정에 미국측이 즉각 나서라는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셋째,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이 일시적으로 미국측에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사고 자체는 물론 사고 처리과정에서도 한국국민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최소한의 대응으로 일관하였고, SOFA 개정 요구에 대해서도 성의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미국 정부에 대해 다음 두가지 조치를 신속히 취해줄 것을 허바드 대사에게 요구하였습니다.

첫째, 부시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합니다. 주한 미국대사를 통해 사과의사를 표명했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둘째, SOFA 개정에 즉각 착수해야 합니다. SOFA가 개정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만큼 한미관계를 위해서도 반드시 개정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효순, 미선이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상처 입은 우리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며 한·미 두 나라의 동맹관계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막는 길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나는 이 기회에 한국 정부도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을 결코 면할 수 없음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 이후 이 정부가 취한 무성의한 태도를 보면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국민이 추운 겨울에 거리에 나서 미국의 성의있는 조치를 촉구하는데도 이 정부는 미국에 대해 말 한번 제대로 못했습니다. 워싱턴에 개최된 한미연례안보회(SCM)에 참석한 우리 대표단은 국민의 뜻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미감정에 대한 항의만 받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데도 김대중 대통령은 방관만 하다가 뒤늦게 SOFA 개정도 아닌 개선을 대책이라고 내놓았습니다. 지금이라도 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한미동맹은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국민의 공분에서 시작된 이번 사태가 급기야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까지 이어져 국가안보의 기반을 뒤흔드는 사태로 발전하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저는 집권하면 SOFA개정을 위해 부 대통령을 즉각 만날 것입니다. 한미관계를 명실상부하게 대등한 동반자 관계로 만들 것입니다.

효순, 미선이는 저나 국민 여러분의 딸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나 할 말을 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할 것입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국민입니다.


<제2신: 7일 오전8시20분>
이회창 "광화문에 가긴 가는데..." / 부정적 여론에 '참석형식' 고민


▲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왼쪽)가 7일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한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촛불시위에 참여할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젊은 층의 인기를 만회하려는 정치쇼"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모인 '촛불시위' 인파. ⓒ 마이너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가 이 후보의 촛불시위 참석 형식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광화문 촛불시위'의 최초 제안자는 7일 행사에 참여하려는 이회창 후보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7일 오전 8시 현재 확정된 이 후보의 토요유세 일정은 오전 대구 칠성시장과 팔달시장을 둘러본 후 오후4시와 4시50분 서울 동대문 밀레오레와 대학로 유세를 하기로 되어있다. 이 후보가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석할 경우 오후6시 이후가 될 전망이나 현재로서는 공식 일정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다. 이는 '촛불시위'를 둘러싼 당내 진통을 시사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날 오전 "후보의 광화문 행을 놓고 밤새 두 가지 의견이 충돌했다. '젊은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과 '대선 후보가 반미시위에 편승하는 것으로 비쳐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라고 소개했다.

선대위 내부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추모행사에는 참석한다. 그러나 유세는 하지 않고 '잠시 얼굴만 비치는' 정도로 하자"고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역시 지난 주에 이어 토요촛불시위(저녁7시40분경)에 참석, 유세를 할 계획이다.

한편, 촛불시위를 제안한 네티즌 '앙마'는 '여중생사건 사이버 범대위' 홈페이지(이하 사이버 범대위, bioviz.net)에 올린 글을 통해 "나는 당신을 위해 촛불 추모제를 제안하지 않았다"며 "이 후보가 온다면 네티즌들의 분노가 이 후보에게 향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앙마는 아울러 이 후보가 판사시절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사형판결에 참여한 것, 국회 제1당총재로서 미국 F-15기 매매를 승인하면서 SOFA를 개정하지 않는 점 등을 이 후보의 참석을 원하지 않는 이유로 들었다. 다음은 이날 오전 5시34분경 사이버 범대위에 올려졌다가 운영진에 의해 삭제된 글의 전문.

제목: 앙마가 이회창에게 경고합니다.

▲ 지난달 27일 <한겨레> 게시판에 '촛불시위'를 최초로 제안한 '앙마'. 30세의 평범한 회사원인 그는 지난 토요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앞으로 광화문 네거리가 촛불로 완전히 뒤덮일 때까지 나오겠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나는 당신을 위해 촛불추모제를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선거유세를 위해 자발적으로 광화문에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미선이 효순이를 죽였습니까? 단지 미군의 장갑차입니까?

아닙니다. 50년동안 우리사회를 폭압적으로 지배해온 폭력의 시스템이 결국 미선이 효순이를 죽였습니다.

그 폭력의 시스템에서 가장 호의호식한 대통령후보가 누구입니까? 그 시스템을 평생동안 완성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물어보겠습니다.

미군이 노근리에서 대한민국인을 학살할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친일파가 미국과 결탁하여 친미파로 거듭날 때 당신은 어디 있었습니까?
민족일보가 자주적 신문이었을 때 당신은 누구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지요?

80년대 청년들이 피눈물로 미군을 고발할 때 당신은 누구 편에 서있었습니까?
야당총재로서 가장 먼저 미국에 달려가서 주인나라의 윤허를 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F-15기가 강매될때 그것을 추인한 국회 제1당의 총재는 누구입니까?
국회과반수를 차지하고도 소파를 개정하지 않는 국회 제1당의 총재는 누구입니까?

당신의 그 잘난 홍보용 신문이 미선이, 효순이 사건의 진실을 어떻게 호도했는지 아십니까?
우리 미선이 효순이를 두 번 죽이고도 모자라서 세 번 죽이시겠다구요?

경고합니다. 우리모두는 6월보다 더 큰 감정으로 분노를 간직하고 있습니다만 추모제가 비폭력과 평화의 장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모든 걸 참고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들을 당신의 선거운동원으로 삼겠다면, 당신은 우리의 분노가 부시에게 향하기 전에 누군가에게로 향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하겠습니다. 당신의 손녀는 미군장갑차에 깔리기 전에 살아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미국 사람이기 때문이죠.

촛불추모제 제안자인 대/한/민/국/네/티/즌 앙마.


한편, 7일자 중앙일간지들이 대체로 전날 합의된 한미간의 SOFA 개선이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의 사설을 게재한 반면, 중앙일보는 '反美로 표 얻을 생각말라'고 후보들의 자숙을 촉구해 눈길을 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어느 후보가 촛불 시위에 참석하리라는 보도가 나오는가 하면 어떤 후보는 '여중생 범대위' 관계자들과의 면담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문제는 후보들의 움직임 속엔 반미정서의 근본적 치유책 마련보다 그 정서에 편승해 표를 얻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반미감정이 득표전략의 소재가 돼선 안된다. 감성적 반미가 아닌 이성적 용미(用美)로 전환시키는 방안을 대선 후보들은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역시 한-미 정부의 안이한 '반미' 대응을 질타한 사설에서 "후보들도 반미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 당장의 이해득실 때문에 보다 중요한 것을 훼손할 수 있는 일은 삼가해야 한다"며 후보 나름의 종합적인 해법을 제시할 것을 촉구했다.

▲ 지난 3일 오전 SOFA개정을 위한 한나라 당원 전국서명운동 선포식에서 서명을 하고 있는 이회창 후보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제1신: 6일 오후4시40분>
이회창 '토요 촛불시위' 참석 예정 / 네티즌들 "광화문에는 오지마라"


'여중생 사건' 미군병사들의 무죄평결에 대한 항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7일 서울 미 대사관 앞 촛불시위 참석을 추진하고 있다.

이 후보의 이 같은 행보는 2년 전 "무분별한 반미운동을 방치하고 있다"고 정부를 맹공격하던 입장에서 스스로 반미 분위기에 편승하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한 것이어서 대선을 의식한 정치쇼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6일 오전 이 후보는 다음날 오후 일정을 변경,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여중생압사사건 관련 촛불시위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대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여중생 압사사건과 관련, 소파 개정과 부시 미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거듭 촉구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대선에 돌입한 후 질문이 나올 때마다 "미국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부시 대통령의 공개사과와 SOFA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누차 밝혀왔다. 3일에는 당사에서 SOFA 개정을 위한 당원 서명운동 선포식을 가졌고, 이튿날 여중생사건 범국민대책위에 'SOFA 개정과 부시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대국민 서약서를 보내기도 했다.

보수적 색채가 강한 이 후보의 평소 처신으로 볼 때, 광화문 촛불시위 참석이 상당한 파격으로 다가온다. 지난달 13일 전국농민대회에 불참해 농민들의 분노를 산 이 후보가 갑작스럽게 시위 현장에 나타나는 것에도 곱지 않은 눈이 많은 게 사실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위해 미국에 목소리 내겠다"

한나라당 김영춘 의원은 이에 대해 "이 후보는 이념적인 고정관념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며 보수적으로 재단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한다. 김 의원은 "판사시절부터 쌓인 습관인지 모르지만, 이 후보는 모든 사안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로 판단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번 사건은 사법정의에 반하는 일이고,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요구하는 것이 강대국 미국으로부터 우리나라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는 게 이 후보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에 대해 당당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이다.

김 의원은 "이 후보는 광화문 집회 참여를 '반미시위'에 가담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인들 역시 '이 후보가 반미 대열에 동참했다'고 판단할 만큼 단순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이회창 후보가 6일 오전 대전 아드리아호텔에서 SOFA개정과 촛불시위 참석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 보수파 의원들이 주로 모여있는 '바른 통일과 튼튼한 안보를 생각하는 의원 모임'의 한 의원도 "반미 분위기 확산에는 우려하지만, 여중생 사건에 대해서는 미국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은, 우리 당이 대북 정책에 있어서 전략적 상호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북한에 단호한 입장을 보이는 것이 무조건적인 친미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금까지는 이 후보의 행보가 심각한 수준의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미 동맹이 흔들려서는 안될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한미동맹, 대북안보 문제에서 목소리를 높여온 재향군인회(www.veterans.or.kr)에서는 이 후보가 너무 앞서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흘러나왔다. 재향군인회의 홍보책임자는 "미국의 잘못이 크지만, 안보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 SOFA를 우리 정서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것은 주한미군에게 나가라는 것과 같다"며 "왜 이회창 후보까지 반미 분위기에 편승하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반미 문제에 거리를 둬온 이 후보는 사실 '여중생 사건'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이 후보는 지난 9월16일 저녁 서울 성균관대 인근 다세대주택 지하 자취방에서 자취생들과 식사를 하며 "미국은 한국의 정서를 생각해 한국의 재판권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0월29일 YTN 초청 토론에서는 "나토 등 미군 주둔지와 비교해 불평등한 SOFA 규정은 개정해야 한다"고 '집권 후 SOFA 재협상'의지를 드러냈다.

2년전에는 "노근리, 매향리 문제로 반미감정 조장 안된다"

문제는 김영춘 의원의 말처럼 이 후보의 '미국' 인식이 '케이스 바이 케이스' 원칙을 따라가다 보니 일관된 흐름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한나라당 총재시절인 2000년 8월9일 진주에서 한 발언.

"SOFA 개정, 노근리, 매향리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 입장이 분명히 전달되고 반영돼야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주한미군철수 주장이나 반미감정 조장으로 연결돼서는 안된다. 주한미군은 전쟁억지와 동북아안보 유지를 위해 의미가 큰데, 반미감정으로 이 같은 가치까지 훼손되는 것은 문제다. 정부가 제대로 조치하지 않고 방치한 의혹이 있다."

이회창 후보 "미선이, 효선이..."
서명 선포식에서 죽은 여중생 이름 착각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지난 3일 열린 SOFA 개정 서명운동 선포식에서 죽은 두 여중생의 이름을 잘못 불러 참석자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이 후보는 이날 "우리 아리따운 미선이, 효선이 두 여중생이 참 불행한 사고로 숨졌습니다"(위 사진)라고 말했는데, 신효순 양을 '효선'으로 잘못 부른 것으로 확인됐다.

한나라당은 이 후보의 연설을 담은 동영상을 자막까지 입혀져 e-회창 웹사이트(www.e-hc.tv)에 올렸고, 뒤늦게 실수를 확인하고 '효선'을 '효순'으로 고쳤으나(아랫사진) 이 후보의 잘못된 발음까지 '더빙 처리'하지는 못했다.

한나라당의 관계자는 "이 후보가 순간적으로 착각한 것이지, 여중생 사건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생긴 일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당시 반미단체들은 남북정상회담이후 조성된 화해 분위기에서 그동안 불평등했던 한미간의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제기했고, 이는 크고 작은 반미시위로 표출됐다.

이 후보는 SOFA, 매향리, 노근리 사건 해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당한 문제 제기를 반미운동으로 단정하고, 주한미군의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몰아세운 것이다.

그러나 미군의 노근리 양민학살에 항의하고, 매향리 주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미군 사격장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에 대해 한미 동맹 관계를 해칠 수 있으므로 입을 다물라는 식의 주장은 여중생 사건에 대한 대응과 너무나 판이한 것이다.

이 후보는 지난 1월 미국을 방문해 부시 행정부의 체니 부통령, 라이스 백악관 안보수석, 파월 국무장관 등 실세들을 연쇄적으로 만나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과의 교감을 과시했다.

2월에는 한나라당 박진 의원이 당사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를 만나 "이 총재는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을 시의 적절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신문에 "이회창이 '악의 축' 발언을 지지했다"고 보도돼 한바탕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이런 이 후보가 갑자기 미국에 대해 갑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선거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법도 하다. 미국 언론들 역시 이 후보가 '미국과 가장 얘기가 통할 대통령 후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17일자에서 이 후보를 '대미 협력, 대북 강경 노선을 강조하는 보수파 인사'로,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한번도 미국에 가본 적 없고, 대북 설득을 강조하는 친노동계 인사'로 소개했다.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9일자)도 "미국의 대북 노선에 가까운 이 후보가 반미감정 확산으로 인해 강경노선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있다"며 "이 후보 지지율(39%)이 단일화 이후 노 후보(44%)에게 밀리고 있고, 이 후보의 강경 노선이 특히 젊은층 유권자들에게 통하지 않아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유세장에서 노래에 맞춰 젊은 의원들과 힘찬 율동을 펼치는 이 후보가 부랴부랴 '촛불 시위'에 참석한 것도 절대 열세를 보이는 '젊은 표 흡수'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과 맞닿아있다.

네티즌 "촛불시위, 정치적 이용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이 후보의 촛불시위 참석이 순탄하게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촛불시위 참석을 알리는 속보가 <오마이뉴스>에 올라오자 독자의견란에는 부정적인 의견들이 빗발쳤다.

"수준낮은 포퓰리스트" "제발 오지 말아달라" "미국 가서 눈도장 찍고 오신 분이..." "대사관으로 날아갈 계란이 이 후보에게 날아갈지 모른다"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 지난달 30일 고 심미선 신효순 양을 추모하기 위해 광화문 촛불시위에 참석한 네티즌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지난달 30일 1차 시위에 참가한 네티즌들이 정치인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것도 근심거리로 작용한다.

당시 일부 참석자들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나타나자 '플래카드나 당기는 내려달라' '유세는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참석자들은 특정 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추모시위가 정치적 이벤트로 이용되는 것에는 극도로 경계하는 분위기였다는 게 당시 현장을 취재한 <오마이뉴스> 김지은 기자의 전언이다. 김 기자는 "광화문 촛불시위는 집회 신고 없이 집회가 허용된, 특수한 집회였다. 여중생대책위가 주최하는 집회도 아니었고, 여중생 사건에 공분한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모였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갑자기 나타날 경우 네티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미 관계에 있어서 '한미안보동맹의 강화'로부터 '미국에 당당한 대통령 후보'로 무게중심을 이동한 이회창 후보. 토요일 저녁 촛불을 들고 광화문 네거리에 나타날 이 후보에게 현장의 네티즌들이 어떤 평가를 내릴 지 주목된다. 네티즌들은 6일에도 광화문에 모여 촛불시위를 벌였다.

노무현이 '여중생 사건'에 무관심?
"말보다 실천... 한미관계 더욱 수평적으로"

▲ 신기남 의원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6일 현재 여중생 대책위가 요구한 '대국민 서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SOFA 개정'과 '부시 사과'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노 후보는 지난 2일 TV 토론에서 권영길 후보가 "세 후보가 공동으로 부시사과와 소파 개정을 요구하는 연서명을 하자"고 요구하자 "성명을 내는 것은 시민단체, 또는 정당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낼모레 대통령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성명 정치를 하는 것이 적절하냐 하는 고민이 있다. 대통령은 성명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이틀 뒤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여중생 사건과 관련해 부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다. 한미관계는 이전보다 더 상호협력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로 가야 한다. SOFA를 포함해 종전의 한미관계가 지속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중생 사건만이 아니라 한미관계가 전체적으로 대등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노 후보는 "당선되면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한미 동맹관계를 다지고 북핵 문제를 최우선으로 협의하겠다"는 말도 했다. 미국에 굽실거리지도, 배타적으로 나가지도 않겠다는 균형감각을 강조한 말로 풀이된다.

민주당 신기남 의원(SOFA 개정추진대책위원장)은 6일 "노 후보가 여중생 사건에 대해 미온적으로 비친다"는 <오마이뉴스> 기자의 지적에 "노 후보는 한때 반미주의자로 오해까지 받았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미국에 당당한 목소리를 내지 않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의원은 "그 동안 말로 계속 해온 얘기를 굳이 문서에 서명을 해야하나? SOFA 개정이나 부시 사과는 대통령이 된 후 받아내도 충분하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신 의원은 이 후보의 '촛불시위 참석'에 대해 "월드컵 응원도 아니고, 집회의 순수성을 훼손하지 않겠나? 이회창답지 않은 행동이다. 세간에 '대미종속주의자'로 알려진 이 후보가 그런 행사에 가면 사람들이 좋아할 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 손병관 기자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