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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을 마치고 도시에 있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얼 챙겨 오셨나요? 가족과 도란도란 익어 가는 정담을 맛 보셨습니까? 동네 친구들 티격태격 추억을 쌓으셨습니까? 달밤에 좋은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밤 깊어 가는 줄 모르고 하룻밤 하얗게 지새셨습니까. 배탈은 안 나셨는지요.
서울, 부산, 인천, 대구, 광주, 대전, 울산 등 대도시로 돌아오시니 어떻습니까? 혹 돌아오고 싶지 않으셨나요. 시골 생활이 조금 불편하기는 해도 어머님, 아버님 계시는 고향이 공기도 맑고 물도 그냥 먹을 수 있고 왠지 마음이 넉넉해서 좋지 않습니까? 들판엔 누렇게 곡식이 익어가니 그림 같지요. 맛있는 것 언제 또 먹어 보나요.
형님이 잡아 놓으신 미꾸라지로 형수께서 손수 장작불을 때서 추어탕을 끓였습니다. 미리 무청(시래기, 씰가리)을 삶아 담가 둬 마저 풋내를 우려내 재료를 준비해 두고서는 된장 풀어 푹 삶은 미꾸라지에 붉은 고추 갈고, 통 들깨 갈아 바쳐내고 생강, 마늘 찧어 넣어 온갖 양념 곁들이니 추어탕 가마솥에 가득합니다. 산초 비슷한 햇초피가루도 준비하셨더군요. 밋밋하던 맛이 이 초피가루 조금 넣으니 알싸한 게 예전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추어탕 맛이 납니다. 매운 고추 쫑쫑 썰어 넣으니 매콤하니 깔끔했답니다. 동네 선후배들을 불러 소주 한 잔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 차"(두 살배기 해강이는 흰색 프라이드를 '아빠 차!'라고 부릅니다)에 이것저것 가득 싣고 왔습니다. 형님네선 직접 잡으신 시골 돼지고기 일곱 근, 전어, 준치, 굴비 찐 것, 된장 한 통, 조선간장 한 병, 멸치젓갈 삭힌 것 한 통, 양파 한 꾸러미, 옥수수 열 개, 배 다섯 개를 챙겨주시더군요.
처가에는 추석 전날에 찾아뵙고 할아버님, 할머님 산소에 들러 성묘를 하고 왔습니다. 장모님께서는 된장과 간장, 콩잎장아찌, 호박 두 개, 풋고추 한 봉지, 고구마 열댓 개, 인삼 열 뿌리, 꿀 닷 근, 꽃 버섯, 머루 다섯 송이, 가지 열 개를 새까만 봉지에 바리바리 담아 주시더군요.
전남 화순에서 오늘(월요일) 아침 6시에 출발하여 서울집에 까지 막힘 없이 4시간만에 잘 도착했답니다. 당분간 시장 볼 걱정 안하고 살아도 될 것 같네요. 이번 명절은 꼭 이것 얻으러 갔다 온 느낌입니다. 부자 됐습니다. 형수님과 장모님 잘 먹겠습니다.
이제 명절 분위기를 좀 가라앉히고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야겠습니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자신의 몫을 해내야지요.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면 설이 찾아오고 다음 추석이 우리에게로 올 것입니다.
남녀 구분 없이 서로 협력하여 추석 이틀 전 아버님 제사와 한가위 차례를 지내느라 연속으로 고생한 우리 가족에게 모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잠 한숨 푹 자야겠습니다. 길가에 피어있는 들꽃 사진을 찾아 사랑하는 오마이뉴스 독자님들께 이쁜 사진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번에 가장 기대되는 것은 아무래도 물봉선(물봉숭아)과 팥배나무 열매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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