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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6일 동아일보, 한국일보, 한겨레신문 등 중앙일간지들은 '스승의 날 축사 중에 제자가 스승을 고발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사회면에 주요하게 다뤘다.

서초구의 B 고등학교에서 스승의 날 축사중 학생들이 떠들자 한 선생님이 "떠들지 말라"며 한 학생을 쥐어박았고, 이를 본 학생들이 핸드폰으로 112에 신고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중앙일간지들의 논조는 별로 대단치도 않은 체벌을 한 것 가지고 학생들이 스승을 고발하는 현 실태를 고발하는 것이었다. 한국일보는 '스승 모독', 동아일보는 '제자가 스승 고발'우울한 스승의 날'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5월 16일 밤 오마이뉴스 제보란에는 '이거 한번 취재해보심 좋을 듯'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이별비'라는 아이디의 B고등학교 학생이 나우누리, 천리안 등에 쓴 '학생 폭행 사건의 실체'를 퍼온 것이다.

'학생들을 개 잡듯 패는 선생님들'이란 제목을 달고 시작되는 이 글은 A4지로 1장 반 분량이나 되는 장문의 글이었다. 이 학생 주장의 핵심은 "16일 언론에 보도된 것은 거짓이며, 15일 있었던 B고등학교 스승의 날 실상은 전혀 달랐다"는 것이었다.

오마이뉴스는 이 스승의날 사건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17일 오후 3시경 B고등학교를 찾았다.

B고교 학생들은 정규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먼지를 날리며 힘차게 뛰놀고 있었다. 운동장 앞 벤치에서 B고교 3학년에 재학중인 두 남학생을 만났다. 두 학생은 "언론을 통해 왜곡된 학교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그날은 비가 조금씩 내렸어요. 1·2·3학년 학생들은 스승의 날 행사를 위해 운동장에 모여있었어요. 비도 오고 해서 어수선했죠. 학생들이 통제가 제대로 안됐죠. 교장선생님은 무척 화를 냈어요. 그때 올해 부임한 체육선생님이 한 학생을 불러내 개패듯 팼어요.

공개적으로 학생이 그렇게 맞는 건 처음 봤어요. 손과 발로 10여대 이상 맞은 것 같아요. 맞은 학생은 쓰러져 화단으로 넘어졌고 그 쓰러진 애까지 발로 밟았어요.

여학생들은 야유를 보냈죠. 그때 아마 몇몇 학생이 핸드폰으로 112에 신고를 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 학생만 맞은 것도 아니에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뒤쪽에서도 다른 선생님들이 돌아다니며 다른 때와 달리 심하게 체벌을 가했죠."

두 남학생은 이번 사건이 이렇게 전국적으로 관심을 끌줄 몰랐다고 말했다. "체벌은 전부터 계속 있었던 거고,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 당시엔 그냥 너무 심하게 때린 것이 아니냐란 생각만 들었어요."

3학년 여학생 다섯명을 더 만나봤다. 그 학생들은 한결같이 "언론의 보도는 잘못됐으며 학생만 죽일 놈 됐다"며 그 날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는 위치상 가장 심하게 맞은 그 학생이 실제로 맞는 것은 자세히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체육선생님의 몸 동작과 학생이 맞는 소리로 심각한 것을 알았죠.

맞는 소리가 컸거든요. 그 체육선생님은 그 학생을 그렇게 때리고 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3학년 남학생들이 서있는 곳으로 와서 주먹을 휘둘렀어요."

학교 후문. 귀가하던 1학년 여학생 세 명을 추가로 만나봤다. 학생들은 그 체육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라면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평소에는 너무 좋은 선생님이었어요. 그 날은 정말 화가 많이 난 것 같았어요. 학생들이 너무 많이 떠들었거든요. 우리가 잘못한 거죠. 하지만 선생님이 손과 발을 사용해서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때린 것은 선생님이 실수한 것 같아요."

학교측 입장을 듣기위해 교장실과 교무실을 찾아가봤다. 이모(60)교장은 "이틀동안 이 문제로 인해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방문할 때도 졸업한 제자로부터 이 문제로 위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그는 "더이상 이 문제로 학교가 시끄러워지지 않았으면 합니다"라며 말을 시작했다. "그 날은 스승의 날입니다. 모두가 축하하며 즐거워해야 하는 날이지요. 게다가 그 날 행사는 학생주관이었어요.

헌데 학생들이 늦게 모여 행사가 30분이나 늦게 시작된 데다 학생들이 잡담을 너무 심하게 하는 겁니다. 저는 연설을 번번히 중단해야 했지요. 그때 정 선생님이 한 학생을 불러냈나봐요.

저는 다른 곳을 보며 연설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학생들이 우우 하며 야유를 보내더라구요. 깜짝 놀라 야유를 보내는 쪽을 돌아보니 정 선생님이 팔을 치켜들고 있더라구요, 몆 대 맞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별거 아니었어요.

나중에 경찰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10여명의 학생들이 112에 신고를 했나봐요, 행사가 다 끝나고 경찰이 달려 왔지만, 맞은 '조'군도 사건 확대를 원치 않았고 정 선생님도 역시 '조'군에게 사과를 해 별다른 불상사는 없었어요."

교장실에서 나와 정 선생님을 만나려고 했지만 일찍 퇴근하고 자리는 비어있었다. 대신 같은 학교 동료 선생님들을 만나봤다. 교사들은 기자를 보자 "이 문제에 대해서 이제는 더 이상 왈가왈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언론이 가만히 있는 것이 학교와 교육을 살리는 길입니다. 언론은 단편적인 사건만 봤지 전체적인 상황은 보지 않는 것 같아요. 제발 정 선생님을 가만 나두세요. 정 선생님도 피해자입니다. 스승의 날 이런 일이 발생해 우리에겐 정말 우울한 나날입니다."

동료 선생님들은 그런 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끝까지 정 선생님이 학생을 때렸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정문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했던 2학년 여학생은 이런 말을 했다.
"매로 때리는 건, 20대, 아니 30대를 맞아도, 참을 수가 있어요, 아무리 아파도 제 인격은 멍들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인격을 무시하고 개 패듯이 패는 것은, 아프지 않아도 참을 수가 없어요.

선생님 앞에서는 그저 학생이지만, 엄연히 저희도 사람입니다. 말 안듣고, 공부 못한다고, 당연히 때리고 당연히 맞는 일은 이제 지겹습니다."

5월 16일자 신문에 문제의 기사를 썼던 한 일간지 기자는 "우리는 그때 경찰과 학교당국의 이야기만 듣고 기사를 썼다"면서 "그 기사를 쓴 후 학생들로부터 왜 우리이야기는 들어보지않았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고 이메일 항의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스승의 날 교장 훈화를 여러차례 중단시킬만큼 학생들이 떠들었던 것도 사실이고, 폭행을 당했다고 스승을 핸드폰 신고한 것도 사실인만큼 '기사거리'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B고교에서 만난 한 선생님의 말처럼 "이번 사건은 이 건 하나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총체적인 교실붕괴현상 속에서 파악해야할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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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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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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