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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이끌어가는 많은 이들이 개혁을 언급했다. 선거 때는 물론이고 각종 인터뷰 때마다 ‘개혁’이라는 단어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것만 본다면 그들은 언제나 개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행동이 따르지 않아서인가? 개혁에 만족했다고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개혁타령에 ‘개혁피로증’을 느끼는 이들만 늘어나고 있다. 개혁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절실히 느끼면서도 ‘개혁피로증’을 언급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개혁이 말만 무성할 뿐,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아니면 개혁이라는 것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역사비평가로 알려진 이덕일, 그가 그 해답의 단초를 내놓았다. 역사를 통해 내일을 예측하자는 말을 보여주려는 듯 저자는 역사비평집 <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를 통해 오늘날 개혁을 둘러싼 무수한 의문점들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사공이 많아 산으로 흐르는 한국선에 역사라는 나침반을 준비한 것이다.

저자의 시선은 멀게는 삼국시대를 통일하는 데 한 축을 담당했던 김춘추부터 가깝게는 쇄국정치의 대명사 흥선대원군과 갑신정변의 주역들인 김옥균, 서재필 등이 활동한 조선말기까지 아우르고 있다. 다루는 범위는 가히 이 땅의 역사라고 부를 만한 것들 대부분을 향할 정도로 광범위한데 그럼에도 내용 구성과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책은 제목 그대로 성공한 개혁과 실패한 개혁을 비교하거나 혹은 분리시켜서 그 이유를 분석하고 그것에서 교훈을 찾고 한다. 저자는 성공한 개혁의 대표적인 사례들로 아젠다를 제시한 신라의 김춘추와 신분보다 능력을 중시한 고려의 광종, 악역을 자청한 조선의 태종 등을 뽑고 있다.

김춘추의 경우는 혼란했던 신라시대를 개혁하는 것과 동시에 ‘삼국통일’이라는 아젠다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성공한 개혁으로 뽑을 수 있다.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삼은 다른 이들과 달리 김춘추는 왕권강화를 ‘수단’으로 삼국통일이라는 아젠다를 제시했기에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강국이었던 고구려와 백제를 물리치고 역사의 승자로 기록될 수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이다.

고려의 광종이나 조선의 태종은 어떠한가. 외국인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도 유명한 광종은 노비안검법과 과거제 등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고 법치개혁을 이루어 법 위에 군림하던 호족들을 끌어내리는 데 성공했다. 태종 또한 마찬가지다.

세종이 태평성대를 이루고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 수 있도록 안정기반을 만들어주려던 그는 악역을 자청해 공신들의 수족을 잘랐다. 광종이나 태종 모두 호족과 공신들을 견제해 흔들거리던 나라의 기반을 잡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개혁정치를 행했던 것이고 충분히 그에 대한 대가를 얻었으니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다.

“정권 창출에 역할한 공신뿐만 아니라 부패한 정치권, 불투명하고 족벌화된 기업의 경영관행, 경직되고 이념화된 노동시장, 집단 이기주의 등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모든 간접적 공신(?)들을 숙청하고 난 후에야 우리 사회는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얼마나 더 많은 대통령이 세종을 꿈꾸다 만신창이가 된 후에야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치가는 세종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까지도 손을 대는 악역을 담당할 태종이라는 사실을 깨닫겠는가?” ‘본문’ 중에서

“어느 부서가 내려가고 내려가지 않고 하는 중앙 집권적, 구시대적 논쟁이 아니라 어떤 도시를 건설해야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도시가 될 수 있겠는지가 화두가 되고, 다른 도시들도 이를 따라 자기 개혁에 나서게 된다면 국민의 고통을 수반하지 않고도 진정한 개혁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극소수의 수도권 기득권자나 무조건적인 반대자를 제외하고 누가 행정도시 건설을 반대하겠는가? 정조와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본문’ 중에서


반대로 저자가 실패한 개혁의 주인공들로 뽑는 이들은 누구인가? 과거에 집착했던 조선의 영조와 시대를 거스르는 개혁정치를 펼친 흥선대원군 그리고 삼일천하로 만족해야 했던 갑신정변의 주동자들이 있다.

조선의 영조가 실패한 개혁의 사례에 오른 것은 권력을 과거사에 집착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어두운 과거사를 지닌 채 왕위에 올랐던 영조는 권력을 미래지향적으로 사용하고 탕평책으로 국론을 모아야 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현재의 권력으로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 역사까지 소유하려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척화비’로 유명한 흥선대원군은 역시 쇄국정책으로 이 책에서도 실패한 개혁의 주인공으로 뽑혔다. 그는 극적으로 권력을 잡아 단호한 개혁의지로 세도정치에 찌든 이 땅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듯했으나 개혁의 방향이 시대를 거슬렀다는 점이 개혁을 성공리에 끝낼 수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였다. 또한 갑신정변을 일으킨 이들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에 개혁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우리 역사 속에서 많은 이들이 개혁을 시도했지만 성공한 예는 그리 많지 않은 점이 개혁의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다. 개혁의 성공과 실패에 한 가지 원칙은 있다. 미래지향적인 개혁은 성공했고, 과거지향적인 개혁은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는 개방적인 개혁은 성공했고, 폐쇄적인 개혁은 실패했다는 점과 서로 통한다.” ‘본문’ 중에서

역사가 증명했듯이 개혁은 어렵다. 결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것이 개혁이다. 저자는 오늘날의 개혁에서 잠시 눈을 떼고 과거로 눈을 돌리자고 권한다. 방향성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위태한 오늘날의 개혁이 굳건하게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과거에서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역사 속의 성공한 개혁가들과 실패한 개혁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그리고 그들의 개혁에서 '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것들로 나누었는데 어느 것 하나 귀 담아 듣지 않을 수 없는 충고가 담겨 있다. 개혁을 하겠다는 사람들, 개혁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을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온 충고다. 민생을 등한시 하는 정치권의 행태, 비생산적인 소모전 등 실패한 개혁들의 사례와 비슷한 모습들이 나타나는 오늘의 시대에 그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정치권은 서로를 부인하는 속에서 정쟁을 일삼고 있고, 이런 현상은 점점 정치인뿐만 아니라 온 국민도 정치인이라도 된 양 둘로 싸우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이념과잉은 극단적 권력투쟁의 부산물일 뿐이다. 당론을 뛰어넘어 공작정치 수행자의 처벌과 반대당에 대한 화해를 통해 새 시대로 가자고 주장했던 소론과 윤증의 주장을 진지하게 경청할 때이다.” ‘본문’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한국사로 읽는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 김춘추에서 노무현까지

이덕일 지음, 마리서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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