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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면을 가득 메운 디지털 프린트 <그들>(2004). 왕조시대의 반도(叛徒-거역의 무리)는 일제시대의 불령선인(不逞鮮人), 군사권력의 '빨갱이', 제국권력의 '테러리스트'로 변화했다.
ⓒ 양김진웅
미국에게 우리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 기억 속에 미국은 무엇으로 남아있는가?

화가 박경훈씨의 개인전 '10년간'은 박경훈씨가 10년이라는 '게으름(?)'의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천착해 온 것이다. 이번 개인전의 테마는 '4·3과 미국'이다. 또 한편의 '미국 바로보기'인 셈이다.

이번 전시회는 마치 걸개그림을 보는 듯하다. 전시회는 4월 26일 제주전을 시작으로 광주와 부산, 청주, 인천, 서울 등 전국을 돌며 10월까지 열린다.

▲ 위로부터 <기념사진-테러와의 전쟁>. <자유의 깃발>, <언어연구-빨갱이>. 성조기가 표상하는 이미지에 대한 오해는 대한민국에서 자유에 대한 오용으로 나타난다.
ⓒ 박경훈
▲ <웃는 얼굴에 총알을 박아주마>(I'll Shoot Your Smiling Face). 저 웃는 아이들이 한명이라도 살아난다면 커서 무엇이 될까?
ⓒ 박경훈

'1948년 해방공간의 제주에서 그것은 미국이 선택한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전략은 4·3의 전기간을 통해서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으며, 이를 모델화한 결과 한반도에서의 전쟁에서도 대부분의 후방에서는 이러한 저강도 전략이 강고한 전선을 유지하는 전방에서의 고강도 전투와 함께 병행되었고, 베트남에서도 일관되게 적용되었다. 어쩌면 현재까지도 한반도는 그들의 저강도 전략의 연속선상에서 한번도 벗어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 작업노트 中.'

미, '저강도 전쟁'(Low Intensity War)-동족끼리 싸우게 하라'

4·3과 4·3의 참극을 배후에서 조종한 미국에 주목한 작가는 미국이 살육과 광기를 이용해 오랫동안 함께 해온 공동체 집단에 가증스런 상처를 남겼다고 고발한다.

신자유주의 세계체제를 주도하는 '부시의 아메리카'가 자행한 이라크 침략전쟁의 본질 또한 21세기 제국주의의 식민지 점령전쟁이라고 규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작품 '위대한 성조기-불구동맹' 역시 국익으로 포장된 한미동맹도 미국의 패권이 용인되는 한 결코 '정신의 불구', '자유와 인권의 불구'에서 자유롭지 않은 역사적 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일갈한다.

▲ <위대한 성조기-불구동맹>. 강대국 대통령의 '광기'에 찬 자신 있는 연설장면과 약소국 대통령이 '우방, 혈맹, 보답'의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점잖고 곤혹스럽게 국익을 대변하는 모습이 교차한다.
ⓒ 박경훈
▲ <저강도 전쟁-동족끼리 싸우게 하라>. Low Intensity War 전략은 여전히 위력한 최고의 제3세계 전쟁수행법이다.
ⓒ 박경훈

21세기 초입에 일어난 이라크 전쟁의 상흔과 55년 전 4·3이 닮은 것은 이 때문이다.

'힘 센 놈만이 살아남는다.'
'도덕과 인간성은 미국의 울타리 내에서만 합법적이다.'
'세계는 미국의 울타리 내에 있어야 안전하다.'

작가는 제국주의 미국의 패권적이고 반인륜적인 야누스의 얼굴을 이라크 어린이의 얼굴과 등치시킨다. 그리고 미국이 만든 '테러로부터 가장 안전한' 이라크의 풍경을 신랄하게 비웃는다.

▲ <1948-1997>. 4.3 당시 붙잡힌 여성 빨치산과 97년 4.3 위령제에서 만난 할머니의 모습은 닮아있다(사진 위). <님-기별>.4.3 행방불명인, 그들은 57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사진 아래)
ⓒ 박경훈
. 한 소년이 있었다. 낡은 칠판에 쓰여진 모국어를 배우는 것이밥 먹는 일 빼고 가장 중요한 일과였던 이 아랍소년의 일가족은 몰살했다.
ⓒ 박경훈

"30만 제주도민을 태워 없애라"

'대한민국을 위해서는 제주도 전역에 휘발유를 뿌리고 거기에 불을 놓아 30만 도민을 한꺼번에 태워 없애야 한다 - 1948년 미군정 경무부장 조병옥'.

제주도민들에게 4·3 당시 미군정의 경무국장이었던 조병옥은 분명 '저승사자'였다. 그에게 있어서 제주도민은 그가 향후 권력욕을 불태울 목표였던 대한민국의 권력을 위해서는 한 줌도 안 되는 비(非)국민이었던 셈이다. 그의 말처럼 대한민국은 불과 2년도 못 채운 기간에 제주도민 30만의 10분의 1인 3만여 생명의 죽음을 볼모로 탄생한 나라였고, 이와 같은 일이 그로부터 30년 후 광주에서 반복됐다.

'4.3이 항쟁이 아니라면
4.3이 아무것도 모르고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슬픈 비명뿐이라면
4.3이 가해자도 가려내지 못하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게임이라면
4.3이 화해와 용서만 해야 한다면
4.3이 다시 반복되지 말란 법 있을까?'

'4.3은 무엇보다 죽음의 냄새가 가장 강한 역사적 사건이다. 반란은 정당했으나 진압은 참혹했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진압을 빌미로 한 죽음의 확대재생산이었고, 학살은 막을 수 있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확장된 것이라는 점이다.

▲ <마지막 본 풍경>(The Last Scene). 1948년 4월 그 후, 동굴에서 바닷 속에서 죽임을 당한 희생자가 마지막 본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 박경훈
▲ <환생꽃-이덕구>. 동백을 닮은 제주도인민해방군 제2대 사령관 이덕구. 그는 한라산 산숲에 들꽃으로 자생하고 있다.
ⓒ 박경훈

이 일을 주도했던 미군정 아메리카는 아직까지도 이 사건을 자기들과 상관없는 아시아에서의 작은 충돌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획책한 저강도 전쟁은 미국과는 하등의 상관없는 '아시아에서 비지니스를 수행하던 중 발생한 불미스런 일' 정도의 정치적 표현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안착된 종군사진가지제도가 제주에서는 전혀 그 씨를 찾아 볼 수가 없다.

로버트 카피가 명성을 날리던 기록사진의 시대에 제주에서의 살육은 기록되지 않았다. 아니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당시 미군정과 토벌대는 이미지에서도 제주를 삭제한 것이다. - 작업노트 中'


▲ 위로부터 <땅>과 <안전한 풍경>.미국이 만든 가장 안전한 이라크의 풍경?
ⓒ 양김진웅

대한민국 두 종족

'제조선 미육군사령부 군정청'.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북위 38도선 이남 지역에 진주한 미군은 9월 8일부터 1948년 8월 15일 남한단독정부 수립까지 3년 남짓 이뤄진 통치 기간동안 남한의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정부였다.

미국의 석학 브루스커밍스(시카고대 역사학 교수)는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이 1950년 훨씬 이전, 미국이 정식으로 군정을 실시했던 3년간 점령기로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놀라움을 표시한다. 4·3은 바로 그 시기에 일어난 일 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미간의 비밀협약에 따라 미군은 1949년 6월까지 한국의 군대와 경찰을 지휘 통제했다. 따라서 1945년 점령부터 1949년 6월말 철수할 때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모든 학살극과 잔혹행위에 대해 미국은 단지 윤리적 책임만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법률적인 책임이 있다"고 그나마 미국 국민의 양심을 대변했다.

4·3기획가로 활동하는 작가가 '화해'와 '상생', '평화'의 키워드가 난무하는 21세기에 여전히 '미국'을 주목하고 있는 것은 '제국 아메리카'의 문제가 제주 4·3의 문제임을 넘어 분단 상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는 말한다.

'대한민국엔 두 종족만이 있다.
한 종족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면 4.3의 살륙이 정당했다는 종족과 또 한 종족은 절대로 그런 살륙이 반복되어선 안된다고 외치는 종족.'


'21세기에 존재한 엄연한 미국의 그늘'
전시 후기- "아날로그 감성의 작가가 시도한 디지털 이미지"

▲ 화백 박경훈
ⓒ양김진웅
작가에게 미국과 4·3은 제주 역사에서 볼 때 분단이 만들어놓은 '쌍생아'다.

주로 부시의 이미지 비틀기를 통해 '제국 아메리카'의에 대한 사유의 틈을 벌리려는 그의 의도된 작업들은 CG(computer graphics) 작업을 통한 디지털프린더 작업물들이다.

그의 특기인 손 작업을 떠나, 손맛과 촉각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시각적인 것에만 의존한 채 가장 비물성적인 작업을 시도한 이유는 뭘까.

작가는 "이미지 전쟁의 시대에 이미지를 교란, 조작, 재배치하는 전략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되묻고, "가령 '김일성'을 '김일성 주석'과 '김일성 괴수'라고 부를 때 그 이미지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America를 '米國'으로 표기하는 중국, 북한, 일본 등 3국과 달리 유독 남한만은 '美國'으로 고수하는 이미지 왜곡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표기상의 차이는 글자 하나지만 현실에서의 효과는 국민적 정서를 교묘하게 친미(親美)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정교한 문화적 이미지 전략의 장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근대사에서 여전히 '금기의 인물'인 무장유격대 최고사령관에 대한 그의 접근 의도 또한 엿보인다. 한라산과 오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야생화, 김달삼 이후 무장유격대의 최고지휘관이 된 이덕구(제주도인민해방군 제2대 사령관)의 학창시절 얼굴을 합성시켜 놓음으로써 작가 내면의 의식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작가의 이력으로 봤을 때도 이번 개인전은 꼭 10년만은 아니다.
1985년 첫 개인전을 가진 박경훈(44)은 '목판화'에 매료된 후 '그림패 보롬코지'를 통해 <나의 칼 우리노래> <4.3 넋 살림전> 등으로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명징한 주제의식을 보여줬다. 하지만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작품전은 이번을 두번째로 꼽는다.

초대 그림전 <높은 오름, 너븐 드르>(1995.갤러리제주아트) 이후 지난 10년간 줄곧 디지털 기법에 의한 이미지 합성 작업에 대한 결과물인 것. 그는 "4.3 50주년 기념 초대 <바람길 넋살림칼>(1998) 역시 이전 작업물(판화)의 모둠전이었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그의 말대로 '20년만의 전시'인 셈이다.

(사)민족미술인협회 제주지부 탐라미술인협회를 함께 이끌어 온 화가 강요배씨는 "여타 장르의 표현 보다 명징한 주제 의식이 돋보인다"며 "어줍잖은 회화 보다 오히려 강렬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몽타주 기법의 응용으로 해석되는 그의 작업은 철저히 '대상의 리얼리티' '시각의 리얼리리'를 추구하는 듯 보인다.

미술평론가 김현돈씨(제주대 철학과 교수)는 "그의 머리와 손은 디지털 이미지의 합성 작업에 익숙하지만 가슴은 아직도 아날로그적인 감성 코드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며 "포스트모던한 디지털 정보로 재단하기엔 4.3의 역사인식은 너무 무겁다"고 말했다. / 양김진웅

덧붙이는 글 | 박경훈 순회 개인전은 제주전(4.26~5.2)에 이어 5월 광주전(5.8~14, 5.18 문화회관)과 부산(5.31~6.19, 부산민주공원 기획전시실), 청주, 수원, 인천, 서울, 원주 등으로 이어집니다. 문의 725-4410, 011-698-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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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대자(大者)는 그의 어린마음을 잃지않는 者이다' 프리랜서를 꿈꾸며 12년 동안 걸었던 언론노동자의 길. 앞으로도 변치않을 꿈, 자유로운 영혼...불혹 즈음 제2인생을 위한 방점을 찍고 제주땅에서 느릿~느릿~~. 하지만 뚜벅뚜벅 걸어가는 세 아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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