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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오후 6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민주당 참패로 나타나자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추미애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서울 광진을 유권자들은 4.15 총선에서 '이변 아닌 이변'을 만들어냈다.

최종개표 결과, 정치학 박사 출신의 시민운동가 김형주 후보(열린우리당)가 민주당의 간판스타 추미애 의원을 5000여 표 차이로 제친 것이다.

추 의원은 한나라당 유준상 후보와 2위를 다투다가 막판 부재자 투표의 선전으로 2위를 지켜냈다. 그러나 유 후보와의 표 차이가 865표에 불과했다.

이번 총선을 정계복귀의 마지막 기회로 간주하고 4년간 바닥민심을 다진 유 후보도 3파전 속의 어부지리를 노렸지만, 16대 총선 득표(2만8413)와 별 다를 게 없는 2만6108표를 얻는데 그쳤다.

유 후보 선대본의 한 관계자는 "김형주 당선자는 지난 연말부터 총선을 준비한 것으로 안다"며 "4개월 뛴 후보가 4년을 뛰어다닌 우리 후보를 제친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ADTOP@정치권 충격에도 주민들 반응은 덤덤

정치권도 광진을의 개표 결과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조순형 대표의 대구낙선은 일찌감치 예감된 것이지만, 추 의원의 지역구 낙선은 그야말로 돌발사태였다.

뚜껑이 열리는 순간까지 민주당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다른 곳은 안 돼도 추 의원은 되지 않겠냐?"고 경합 우세를 점쳤는데, 결국 '민주당 몰락'의 상징처럼 되버렸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추 의원, 지역구에서 아슬아슬하게 승리'라고 기사를 썼다가 방송사 출구조사가 나오자 부랴부랴 기사를 뜯어고치는 출입기자도 있었다. 열린우리당에서도 한 달 전 경선을 통과한 김형주 당선자의 승리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반응은 덤덤했다. 추 의원의 낙선에 대해 "이럴 수가 있냐?"며 비분강개하는 의견은 의외로 많지 않고, 결과를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그랬잖어? 이 동네에선 한나라당에 이쁜 짓 하는 사람 치고 잘 되는 일 없다고…. 기자 양반도 내 말 안 믿었제?"

격전지 취재 이후 일주일만에 다시 만난 자양시장의 노점상 김선옥씨는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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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주 우리당 광진을 후보 "추미애는 내가 잡겠다"

김씨는 "열린우리당 후보가 시장에 한 번 와서 '도와달라'고는 했지, 이름도 모르고 찍은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라고 말을 이어갔다.

96년과 2000년에는 추 의원을 찍고, 2002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찍었다는 김씨. 이번 총선에서 추미애와 노무현 중 양자택일을 강요받았지만, 한 쪽을 선택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고 한다.

김씨의 촌평이다.

"이 지역에 호남사람들이 30% 가량 사는데, 세 번 연속 당선된 의원이 한 명도 없었어. 두 번 당선되고 나면 교만해지고, 그러다보면 '갈아야겠다'는 바람이 불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어."

▲ 17대 총선 광진을 개표결과(최종)
탄핵이 승부의 분수령 "더 이상 배신감 느끼기 싫다"

투표 성향을 떠나서 탄핵이 승부를 갈랐다는 점에는 대체적으로 의견의 일치가 있었다. 건국대 앞에서 만난 대학생 정병진씨의 말이다.

"투표 전날 TV 프로그램 내용이 잊혀지지 않았다. 탄핵안 가결 당시 한 시민이 '어떻게 만든 대통령인데…'라며 울부짖는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투표 안 하려다가 한나라당과 추 의원이 싫어서 종료 10분 전에 헐레벌떡 뛰어가서 투표했다."

정씨는 "이번에 당선된 분을 계속 지켜보겠지만, 더 이상 배신감을 느끼기 싫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거리에서 만난 교회 전도사들은 추 의원의 낙선을 아쉬워하면서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행복한 교회'의 박미숙 전도사는 "아무래도 탄핵에 동조한 것이 최대 패인이 아니겠나? 추 의원 지지자들 중에도 그 일로 실망했다는 사람이 많았다"라며 "망월동 3보1배는 쇼이고, 김홍일 의원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안 좋게 보는 사람이 많았다, DJ를 너무 의식했던 것 같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박기월 전도사는 "추 의원이 박순천 여사의 뒤를 잇는 훌륭한 여성 정치인이 되길 바랬는데, 여성계의 손실이 크다"고 말했다. 박씨는 그러면서도 "광주 사람들이 민주당 후보들 다 떨어뜨리는 것을 보니 그 쪽 사람들이 그래도 양심이 있더라"라며 "김형주 후보를 잘 모르지만, 프로파일을 보니 인물 됨됨이는 괜찮은 것 같다"며 크게 낙심하지 않은 표정이다.

추 의원이 선대위원장으로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의 당선에는 역효과를 냈다는 점에서 이미지 정치의 허상과 연결짓는 기류도 있다. 김 당선자 측은 거꾸로 이 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소정훈 선대본 부위원장은 "추 의원은 지역구에 거의 오지도 않고, 3보1배에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등 동정어린 이미지를 연출했다"며 "우리는 거꾸로 밝은 이미지, 지역일꾼의 이미지를 심으려고 주력했다"고 소개했다.

'추다르크' 꺾은 신인의 환호 15일 서울 자양동 사무실에서 제 17대 총선을 마치고 득표현황을 지켜보던 김형주(왼쪽) 열린우리당 광진(을)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 되자 지지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재구
'열린우리당 위기론'에 응원군 속속 집결

선거 종반 '열린우리당 위기론'이 확산된 것도 김 당선자의 지지세를 굳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김 당선자측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판세가 뒤집어지지 않았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접하고도 선거운동원들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기 위해 중앙당에 이 지역을 '열세'로 분류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중앙당에서는 초반 신기남, 중반 박영선, 종반 김근태를 잇달아 지역으로 보내 김 당선자의 인지도 향상에 주력했다.

위기론의 확산은 뜻밖의 응원군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개혁 성향 네티즌들이 이 지역의 승부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평일에는 20여 명, 주말에는 60여 명 정도가 지역에서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이들은 지하철역과 시장 등 곳곳에서 탄핵무효 1인 시위를 벌여 투표를 포기하려던 부동층들의 마음을 다 잡았다.

소 부위원장은 "유 후보가 치고올라가는 기미를 보여서 막판에는 이번 선거가 '민주당 대 우리당'이 아니라 '한나라당 대 우리당'의 싸움이라는 것을 집중 홍보했다. 개표해보니 구의3동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결과에 만족해했다.

전날 개표를 지켜보며 당선의 기쁨을 한껏 만끽한 김 당선자는 16일 오후 부부동반으로 지역구를 돌아다니며 유권자들에게 당선 사례를 했다. 자양시장 한 복판에 마련된 선거사무소 앞에는 '성원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걸어놨다.

반면, 추미애 의원 사무실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15일) 방송사 출구조사를 지켜보다가 당사를 나서는 추 의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전국 유세에 치중한 추 의원을 대신해 지역구에서 선거실무를 총지휘한 손용우 비서관은 "지금 눈물이 안 나오게 생겼냐? 아무 얘기도 하고싶지 않다"며 말문을 닫았다.

미처 낙선을 생각하지 못했던 추 의원은 저녁 무렵 지지자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지역구에 걸 계획이다.

▲ 지난 5일 오후 광주에서 3일째 3보1배를 하고 있는 추미애 민주당 선대위원장이 최종목적지인 5.18국립묘지에 도착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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