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07 12:26최종 업데이트 23.04.0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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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에서 열린 한일 북핵수석대표협의에서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에게 기념촬영을 위한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대일 굴욕외교로 난국에 봉착한 윤석열 정부가 국면 돌파용 카드로 활용할 만한 것이 3월 하순부터 부각되고 있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가 그것이다.

6일 강제징용(강제동원) 봉합을 위한 일본 협상 대표인 후나코시 다케히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한국 외교부를 방문하고 돌아갔다. 그가 만나고 간 카운터파트는 강제징용 문제의 한국 협상 대표인 서민정 아시아태평양국장이 아니라, 작년 5월부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건 북핵수석대표다. 후나코시 국장도 일본 정부의 북핵수석대표를 겸하고 있다.


6일 협의에서 김건 본부장과 후나코시 국장은 북핵과 대북 제재뿐 아니라 일본인 납치문제도 함께 논의했다. 이날 외교부가 배포한 보도자료는 "김 본부장은 납북자 문제뿐 아니라 억류자, 국군포로, 탈북민, 이산가족 등 다양한 북한인권문제의 조속한 해결 필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양측은 북한의 인권침해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사용하는 납북자라는 표현은 1차적으로 한국인 피랍자를 가리키고 2차적으로 일본인 피랍자를 가리킨다. 6일 협의에 관한 일본 외무성 발표문을 보면, 중점적으로 논의된 납치문제의 종류를 알 수 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의 6일 자 발표문에 "후나코시 국장은 양자와의 사이에서 핵·미사일 문제나 납치문제를 포함한, 북조선에 대한 대응에서 계속 연대해나갈 것을 확인했다"고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일본 정부가 아무 수식어 없이 납치문제라고 표현하는 것은 당연히 일본인 납치문제다. 외무성 홈페이지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한 납치 피해자는 17명이다. 이 17명에 관한 사안을 매개로 대북 압박을 이어가는 문제가 6일 한일 협상에서 논의됐다.

강제징용 문제와 마찬가지로 납치 문제 역시 한일 정부 사이에서 정부수반-장관급-실무책임자 선에서 체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차이점이 있다면, 강제징용과 달리 납치 문제에서는 권영세 통일부 장관도 주요 행위자라는 점이다.

작년 11월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발표된 한·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3국 정상은 납치자 문제의 즉각적 해결을 위한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한다"고 선언했다. 뒤이어,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일본을 방문해 납치문제에 관한 한일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정부수반과 장관급의 이런 움직임에 더해, 6일에는 실무책임자들의 협의가 있었다.

반일 정서를 반북 정서로 돌려 난국 돌파?
 

6일 자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사 '한국, 제로 응답으로 맺히는 불만...반일 정치와 싸우는 윤씨' ⓒ 니혼게이자이신문

 
종전에는 일본인 납치문제에서 일본 정부의 적극성이 두드러졌다. 일본인에 관한 사안이므로 한국과 미국은 한 발 떨어진 모양새고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권영세 장관의 방일을 계기로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그의 등판을 계기로, 이전에 볼 수 없던 한국 정부의 적극성이 일본인 납치문제에 투영되고 있다.

이에 관련해 통일부가 3월 24일 배포한 두 건의 보도자료를 종합하면, 일본 방문에서 권 장관은 하야시 외무대신에게 통일부-외무성 사이의 협의 채널을 제안하고 마쓰노 히로카즈 내각관방장관(납치문제 담당)에게는 통일부-내각관방 사이의 협의 채널을 제안했다. 통일부가 일본인 납치문제를 매개로 2개의 일본 정부 기관과 협의 채널을 갖고자 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북한인권을 강조함으로써 이런 흐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5일 열린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북한인권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인간을 존중하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라고 언급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인 양금덕·이춘식의 인권이 대한민국 정부에 짓밟힌 현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발언이다.

6일 자 <니혼게이자이신문>에 '한국, 제로 응답으로 맺히는 불만...반일 정치와 싸우는 윤씨'라는 기사가 실렸다. 일본의 호응이 전혀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윤 대통령에 대한 한국 내의 불만을 담은 제목이다.

'반일 정치와 싸우는 윤씨'라는 대목은 일본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윤 대통령의 실정을 반영한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국민적 울분과 맞서 싸우며 일본인 인권문제를 부각시키는 그를 보면서 일본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강제징용 문제처럼 일본인 납치문제도 당연히 인권문제다. 반일 정서와 연결되는 강제징용 문제와 달리, 일본인 납치 문제는 반북 정서와 연결된다. 그래서 납치 문제가 한국에서 크게 부각되면, 일본제국주의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은 지금보다 낮아지고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반일 정서를 반북 정서로 돌려 난국을 돌파하려 한다는 해석을 불러올 만한 일이다.

인권문제는 세계 공통의 문제이므로 한국 정부가 일본인 인권문제에도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동시에,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비대해진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인 납치문제에 과도한 에너지를 쏟는 게 과연 합당한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한국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2차 국정과제점검회의에 입장하며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북한인권을 비판하면서 "우리는 인간을 존중하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라고 언급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가 통일부와 외교부를 앞세워 납치문제에 적극성을 보이는 지금의 국면은 반일 분위기를 한일 협력 분위기로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점은 일본 언론의 보도에서도 나타난다.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인 <산케이뉴스>의 5일 자 사설인 '북의 인권침해, 납치로 일한 협력을 추진하라'는 납치문제에 관한 "일한의 연대가 요구된다"고 강조한 뒤에 이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사설은 한국도 적극적 자세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납치문제에 진지하게 맞서지 않은 역대 정권의 부작위는 한국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할 수 있다"라며 선을 넘는 발언까지 했다. "일한은 국제사회에 결속과 협력을 호소하고 북에 대한 압력을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말로 사설은 끝난다.

위 사설은 납치문제를 국제이슈로 더욱 부각시키고 이를 매개로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일에 한국이 적극 나설 필요성을 주문하고 있다. 납치문제 부각이 한일 연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유리하다고 보는 일본인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위 매체의 3월 30일 자 기사인 "납치로 일한 연대 내세우는 한국 정권, '앞으로 4년이 챤스'"는 "윤 대통령의 남은 임기 4년간이 인권문제로 일한이 연대할 수 있는 최대의 기회라고 기대하는 관점이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 기사는 결론에서도 똑같은 메시지를 재차 강조한다. 납치문제로 한일 협력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 독자층인 우파들에게 던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인 납치 문제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의 납치 문제도 한국 정부의 관심 대상이 돼야 마땅하다. 동시에, 한국 정부는 한국 인권문제를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도 지당한 명제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한국인들이 입은 인권침해를 해결하라는 국민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난국에 봉착한 상황에서 윤 정부가 다급히 처리해야 할 것은 일본인 납치문제가 아니다. 강제징용·위안부·강제징병 같은 일제 강제동원 문제에 집중하고, 이런 문제들로 인한 한국인 인권침해를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일본을 상대로 한국인 인권문제의 해결을 요구하지는 않고 일본인 납치자 문제에 에너지를 쏟는 것은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한민국 정부에 어울리지 않는다. <산케이뉴스>의 표현처럼 그것은 "한국 국민에 대한 배신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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