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08 11:22최종 업데이트 24.04.08 11:22
  • 본문듣기
영화나 책, 인물, 역사 등 국내외 다양한 사건과 지금의 한국 사회를 비교합니다.[편집자말]
22대 총선이 이제 코 앞이다. 누군가가 "어떤 정치인을 지지하세요?"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이름들을 나열할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 에이 설마. 한동훈 위원장? 사실 그가 정치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이재명 대표? 때때로 과도하게 독단적이고 적대적인 성격이 스스로를 깎아내릴 때가 많다. 조국 전 장관? 검찰, 국정원 감사원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의 비법률적 명예회복 시도에는 양가적 성격이 있다. 그리고 이들 뒤에 이어지는 다른 많은 이름들... 우리가 어떤 이름을 나열할 수 있거나 말거나 4월 10일은 다가올 것이고 우리는 누군가에게 표를 던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꽤 오래된 정치혐오 속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정치·시사평론가 김민하는 2년 전 쓴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에서 '반대의 정치'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보수가 실패하면 보수에 대한 반대로 소위 진보 세력을 뽑고, 진보 정권이 실패하면 다시 보수로 돌아오는 진자운동과 같은 투표를 하며 사회가 나아가지 않고 정체되는 상황을 꼬집었다.


투표가 심판의 기능이 있기 때문에 언뜻 이런 상황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김민하가 제기하는 문제의 방점은 투표의 좌우 운동이 아닌 '사회가 나아가지 않는' 현상에 있다. 

진보정권과 보수정권을 오가도 바뀌지 않는 세상
 

왼쪽부터 윤석열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 김보성/연합뉴스

 
이번 22대 총선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5년 임기 평균 무려 52.6%로 가장 높았음에도(이는 정권 차원의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문 전 대통령 개인의 매력과 호감만큼이 그만큼 높았다는 의미다) 정권 후반 부동산 가격 폭등과 조국 전 장관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 소위 조국 사태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을 지금의 윤석열 정부에 내어주어야 했다.

이렇게 정권을 잡은 윤석열 정부는 고작 2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종전선언까지 기대하게 만들었던 대북관계를 다시 적대적, 아니 거의 군사적 긴장상태에 가깝게 악화시켰고 노동조합 괴롭힘에 가까운 반노동 정책들을 펼쳤다. 또한 감세기조와 함께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둔 국가책임 돌봄 정책이었던 사회서비스원을 축소하고 시장화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그렇다고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들에서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었다.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 해병대 1사단 채상병 사망사고 등 많은 국민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소중한 생명을 잃었고, 참사들에 대한 진상규명도 명확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번 총선은 이처럼 퇴행적 국가 기조 속에서 참사까지 끊이지 않았던 윤석열 정부 집권 2년 즈음에 진행되고 있다. 그간 윤석열 정부 국정수행에 대한 낮은 지지율, 불경기, 그리고 김건희 여사 리스크에 여당의 낮은 후보 경쟁력까지 모든 불리한 요소가 켜켜이 쌓여 4월에 접어들자 다시 '여당 참패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만약 오는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정책 기조들이 강화되어 문재인 정부가 만들었던 크고 작은 변화들이 다시 2017년 전으로 돌아가며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 반면에 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수행이 추진력을 잃게 되어 정권 교체의 계기가 이른 시기에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다시 정권 교체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윤석열 정부의 시간 동안 과거로 되돌려지거나 악화된 것들. 파탄난 남북관계, 노동자 민중들의 상황을 복구하는데 다시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런 퇴행과 복구의 왕복운동은 또 앞으로 얼마나 반복 되어야 할까. 언제쯤이면 우리 사회는 진보다운 진보를 이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안전한 타협보다는 신념을 택했던 국회의원 노무현
 

영화 <노무현입니다> 스틸컷 ⓒ 영화사 풀

 
얼마 전 우연하게 영화 <노무현입니다>을 다시 보았다.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 16대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인제 현 국민의힘 상임고문 (당시는 새천년민주당 소속)과의 경쟁하는 과정을 가장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총선 즈음에 다시 본 <노무현입니다>는 대통령 후보 또는 16대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국회의원  노무현'을 우리에게 환기한다.

198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13대 총선에서 부산 동구에 출마해 하나회 출신의 민주정의당 후보 허삼수를 낙선시키며 초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초선의원 노무현은 소위 5공 청문회로 불린 제5공화국 비리조사특별위원회에서 사전에 준비된 발표문(물론 변명으로 채워진)만 읽고 퇴장하는 전두환에게 "그럼 국민의 비난은 누가 책임질 겁니까! 본 의원은 풀리지 않은 의혹이 엄청나게 남아있습니다!"를 일갈하며 분에 못이겨 명패를 집어던졌다. 또한 일해재단에 기금을 헌납한 재벌 총수들의 비리를 집요하게 추궁하는 모습도 국민들 눈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청문회 스타로 올라선다.

그러나 사실은 청문회 스타보다 그 뒤의 행보가 훨씬 중요하다. 5공 청문회가 종료되자마자 여당인 민주정의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창당된다. 이 때문에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유일한 약소 원내 야당으로 전락하며 한국 정치의 부정적 요소인 호남 대 비호남의 지역주의를 장기간 고착화시켰다. 소위 3당 합당 사건이다.

최초 3당 합당 발표 직후에는 통일민주당 소속 대부분 정치인들이 충격 속에 거세게 저항했으나 김영삼이 소속 의원들을 직접 설득하며 결국 대부분 합당에 동참해 민주자유당에 합류했다. 초선의원 노무현은 민주자유당에 합류하지 않고 끝까지 3당 합당을 반대한 이기택, 김광일, 김정길, 장석화 의원 등과 민주당을 창당했다.

3당 합당 반대 이후 국회의원 노무현의 정치 경력은 순탄치 않았다.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 낙선,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로 출마했지만 또 낙선했다. 이렇게 약 4년간 세 차례의 낙선을 맛본 후에야 199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의혹과 관련해 종로구 국회의원직을 사퇴해 발생한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6년 만에 국회에 복귀하게 된다.

"저는 부산에 야당 하나 만들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뻔히 떨어질 선거에 두 번이나 출마했고, 이번에 다시 부산에 도전한 것입니다. 이번에 부산에서 당선되면 부산에도 정당간에 서로 비판하고 견제하고 경쟁하는 민주적이고 생산적인 정치 그리고 어느 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항상 중앙 정부와의 교섭 통로가 열려 있는 정치 구조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사저널> 낙선 기고 "부산 시민들을 욕하지 마십시오"(2000년 4월)
 

영화 <노무현입니다> 스틸컷 ⓒ 영화사 풀

 
그리고 2년 뒤인 2000년 16대 총선에서 노무현은 놀랍게도 종로에 재출마하지 않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 북구 강서구 을에 출마한다. 보좌관과 가족들을 포함한 주변 모두가 만류했지만 영남에서 야당 의석을 만들어 한국 사회를 좀먹는 견고한 지역주의에 균열을 만들겠다는 국회의원 노무현의 신념은 확고했다. 3당 합당과 그로인한 '지역주의'라는, 혐오의 정치문화를 막아내지 못했다는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 앞에 당선을 위한 '안전한 타협'은 이미 선택지가 아니었다.

16대 총선에서 노무현은 결국 안타깝게 낙선하지만 공중파 방송을 포함한 많은 언론들이 그의 도전과 신념에 대해 다루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노무현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상 16대 총선을 포함한 부산에서의 세 차례에 걸친 실패가 대통령 노무현을 만드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 된 셈이었다.

국회의원 노무현의 이런 선택과 도전들이 22대 총선을 치르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크다. 지역주의라는 혐오의 정치문화에 편승하지 않고 그것이 너무 명확한 실패일지라도 정면으로 돌파하고자 했던, 그리고 그것이 정치인의 사명이라고 믿었던 정치인. 만약 초선 의원 노무현이 3당 합당에 반대하지 않고 자신도 지역주의라는 혐오정치에 편승했더라면 그의 정치경력이 순탄했을지언정 대통령 노무현은 역사 속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국회의원 노무현과 같이 안전한 '이익'보다 '대의'를 결행하는 정치인은 누구인가. 다음 노무현은 과연 있는가.
덧붙이는 글 <노무현 입니다>는 여성 비서 성폭력 사건 가해자인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출연하는 상당한 분량의 인터뷰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노무현 입니다>는  2017년 5월에 개봉한 영화로 안 전 지사의 범죄가 발생하거나 드러나기 전에 촬영되고 개봉했다. 그럼에도 보는 이로 하여금 심리적인 부담 또는 불안을 느낄 수 있음을 밝혀둔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